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뒤숭숭한 가운데서도 한 해 풍경은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거리에는 벚꽃이 날리고 사람들은 밭을 갈고 씨감자를 심고 묘목도 심고 바쁘게 움직입니다. 혼자서 또 둘이서 식당에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요. 지역 양조장에 가보면 농민들이, 식당 주인들이 슬슬 20리터 플라스틱 말통에 막걸리를 담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막걸리 한 잔은 빼놓을 수 없는 봄의 풍경입니다. 이번에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막걸리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국순당, 지평, 해창 등 전국 유명 막걸리도 좋지만 자글자글 우리 양조장의 술 익어가는 소리를 알면 혼자 술잔을 기울여도 그 맛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양조장마다 술을 젓는 사람의 이야기가 다르고 각각 구수한 향이, 달큰하고 쌉싸름한 맛이 모두 다르거든요.

 1985년 양조장 일을 시작해 지금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 군북양조장, 1930년부터 4대에 걸쳐 부지런히 막걸리를 빚어온 이원양조장 등 지역에 오래된 양조장 4곳 중 2곳을, 또 군북면에 최근 새로 생긴 전통주연구원까지 모두 세 곳의 지역막걸리 명소를 돌아봤습니다. 여기에 읍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옥천막걸리(이원‧증약막걸리도 읍내 슈퍼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까지 포함해 옥천‧이원‧증약막걸리의 맛 비교를 빼놓지 않았으니 즐겨 읽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40년 역사가 그대로 "증약막걸리 '맛'으로 '승부'한다"

군북면 증약리 군북양조장 홍정일씨 인터뷰

 4번 국도를 타고 군북면 증약정류장 즈음 샛길을 타고 내려가면 찰방교를 보이고, 찰방교를 건너면 오래된 고동색 벽돌건물이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건물 입구에 ‘군북양조장’ 세로간판이, 멀리서 보면 건물 3층 꼭대기에 “증약막걸리 ‘맛’으로 ‘승부’한다”는 가로 간판도 보인다.

6일 군북양조장 사무실에서 아버지 홍상경(74)를 도와 양조장 운영을 맡고 있는 아들 홍정일(48)씨를 만났다. 사무실 한편에 걸려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보면 1985년도 표기돼 있다. 실제로 건물을 처음 짓고 시설을 마련한 사람은 1934년 영동세무서 주세계에서 근무하던 김우영씨다. 이백리가 고향이었던 김우영씨가 얼마간 양조장을 운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양조장을 넘겼고, 이사람 저사람 여러번 주인이 바뀌었다가 1980년 즈음 영등포 범식품화학공업주식회사에서 막걸리를 연구하고 또 남부3군 양조기술관리사로 일했던 홍상경씨가 인수하기까지 이르렀다. 

양조기술관리사로 일했던 아버지도 굉장히 바쁜 사람이었지만 양조장을 인수하고 나서부터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지금이야 3층 벽돌 건물이지만 당시에는 1층짜리 슬라브 건물이었고,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시작할 때는 트럭도 없어서 아버지는 옥천읍 금구리 집에서 640번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어머니도 정말 고생하셨어요. 저희 양조장이 국도보다 낮은 곳에 있거든요. 술 사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국도에 있는 정류장에서 내려서 20리터 플라스틱 말통을 가지고 내려와요. 그럼 어머니가 막걸리를 가득 채워서 양손에 20리터씩, 40리터 막걸리통을 들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다시 올라가시는 거예요. 어르신들은 뒷짐 지고 따라 가시고. 막걸리는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미생물을 다루는 일이다보니까 하루도 쉬는 게 어려워요. 또 부모님 두 분이서 일하시다보니 더욱 그랬고요. 딱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 양조장 일만큼은 하지 말자’”

결심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2남1녀 장남이다보니 부모님의 일을 나 몰라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일이 바쁜데 함께 해주면 안 되겠냐, 부모님이 슬며시 꺼낸 이야기에 결국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 돼 양조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묵묵히 일하다보니 알겠다. 바쁘게 양조장을 오가는 단골들과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는데 정말 맛 좋다고 칭찬하는 손님들을 보니 바쁘고 힘든 사실보다도 더 지키고 싶은 가치가 보인다.

“아버지가 양조기술관리사로 일하면서 배운 기술들, 또 알음알음 알게 된 좋은 재료들을 모두 끌어모아서 만든 막걸리예요. 아버지가 원래 경기도 분당분이거든요. 옥천에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노력하셨을까. 지금 신규로 납품하고 있는 데도 있지만 대부분이 아버지가 뚫은 거래처이고 재료도 아버지가 동업한 업체에서 여전히 받아오고 있어요. 아버지의 맛 그대로 정말 잘 유지하고 싶어요. 저 역시 개인적인 시간을 내지 못해서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언젠가 제가 그랬듯 가족들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증약막걸리는 밀가루가 주베이스가 되는 밀막걸리다. 1960년대 이후 양조장에서 발효제로 흔히 쓰이고 있는 입국(일본식 배양균)뿐 아니라 전통누룩을 함께 써서 ‘맛이 진해 옛날 막걸리가 떠오른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 구수한 단맛이 톡 쏘며 들어왔다가 가볍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고, 마지막에 새콤함과 막걸리 특유의 떫은 향이 입에 남는다. 청량감 있으면서도 진한 막걸리를 좋아하는 분에게 추천한다.

 

“아이원, 향수… 우리쌀·우리밀로 만드는 옥천 프리미엄 막걸리”

이원면 강청리 이원양조장 강현준 대표 인터뷰

6일 찾아간 이원면 강청리에 위치한 이원양조장, 이원양조장의 역사는 장고하다. 1930년 증조부 강재선씨에서 시작해(당시 부지는 금강변에 있었다. 현재의 부지는 1949년 마련됐다.) 할아버지 강문회, 아버지 강영철씨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강현준씨까지. ‘강현준씨까지’라고 이야기한 것은 강현준씨가 온전하게 선대의 막걸리의 맛을 계승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선대들과 조금 다르다. 그는 7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원초, 이원중, 옥천고, 제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출판업도 하고 건축업도 하고, 건축 분야에서 창업도 했어요. 옥천에 돌아오게 된 건 2013년이었어요. 어머니가 허리가 안 좋아서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에도 회복이 안 돼서 보니까 파킨슨병이었던 거예요. 그때 아버지 나이가 80정도 되셨을 때였으니까 부모님 모두 육체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일단 한 달 정도 부모님 안정될 때까지는 함께 있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 옥천으로 왔어요.”

막상 와보니 진짜 문제는 양조장이었다. 아버지는 연로해졌고 어머니는 아픈 상황에서 양조장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접으려고 했다. 아버지도 수긍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좀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막상 폐업을 하려고 서류를 가져오면 아버지는 일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 사이에 세무서나 관리감독청과 갈등이 자꾸 생겼다. 

“증조부 때부터 내려온 가업을 접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던 거 같아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그럼 제가 술방이라도 리모델링 해드리겠다’ 말씀드렸어요. 감독청과 계속 트러블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또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였어요. 같은 처마 밑에 있는데 여기 하나만 리모델링 해봐야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데도 손 대고 또 손 대고... 돈이 막 들어가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멈출 수 없게 된 거예요. ‘본전’ 생각이 났거든요(웃음). 100퍼센트 자본주의적 마인드였습니다.”

2016년 3월까지 1년 6개월 정도 리모델링에 몰두했고 리모델링을 마친 후에는 본격적으로 양조장 일에 뛰어들었다. 과거 선대와 양조장 사진을 찾아 복원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술 만드는 기술은 물론 가양주연구소를 찾아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쌀과 밀을 모두 사용해 전통 이원막걸리의 맛을 따라간 ‘아이원 막걸리’와 전통을 넘어서서 오로지 우리밀만 사용한 ‘향수’막걸리 브랜드를 만들었다. ‘향수’에는 아무 감미료도 첨가되지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다. 단순히 ‘본전’만 생각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막걸리가 승부욕을 자극하는 게 있어요. 보름, 한 달 고생해 이만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변화를 주면 더 잘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싶은 게 있거든요. 오로지 우리밀만 사용한다던가, 아스파탐(감미료)을 전혀 넣지 않아본다던가... 요새는 최소한의 발효제를 사용해서 원재료인 곡물의 맛과 향을 더 풍부하게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아버지가 아프셨던 동안에, 또 리모델링으로 휴업하는 기간 동안에 본래 이원양조장을 이용하던 손님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프리미엄 막걸리 브랜드를 만들고 인터넷 판매를 시작하고, 내년에는 ‘시인의 마을’이라는 숙박형 체험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강현준씨는 이원양조장이, 이원면이 다시 북적거릴 수 있는 어떤 날을 꿈꾸고 있다. 

이원양조장이 현재 판매하고 있는 막걸리는 쌀과 밀이 절반씩 섞인 스탠다드 막걸리 ‘아이원 막걸리’와 100% 우리밀로 만든 막걸리 ‘향수’가 있다. 아이원 막걸리는 단 맛이 덜하고 약간의 신맛과 목 넘김이 시원하다. 뒷맛이 남지 않는 깔끔한 막걸리다. 누구나 질리지 않고 오래 마실 수 있다. 향수는 우리밀 100%에 감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인 만큼 구수한 곡물 맛이 풍부하고 시큼한 감칠맛이 난다. 비교한 모든 막걸리 중에서는 목넘김이 가장 무거운 편. 단맛보다 드라이한 맛을 즐기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일반 막걸리들이 6도인 반면 향수는 도수가 9도로 비교적 높다.

 

(옥천양조장은 사정상 취재에 응하지 않아 별도로 싣습니다)

옥천막걸리는 비교 막걸리들 중 가장 달달하고 신맛도 제법 강하다. 톡 쏘는 탄산으로 들어와 목 넘김이 가볍다. 시큼한 감칠맛이 입에 남는다. 달달하고 청량감 좋은 막걸리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전통 찹쌀막걸리, 과일·꽃향기 은은한 청주… 직접 만들어볼까요!”

군북면 국원리 향수을전통주교육원 김기엽 원장 인터뷰

상업주조인 지역 양조장 밖에 가양주(집에서 만든 술)로 만들어졌던 막걸리, 또 청주를 맛보고 싶다면 향수을전통주교육원에 방문하는 좋겠다. 

일반적으로 양조장이 지역 농민과 주민들을 위해 판매용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다면, 또 한편에는 집안에서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전통적으로 막걸리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사고파는 게 아니라 집안에서 비법처럼 전수되어온 술이다. 밀가루나 멥쌀보다는 찹쌀로 술을 빚어서 가격도 제법 된다. 일반 막걸리를 양조장이나 마트에서 구매할 경우 약 1L를 1천원~2천원 사이에 구매할 수 있다면 찹쌀막걸리는 1L에 1만원까지 가격대가 올라간다. 

향수을전통주교육원은 지난해 가을 처음 문을 열었다. 옥두맛집과 진수성찬 인근에 위치해 있다. 군북면 국원리 8일 만난 김기엽 원장이 빙그레 웃으며 설명한다.

“전통주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음주문화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사실 전통적으로 보면 조상들은 예와 도를 다하기 위해 술을 만들었거든요. 제사상에 술을 올리거나 손님이 오면 밥상과 술상을 같이 봐서 내보냈지요. 막걸리도 꼭 찹쌀로, 또는 거르고 걸러서 맑은 술인 청주를 썼어요. 술 문화에 자연스럽게 예와 도가 스며들었죠. 고관대작들에게 올라가는 술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을 남자는 주인(酒人) 여자는 대모(大母)라고 높여 부르기도 했어요.”

향수을전통주교육원은 말 그대로 직접 전통주를 만들 수 있는 교육원이다. 하루 코스(3시간 안팎)로 만들 수 있는 막걸리(단양주)와 한번 담은 술에 덧술을 대어 만드는 이양주, 삼양주 등 다양한 청주도 만들 수 있다. 이양주나 삼양주의 경우 하루 이틀 기간을 두고 2~3번 정도 교육원을 방문해야 한다. 교육과정에는 △찹쌀막걸리 △당귀주 △송순주 △연엽주 △석탄주 △과하주 △국화주 등이 있다. 

“술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개별적으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온라인 판매와 다른 식당에 판매하지는 않지만 원하는 지인분들이 많아 제조판매 허가도 맡았거든요. 보통 청주 위주로 판매하고, 시기에 맞게 방문하시면 찹쌀막걸리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꼭 한 번 맛보러 오세요.”

 

보통 양조장에서 만드는 생막걸리는 보관 기간이 짧아 타지역보다는 해당 지역 농민들이나 주민들이 주로 이용했다. 그러다 2000년 막걸리 ‘공급구역제한 제도’가 폐지되고 전국 유통망이 좋아지면서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막걸리들이 생겼다. 플라스틱 말통을 양손에 들고 양조장을 드나들었던 풍경은 이제 옛날 풍경이 됐을까. 하지만 맛은 그대로다. 1980년대 양조장을 인수해 이제는 은퇴를 바라보고 있는 군북양조장 홍상경 대표의 말을 끝으로 전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한 것이지만 제가 양조장을 하면서 지역에 계신 분들이 우리 막걸리를 ‘좋은 막걸리다’ 말씀하시는 게 나에게는 큰 보람이었어요. 이제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전부 다 해서 자식들에게 가르쳐줬고 또 그 자식들이 이어가겠죠. 정말 솔직한 이야기로, 정말 열심히 연구해서 만든 막걸리니까 오래오래 옥천의 좋은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됐으면 좋겠어요.”(군북양조장 홍상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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