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래 (금산 간디학교 교사)
[슬며시 내민 책 한 권] 왜 포기하게 되었을까?

지난해 한여름 충북 영동군 영동읍의 한 카페에 강연 차 온 김현수 교수(저자)를 보러 갔다. 지역의 교사 모임에서 새 책(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을 낸 그를 초청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갈까 말까 고민 끝에 갔다. 사실 귀찮아서 가기 싫은 마음도 컸지만,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갔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는 것은 어색했지만, 인상 깊었던 좋은 강연이었다. 

그는 강연 서두로 왜 롱패딩이 유행하는지, 언제까지 유행할지를 얘기했다. 아직 안 사준 부모는 이 유행은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믿고, 최근에 사준 부모라면 이 유행이 오래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우스개지만 일리는 있다). 그는 현재의 교육 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롱패딩의 유행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롱패딩은 자기에 좋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하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잠을 많이 잔다. 후드까지 뒤집어쓰면 더 아늑하다. 안에 뭘 걸쳐 입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비몽사몽인 채 대충 걸치고 학교 가서 엎드려 있기 좋다. 학교에서 자기에 참 좋은 옷이라는 말이다. 우리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이 롱패딩 이야기에 함축적이면서 상징적으로 녹아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

"말하기도 부끄럽고 지겹지만 '승자독식'과 '획일성에 따른 평가' 그리고 '끝없는 서열화'가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시스템이다.  " (P9)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휴식에 할애한다. 잠은 최고의 휴식이고, 이왕이면 꿀잠이 좋다. 더 중요한 시간이 학교가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다. 학원에서, 인터넷으로, 스마트폰으로 공부한다. 또는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놀고, 그도 저도 아니면 집에서 유튜브나 게임으로 즐겁게 지낸다. 롱패딩은 그래서 참 실용적인 옷이다. 의미 없는 시간을 꿀잠으로 보내기에 필수품인 셈이다. 롱패딩의 유행이 사그라드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요즘에는 '이유 없이 반항하는 청춘'보다 '잠자는 교실의 거인들'이 진료실을 찾는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P28)

저자인 김현수는 정신과 교수이면서 서울의 대안학교인 '성장학교 별'의 교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볼 일이 많고 풍부한 사례를 가진 사람이다. 요즘 아이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치유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얘기는 귀 기울일 가치가 크다(그는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이다). 혹시 그가 다루는 아이들이 극히 일부의 심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면 편견이고 오산이다. 우리가 당장의 일들에 치어 관심이 적어서 무딜 뿐, 청소년들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아쉽게도 나도 그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고 따라 할 수 없다. 아픈 아이들의 현상(자해, 따돌림, 무기력 등)을 알기는 하겠는데 잘 이해는 안 된다. 그래서 김현수 교수의 책이나 강연을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의 책과 다른 좋은 책을 더 읽다 보면 조금은 요즘 아이들과 눈높이가 얼추 맞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좀 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심드렁한 느낌이다(학교가 휴식의 장소여서일까?). 에너지 수준이 낮고 역동적이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은 화가 나 있다기 보다는 불편해하고 짜증 내고 귀찮아한다. 그러다가도 맛있는 걸 먹고 스마트폰만 쥐면 금방 행복해진다. 나서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파편화되어 있고 대체로 냉소적인 느낌이다. 애늙은이들 같다고나 할까? 세상 물정을 알 만큼 아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포기가 빠른 것도 같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불합리하다고 불만을 표출한다. 그러나 '포기가 빠르다'는 것은 결과다. 왜 그런지 살펴봐야 한다. 어른들이 외면하는 게 그 부분이다. 어른들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을 봐야 한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포기한 사람의 정서 상태는 홀가분할까, 아니면 그래도 포기하기까지 나름 고민하면서 힘들었을까? 한마디로 말해 세상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른들이 보기에 아이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가볍게 포기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뿐이다. 아이로서도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자기 하나거나 겨우 둘일 텐데 자신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학을 포기하고 '아 신난다. 이제 수학에서 해방이다' 이러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아이도 너무 화나고 힘들고 괴롭고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라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P35)

어른들의 분석과 판단은 단편적이고 성급한 경우가 많다(우리는 한번 결정하면 다시 생각하기 싫어한다). 포기한 것은 결과다. 아이가 보낸 좌절의 과정(생각보다 긴 시간)에 대한 이해는 없이, 인내심이 없고 패기가 없다고 쉽게 말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혀를 차고(남의 아이 일) 나무라기만 한다(내 아이 일). 

"사람은 이른 나이에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경험을 반복하면 나중에 자신에게 나쁜 결과가 오거나 손해가 생긴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학습된 무기력의 핵심이 오늘 갑자기 하기 싫어져서 무기력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드시 그 전에 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했던 시절이 있고 그런 시절을 겪었기에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것을 학습한 결과 무기력한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 (P38)

왜 포기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알아야 다시 에너지를 가지고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을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어른들이 교육에 관심을 갖아야 하고 아이들과 어울려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마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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