지용 문학의 향연

죽은 까마귀를 들고 호두나무 밑으로 걸어간다

떡국을 끓이던 어머니가 놀라
대문 앞에 막소금을 뿌리고
눈이 시리게 빛나는 까마귀 깃털,
눈송이 위로 떨어져 움직이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흰 눈을 쓸어내고 나는 흙을 판다
까마귀 발자국이 찍힌 가지마다
나무는 몸을 흔들어 눈송이를 털고
흐느적이는 바람 몇자락을 몸에 감고,
알 수 없는 노래를 웅얼거린다

이 나무 아래서 아이는 돌멩이를 던지고
이 나무 아래서 처녀를 껴안아보니
이 나무 아래로 꽃배를 타고 가니

얼어죽은 죽지에 찬 눈을 뿌린다
나무뿌리가 힘줄처럼 까마귀 날개를 파고들고
어둠의 날개가 서서히 하늘을 젓는 밤
벙어리들이 웃으며 춤을 추는 밤

돌아오라, 나에게
돌아오라, 나에게

죽은 까마귀가 호두나무 위로 거대한 날개를 편다
- 김성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창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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