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짭쪼롬한 갯내음 따라 내 생이 흘러가요

 

내는 김천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님의 여의었소.
세월이 갈수록 부모님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 하오.
꿈속에서라도 한번 만나 뵙고 싶지만 무정하신 두 분은
저 세상살이가 너무 좋아 딸내미 정희는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소.

조실부모한 나를 거둬주신 것은 인정 많고 애살 많은 이모였소.
천덕꾸러기였을 내를 이모님 내외분은 친자식들과 꼭 같이 먹이고 입히고
챙겨주셨소. 생각하면 할수록 고맙고 사랑 깊으신 분들이셨소.
그 세월에 학교가 가당키나 했겠소?
초등학교나 겨우 나와서 이모님 가게에서 일 도우며 밥벌이 하다가
야물고 마음씀씀이 괜찮고 살림 알차게 간수하는 총각이 있다는 중신애비 말에 
내 나이 21살에 여기 백운리로 시집을 왔소.

그 전에 내 살던 곳은 청주였으니 도시 냄새 맡고 도회지 물 먹다가
사방이 온통 농작물만 가득한 시골로 오니 맘이 찹찹합디다.
새벽이면 소몰고 논밭으로 나가고 여물치고 소죽 끓이고
콩밭매고, 깨밭매고, 논두렁에 콩 심어라 하는데 막막합디다.
손에 익지 않은 농사일 함 해 보겠다 남편 따라 나서도 
모든게 어설프고 낯설어서 사방이 벽처럼 깜깜합디다.
논둑에 엎어지고, 밭고랑에 넘어지고, 봇도랑에 발빠지고
낫질에 손가락 베이고, 호미질에 발등을 찧는게 도통 내 일이 아입디다.
그렇다고 밥하고 빨래하는 집안일에만 매달릴 수 없어
먹고 사는 일 찾아 나선 게 봇짐장사였답니다.
충주 이모네 옆집 아지매가 고향이 갯가람서 건어물상을 했었지요.
내는 처녓적부터 그 아지매한테서 풍기는 갯내가 좋습디다.
아지매는 항상 앞치마를 걸치고 장사를 하셨는데 온 몸에서
간간짭쪼롬한 소금 내음과 갯내음과 젓갈내음이 납디다.
산골로 시집오니 그 갯냄새가 미칠 듯이 그리워서 호미는 냅다 밭고랑에 던지고
청주시장 그 아지매한테 가서 보따리 장사 하겠다고 청을 넣었습니다.
걸어다니면서 팔아야 하니 
무겁지 않고, 재고 안 남고, 부피 없고, 잘 팔리는 걸 골라야 하는데
세상에 정자 좋고 그늘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이문 많이 남고, 아무나 손 타고, 오래 둬도 되는 물건이 어디 있습니까?
멸치, 꽁치, 명태, 오징어, 김, 미역을 한 보따리 이고 와서
동네마다 외고 돌아 다니며 팔았습니다.  
집집에 돈이 없다하면 쌀이며 보리, 콩이며 깨, 팥으로 바꿨습니다.
목이 아프게 이고 간 건어물보다, 
더 무거운 곡식들을 이고 마을로 오면 목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돈으로 바꿔 자식들 학비 줄 생각에 발걸음은 가벼웠지요.
그 장사를 60살 넘을 때까지 했으니 내도 참 억척이고 고집쟁입니다.
남은 것은 골병든 내 몸이지만
우리 새끼들 당당히 키워냈으니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고 장합니다.
작년에 애들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병구완 해 드렸고
작은 딸 귀빈이가 몹쓸 병에 걸려 그 병구완으로
서울 의료원을 울면서 들어가고 눈물바람으로 나왔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귀빈이가 서른 넘어 혼인하여 남매를 낳아 기르며
병도 완치가 되어 지금은 건강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우체국에서 일하며 돈도 벌고 있으니 참으로 장하지요.
호사다마라고 큰사위가 췌장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사별의 아픔을 겪은 큰딸 은순이는 그래도 꿋꿋이 남매를 모두 혼인시키고
이제는 큰손녀까지 결혼하였으니 아프고 힘든 일은 다 지난듯 싶습니다.
큰딸은 음식 솜씨가 좋아 학교 식당에서 학생들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네요.

제 자랑 같지만, 제가 음식을 만들어 주면 사람들이 맛나다고 합니다.
복지관에서 밥하고 청소해 드리는 허드렛일 도울 때 잡채를 만들면 인기 좋았지요.
나만의 특별 비법은 멸치 육수를 짭쪼롬하게 뽑아서 살짝 두르는 거예요.
노인들은 촉촉한 음식을 잘 잡수시는데 육수를 넣어 푹 익히면
잡채맛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서 목에 술술 넘어간다고 하더이다.
내는 아직 외국여행은 한 번도 못 갔지만 국내 여행은 안 간데 없이 다 갔어요.
딸들이 자꾸 여행가자 청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갈 곳,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외국까지 가서 그 아까운 돈을 뭐하러 쓴답니까?
내가 즐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자연인이다’를 보면 산 속에서 조용히 사는 분들이
참 좋아보이고 즐거워 보입디다.
아이고, 내는 자연인처럼 산 속에서는 못 살지만 그냥 좋아서 보는 게지요.
내는 술도 못 마시고 속에 흥이 없어서 노래 부르고 춤추지는 못하지만
조용조용히 살아가고 있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 박흥남이가 전화 한번 해 주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고
큰딸 은순이가 목에 두르라고 사다준 보랏빛 스카프는 질리도록 매고 다니고
작은딸 귀빈이 사진은 날마다 보고 또 보며 세월을 보냅니다.
작년부터 마당에 닭을 11마리 키우는데 달걀을 낳으면 자식들 주고, 이웃들 주고,
노인정에 가져가서 나눠먹는 재미가 달달 합니다.
내 평생은 바다 내음을 닮았고, 내는 지금도 그 냄새를 좋아합니다.
음식도, 세월도, 사람의 삶도, 간을 잘 맞추면 행복한거 아닌가요? 
간간짭쪼롬한 갯내음 따라 내 생은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작가 남외경
작가 남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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