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리 김일분 어르신 (1933년 ~) 구술생애사
백운리 김일분 어르신 (1933년 ~) 구술생애사
  • 옥천닷컴
  • 승인 2020.04.1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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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지기 논을 다 채워도 남을 내 눈물!

대문에 걸린 《김일분》이란 문패를 보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따스한 봄볕이 가득하다. 마당 가운데는 잔디가 파릇하고 삼면에 풋마늘이 줄 맞춘 병정처럼 나란하다. 어르신의 성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오늘은 무슨 굴곡 깊은 사연이 행간과 여백을 가득 채울까? 현관의 미닫이 문은 굳게 닫혀있다. 삐걱이는 그 문 안에 계신 분이 궁금하다. 풍채 당당하고 자존심으로 방어본능에 예민할 듯한 어르신 한 분께 허리 깊숙이 인사드린다.
“어르신, 살아오신 귀한 말씀 들으러 왔어요.”
“아이고야, 나는 일자무식에 말도 할 줄 몰러. 나 그런 거 못해. 안할거여”
“그럼 잠시 앉았다 갈게요. 저 마늘은 언제 저렇게 자랐대요? 고랑에 풀 한 포기 없이 정갈한 걸 보면 손끝이 매운 어르신이네요. 저 마늘처럼 살아오신 거 아니세요?”
이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열린 일분할머니는 청산유수로 말씀을 쏟아내신다.

“글씨 말이여, 6.25때 큰오빠가 대구 팔공산에서 전사하고 넉 달 뒤 중신애비가 찾아왔어. 큰오빠와 어린 시절 국민학교를 같이 다닌 청년이란디, 거짓말 안 보태면 어디 중신이 되는겨? 죽은 오빠같이 생각하고 살믄 된다길래 덜컥 혼인이 결정된거여. 내 어릴 때는 외딸로 자라 귀염을 많이 받았지. 할아버지는 바깥나들이 가실 때 삿갓에 도포 입으시고는 손녀 일분이 절 받고 나가시고 나들이에서 돌아오시면 또 일분이한테 절 받으셨지. 벼슬은 없어도 사람의 도리를 중히 여기는 양반댁이었어. 혼인하는 해에 염병이 돌아 생전 한번 호사누릴 가마도 못 타보고 걸어서 시집왔어. 호열자가 내 몸은 못 건드리고 내 시집살이의 고생만 남겨주고 간 겨.”
먼 산을 바라보는 일분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하다. 인생이 한바탕 꿈이라고 말씀하시는 표정에 주름살이 곱다. 봄꽃이 언제 폈나 싶더니 누가 뒤쫓아 오는 듯 이파리가 돋고, 열매 맺혀 고맙다 거두고 돌아보니 어느새 맨 몸으로 홀로 선 나무같은 인생길, 일분 할머니가 걸어오신 길 끝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안방 아랫목에 큼지막하게 걸린 사진액자 속 3남 2녀 다섯 남매와 손주들이 훈장처럼 남아, 살아내신 지난날들을 증거하고 있다.
“열아홉에 시집오니 서모시엄니 시집살이가 눅록치 않았어. 그 해 시아버님이 돌아가시며 내 손 잡고 시모를 잘 부탁한다 하시데. 떼꺼리도 없는 집이라 당장 초상 칠 일이 걱정인데 친정에서 쌀 2말에 삼베 2필 보내 주시는겨. 우찌우찌 장례 치루고 나니 살아갈 길이 막막하데. 신랑은 군대는 안 가고 의용경찰 했지. 서모시엄니가 하나 남은 아들 우찌나 챙기시는지 내는 신랑 얼굴 볼 새도 없었어. 새벽녘에 집에 들어오면 시엄니가 방에 불러 들이는거여. 그 방은 추우니 뜨뜻한 내 방에서 한 숨 자고 낼 또 순찰 나가야지. 내는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시엄니한테 한 마디도 못 했어. 명색이 조신하게 자란 양반집 딸인데 어른이 시키는대로 해야하는 줄 알았잖어.”
한숨 한 번 내쉬고 마당을 보시는 일분 할머니의 앞가슴이 벌름거린다. 한 깊은 그 세월을 어찌 말로 다 쏟아낼 수 있으랴. 시집와서 살아낸 70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어찌하여 그 많은 일들을 다 쳐 내고, 식구들 건사하느라 허리 한 번 못 펴고 살았는지 아쉽고 아프시리라. 그래도 돈 벌어 자식 키우고 시엄니와 남편 챙기는 가장으로 살아왔으니 헛되이 산 것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시는 일분할머니의 웃음이 다붓하다.
일분할머니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을 적신다. 흘린 눈물을 모았으면 논 다섯마지기 채우고도 남을거라는 말씀에 동의한다. 그토록이나 모진 세월을 어찌 그렇게 순박하고 어질게 살아오셨을까? 여자는 걸음걸이도 반듯하게 일자로 걸어야 한다는 친정할아버지의 가르침과 신식 학문을 배우지 못한 무지 때문이라는 말씀 또한 머리가 끄떡여진다. 

“내가 아니면 독에 보리쌀 한 톨 넣어줄 식구가 없으니 날품을 팔았어. 그 시절 쌀 한 말이 75원인데 닷새를 일한 품삯으로 쌀 한 말을 샀어. 보름 품삯이 쌀 2말과 보리쌀 1말이여. 보름을 일하고 곡식 세 말을 받아 곶간을 채우믄 눈물이 났어. 그걸로 우리 식구들 밥은 안 굶잖어. 미친 듯이 일하고 일거리를 주는 이웃들이 고마웠어. 남의 집 일을 해 주고 남은 시간에 두부를 맹글었어. 맷돌을 돌려 불린 콩을 깨부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잖어. 시간 줄이려고 불린콩을 이고 방앗간에 갔지. 갈아와서 두부를 맹그는데 간수가 중요혀. 그렇게 두부 맹글어 팔았더니,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는겨. 요새 사람들도 두부김치며 부침개에는 막걸리를 먹는다잖어. 아직 젊은 나한테 술을 팔아라하길래 못 한다고 했어. 근대 어쩌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내가 못한다 하믄 우리 식솔들은 우째 살어? 내가 두부랑 막걸리를 집에서 팔았당게. 근데 우리 영감이 내가 팔다남은 막걸리를 죄다 마셔 분겨. 남는게 없어. 쌔빠지게 일해도 두부에 막걸리 팔아도 살림이 나아지질 않어. 그러구러 십 년 세월이 흘렀지.“

■ 그 세월을 어찌 말하랴. 그래도 세월은 흐르고 꽃은 해마다 피는 것을.
“내 혼인한지 10년 만에 첫아들 배수일을 낳았어. 아들 낳았더니 신랑이 곁을 주더라구. 태일이 상일이 미경이 영란이를 내리 낳았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그 세월이 좋았어. 그런 거는 누구라도 알거잖어. 내 인생에 그때가 황금기야. 느지막이 낳은 자식들이 다들 잘 살어. 첫째 수일이는 중학교 등록금이 없어 헤맬 때 칡거지로 18,000원 선금 받아 납부하고 목을 놓아 울었지. 큰아들 학교 보낼 생각에 기분이 좋아 겉으로 울면서도 속으로 웃었어. 내 쌓인 한이 결 고운 명주실처럼 풀려나가는 것 같았지. 그렇게 세월 보내고 나는 일케 늙었네. 우리 막내아들 상일이는 직업군인이야. 걔가 월급 받아 용돈 보내 줘. 그 돈으로 이웃 할마씨들한테 빵과 과일 사 줌서 내가 기를 펴. 딸 둘도 영특하고 정이 깊어. 우리 둘째 며느리는 내 다리 아픈데 치료 못 받는다고, 미국 사는 지 형제한테 부탁에서 약도 보내달라고 해. 내가 이래봬도 미국약 펑펑 바르는 할마시야. 그 약 덕분에 내 다리가 많이 좋아졌어. 우리 며느리도 딸 둘도 효자여.”
자식 자랑에 기운이 뻗은 일분할머니 입이 귀에 걸리셨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티비 옆에 놓인 꽃바달을 안으신다. 목화와 안개꽃이 드라이플라워로 꽂힌 꽃다발은 희고 보드랍다. 할머니 방을 환히 밝히신다. 
“내 큰 손주가 생일에 준 꽃이여. 다섯 살에 지 엄니랑 헤어지고도 얼마나 당당히 살아왔는지 대견하면서도 애틋해. 맘이 아퍼, 사는게 그런건가 벼. 태어나고 사는 동안 이리저리 외롭고 아프면서도 또 살잖어. 내 새끼들이 건강하고 다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내야 뭐 바랄게 있겄어? 살다가 자는 잠에 소롯이 죽는게 소원이여. 난 자다가 죽을라꼬 요새는 머리카락을 정갈히 챙겨. 쑥쑥하게 죽으모 자식들 눈에 얼마나 추해? 난 죽을때도 깔끔하게 가고 싶어. 인생은 일장춘몽인거여.”
일분할머니의 은빛 머리카락에 다사로운 봄볕이 얹힌다. 그동안 참 열심히도 살아온 생을 위로하듯이. 88년 동안 얹고 다녔던 저 봄볕을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이고 살까? 
다음 생에 태어나면 공부하는 사람, 학교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할머니의 꿈길에도 저 봄볕 가득히 쏟아졌으면!

작가 남외경
작가 남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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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근 2020-04-17 22:40:43
어머님 어머님 우리들의 어머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