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닿는 곳마다 생명음 울러 퍼지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의 삼면 벽이 꽉 차 있다.
잘 쪼개어 차곡차곡 채운 장작더미 옆으로는 기왓장이 켜켜로 쌓여있다. 벽면에 걸린 곡괭이들은 일렬종대로 가지런하고 그 아래엔 호미와 낫들도 종류대로 진열되어 있다. 화분에 담긴 식물들도 키 맞춰 오순도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이 댁의 모든 무생물들은 질서정연하다. 그래서인지 마른 장작도 연장도 각종 자재들도 살아있는 듯한 생명음이 울러 퍼진다. 특이하다. 나름대로 숱한 가정집을 방문해 보았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모든 것이 움직이며 숨 쉬는 것 같은 이 묘한 분위기는 무엇 때문일까?

얼마 전에 퇴원하신 김복성 어르신은 날씬한 몸매에 하얀 피부의 도회 남정네 분위기다. 거기에 그레이색 페도라를 쓰고 계시니, 츄리닝을 벗고 연분홍 체크 남방을 걸치면 영락없는 멋쟁이 신사의 모습이다. 반갑게 머리를 내게 부비는 흰 강아지는 큰따님의 시댁인 진도에서 보내주신 ‘진돌이’고 마당가의 조그만 털복숭이는 ‘메리’란다. 둘 다 반갑다고 꼬리를 있는 대로 흔드는 폼이 인정 많은 주인을 닮은 듯 싶다. 
어르신의 안내를 받아 현관문 입구에 닿으니 신발도 나란히나란히 줄맞춰 있다. 특별한 물건은 없지만 어딘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질서 정연하다는 느낌이다.
“안주인이 엄청 야무지고 손끝이 매운가 봐요. 어쩜 이렇게 깔끔하게 해 놓으셨어요?”
“내 혼자 사는데 누가 뭐 어지럽힐거나 있남?”
“어르신께서 이렇게 살림을 하신다구요? 설마요?”
“할멈 떠난 지 20년이 넘었다우. 야속한 여사람, 날 두고 쉰일곱에 훨훨 떠났지. 간경화로 고생 많았어. 원자력 병원으로 어디로 잘 한다는 소문난 곳 여러군데 돌아 댕겼네. 복수가 차올라 물 빼내고 주사 맞는다고 환자는 몸고생, 식구들은 맘 고생, 모두가 힘들었어. 아프면 안 돼. 죽을 때까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것이 젤루 큰 복이여.”
어르신의 말씀 속에 깊은 슬픔과 외로움이 침잠되어 있었다. 듣고 있자니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주위를 일제히 덮어 버린다. 이쯤에서 화제를 바꿀 때가 되었다.
넌지시 고향 얘기를 꺼내며 말머리를 돌렸다. 
“내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영월에 살았지. 먹고 살길 찾아 부모님은 혼인 하자마자 탄광촌에 들어가셨어. 나는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새깜둥이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놀았어. 봄에는 진달래꽃이며 송순을 벗겨 먹고 가을에는 으름과 다래를 따 먹으려 산으로 돌아다녔지. 배고프고 먹을 건 없었지만 걱정 없이 실컷 놀았으니 그때가 좋았지. 6.25가 나고 인민군이 밀려오니 고향으로 피난을 온 겨. 이불 보따리에 먹을 것 챙겨 넣고 내 손 잡고 산길을 걸어걸어 이곳에 돌아왔지. 내 혼인 전에 부모님 모두 돌아가셔서 내 손으로 산소에 묻어 드렸어.”
그나마 얼마간의 땅이 있어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가 건축일을 익히셨다고 한다. 대전 어디쯤에서 일하다가 함바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부인을 만나 혼인하게 되었다. 
“내야 돈 벌어야 되니 객지로 떠돌지만 집사람은 발붙이고 살아야잖아. 고향 집에 신접 살림을 차리고 나는 또 일하러 떠났어. 그렇게 세월 흐르니 아들 둘에 딸 셋이 태어나 대가족이 된겨. 식구가 늘어나니 돈 쓸데는 더 많아지더라구. 먹여 살려야지, 학교 보내야지, 남부럽지 않게 자식들 건사하느라 내 허리가 다 휘었구먼.”
아드님 얘기를 꺼내니 금방 얼굴이 환해지신다.
“큰아들이 화가여. 서울 경기대학교 회화과 졸업하고 그림을 엄청 열심히 그려대더니만 화가로 먹고 사는 게 솔찮은가벼. 지금은 미술학원 원장이여. 저기 그림들 있잖어. 우리 큰아들이 그린거여. 저 잘 생긴 자화상이 아들이여.”
자식 얘기만 나오면 입에 침이 튀도록 칭찬하는게 부모 심정이다. 자식 얘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굳이 자랑할게 없어도 부모 눈에는 최고의 인물이요, 최상의 실력이며, 최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들 이야기에 이어 효성 지극하고 자상한 딸들 칭찬이 한 바가지다. 혼자 사는 아버지 끼니 거르지 않으시게 구미구미 반찬을 챙겨주고, 철따라 옷이며 이불 갈아주고, 생신이면 즐겨 착용하시는 모자 사 온다고 자랑하신다. 
그러고보니 거실 서랍장 위에 갖가지 모자가 주루룩 늘어 서 있다.  
“물건들을 잘 챙기시고 간수하는 폼이 프로세요. 특별한 기술이 있으신가요?”
“건축일 하다보면 연장을 잘 챙겨야 하는게야. 솜씨도 필요하지만 어떤 연장을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한 법이유.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찾아 쓸 수 있도록 정리정돈을 잘 해야하는 겨. 내가 75세까지 현장에서 건축일 했으니 50여 년을 수족같이 부린 연장이 동반자가 된 거여. 이젠 쓸모도 쓸데도 없지만, 귀하고 소중해서 어디 구석에 쳐넣을 수가 있어야지. 날마다 쳐다보고 쓸고 닦느라고 늘어 놓는거여.”
“집안의 모든 물건들도 그렇게 챙기고 갈무리 하시는 거예요?”
“그럼,‘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떠난다’는 말이 있잖아. 우리 집 물건들은 모두 내 눈에 금방 띄게 세워놓고 얹어 놓고 살어. 나이가 드니 잊음이 흔해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어디다 뒀는지 모르게 된단 말이지. 먼지가 쌓이지 않게 먼지털이로 탈탈 털어내면 돼.”
어르신의 말씀을 듣는 동안 살아오신 내력이며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평생토록 연장을 손에서 떼놓은 적 없는 기술 장인의 폼새가 느껴진다. 
“내가 말이여, 학교에 리모델링 공사하러 여러 번을 갔어. 선생님들이 칠판 앞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볼 때마다 부럽더라구. 내는 다음에 태어나면 선상질 하고 싶어. 머리에 든 것 많은 선생이 되면 살기도 좋잖어. 몸도 노동하는 것 보다 편하고 말이여. 내 속에 든 것을 남한테 가르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여?”
동네 반장을 맡아서 마을 일에도 앞장서는 어르신은 속 깊으시고 정 많으신 분이다. 객지에 나가서 사는 자식들 마음 쓰이지 않게 건강히 잘 지내다가 때 되면 훌훌 떠날 것이라는 말씀을 들으며 마당에 나왔다. 화가이신 큰아드님의 작품이 즐비하게 걸린, 작은 방 마루에 앉아 손 흔드는 어르신을 또 뵐 수 있을까?

작가 남외경
작가 남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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