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KDN 전 대전충남본부장 이경우 촌장의 귀농귀촌기
14가구 입주 예정, 와정리의 또 다른 자연마을 생길지 관심

군북면 항곡리를 지나 처음 나타나는 마을이 새거리, 새거리를 지나 만나는 마을이 거먹골, 대정분교가 위치한 마을이 자괏, 와정리라 불리게 된 본 마을이자 다름없는 외정이(와징이) 등 4개 자연마을이 군북면 와정리의 전부인 줄 알았다. 대청댐 수몰과 사라져서 잊혀진 마을이 이시울 마을이 있었다. 샛길로 한참 꼬부랑 부실한 농로길을 따라 2km 남짓 가야 하는 마을이니 모를 수 밖에. 전형적인 숨겨진 마을이다. 멀미가 날 정도로 높낮이가 울퉁불퉁하고 좌우 휘어진 각도도 만만찮다. 눈오고 비오면 초보 운전자는 차랑 같이 떨어지기 십상, 벌벌 떨면서 운전해야 가는 그 곳에 들어서면 널찍한 마을 자리가 펼쳐진다. 대청호반이 훤히 보이고 탁 트인 풍경이 꽉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준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호숫가 우거진 갈대밭과 칡덩쿨, 헝클어진 풀들이 거의 폐허와 같은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개척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마치 새마을을 일궈나가듯 원래 있던 마을 자리는 호수에 잠겼지만, 물에 잠기지 않은 변두리가 마을의 중심이 되었다. 이시울 마을은 현재 재건 중이다. 마을 재건에 선봉에 선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와정리 김우태 이장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경우 촌장이다. 그는 자칭타칭 촌장이 되었다. 본토박이 마을과 연결해주는 허브 구실을 하면서 새 마을 재건에 함께 하고 입주하려는 이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시울 마을에 땅을 사고 입주하려는 사람들은 벌써 14가구 가량, 다 들어온다면 1개반으로 독립될 수 있는 자연마을의 가구수와 맘먹는다.

 

■ 얼떨결에 이시울마을의 촌장이 된 이경우씨
마을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고 잊혀졌던 마을이 이경우 촌장의 노력으로 재건되고 있다. 한전의 자회사인 한전KDN 대전충남지역본부장(1급)을 역임하고 정년 퇴임 1년 남은 이경우(63) 전 본부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전이 고향으로 숭전대(현 한남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던 이경우씨는 한전에 평사원으로 취업해 최고 직급인 1급 본부장까지 이르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가만히 있어도 편안한 노후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던 그는 문득 시골로 들어가고 싶었다. 인생 2막을 자연과 함께 더불어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대전을 중심으로 컴파스로 원을 크게 그려 충남  부여, 서천, 전북 진안, 층북 보은, 영동, 옥천까지 빠뜨리지 않고 노후 살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주말마다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대전의 농협 다니던 친구가 군북면 와정리 이 땅을 보여줬다. 환타파인 펜션 외에는 집도 없는 허허벌판이었고 들어가는 진입로도 비좁을 뿐더러 상수도관 등 기존 인프라 설비등이 미비하여 집을 짓고 살기에는 어려운 여건이었으나 이상하게 그 곳이 마음에 쏘옥 들어왔다. 농협 다니던 친구도 같이 샀다가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 팔았지만, 그는 여기다 집을 짓기 시작했다. 대전과 지근거리여서 무엇보다 자주 올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새로 어떻게 집을 지을까에 대한 상상을 넘어 사람들을 더 끌어들여 옛 이시울 마을을 재건해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보통 귀농하면 관계를 단절하고 홀로 살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그는 아는 지인들을 부지런히 끌어들였다. 땅을 소개시켜주고 집을 같이 짓자고 했다. 

■ 배우지 않고 집을 직접 짓기 시작했다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어디 건축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건축현장에서 막일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그는 무턱대고 집을 짓자고 사람들을 꼬드겼다(?). 여러명이서 함께 지으면 무언가 지혜가 생성되리라 믿었던 모양이다. 유튜브로 집 짓는 것을 배웠다. 초기 공정부터 차근차근 함께 과제를 내고 같이 모여 상의하며 하나씩 둘씩 만들어갔다. 목조주택으로 40여 평을 짓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는 집을 짓기 전에 시범삼아 하우스 먼저 지었다. 하우스를 임시거처로 마련하고 거기다 공구를 잔뜩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사람들 휴식처 겸 주방과 의자, 탁자를 설치하고 툇마루도 하나 설치했다. 그 곳은 자연스레 이시울 마을의 임시 마을회관이 되었다. 카톡방을 개설했다. 그는 땅을 산 모두의 연락처를 확보하고 여러 공지사항을 알리고 온라인으로 논의했다. 그리고 공동의 기금을 일부 걷었다. 늘 연결되어 있는 예비마을 주민들은 무언가 그에게 의지했고 든든했다. 같이 한전KDN에서 일하다 퇴직을 앞두고 있는 김연수(고양시)씨도 이경우 촌장의 말을 믿고 땅을 샀다. 같이 집 짓는 것을 도와주고 본인 집도 곧 지을 예정이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군대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그들은 머지않아 한 마을에 같이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5월이면 집이 드디어 완공된다. 완공되기 까지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아는 사람만 안다. 지난해 5월17일 착공식을 거하게 진행될 때만 해도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순조로울 거라고 예측했다. 당시 착공식에는 20여 명의 지인들이 와서 첫 삽도 뜨고 화환도 보내주며 권역 건물을 빌려 거나하게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아내 임현숙씨도 처음에는 시골로 들어오는 걸 반대했지만, 캐나다에서 아이들과 7년 정도 생활을 한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부 사정은 어느정도 정리되어 갔지만, 뜻밖의 복병들이 외부에서 출몰하기 시작했다. 

 

■ 귀농귀촌의 텃세와 갈등은 넘어야 할 산
텃세가 사실 힘들었다. 합리적 대화로 풀어내고 조금 손해보더라도 겸손하게 마을에 스며들자는 생각으로 귀촌했지만, 쉽지 않았다. 김우태 이장은 마을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반겨했고 마을 행사 있을 때마다 찬조를 해주고 일을 도와주는 이시울 마을의 이경우 촌장을 흡족히 마음에 들어했다. 이경우 촌장도 마을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모두가 이장 마음 같지 않았다. 마냥 딴지를 걸고 어깃장을 놓는 것에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참았다. 인내하고 상대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풀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대청호를 바라보며 힐링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좋은 일만 생각했다. 물론 이런 어려움을 상쇄시켜 줄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편하게 ‘이씨’라고 부르면서 농사일을 가르쳐 준 장씨 할아버지 내외는 정말 은인 같은 분이셨다. 일일이 서툴게 농사짓는 것을 바로잡아주시고 언제 무얼 심고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음식도 나눠먹고, 늘 안부를 물었던 살가운 관계였다. 그 분이 얼마전에 돌아가셨을 때는 마음이 참 아팠더랬다. 그리고 딴지 걸고 어깃장 놓는 일부 마을 주민들도 폭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기로 했다. 임현숙씨가 말한다. 
 “살아보니 일면 이해는 하겠더라구요. 여기에 낚시꾼들이 정말 많이 오거든요. 그런데 뒷처리를 엉망으로 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 조차도 화가 날 때가 많거든요. 그 분들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도 외지인들에 대해 안 좋은 것들만 많이 봐왔으니 그런 선입견이 쌓여서 그런 대응을 하신게 아닌가 하고 이해를 하기도 했어요.”

■ 미리 귀촌한 안내면 김승연씨에게도 도움 받아
 도와주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한전 KDN에서 일하면서 알게 됐던 김승연씨는 고향인 안내면 현리에 귀농하여 시골생활의 일체를 전수해주었다. 묘목도 많이 갖다주어 감나무, 복숭아나무, 호두나무 등 곳곳에 심어서 어떻게 관리하는 지 잘 일러주었다. 김승연씨는 현재 농사도 짓고 대청정보통신도 운영하면서 지역에 잘 뿌리내리고 있는 귀촌 선배이다. 가끔 놀러와서 시골 생활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같이 나누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한 지역에 사니 저희로서는 큰 복이죠. 친한 사람들, 심지어는 저희 함께 일했던 직원들도 이사오고 싶다고 문의를 해와요.”
마을과는 더할 나위없이 잘 지내려고 한다. 마을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시울 예비입주자들과 논의해 꽤 큰 돈을 찬조한 것도 여러번이다. 김우태 이장은 마을과 함께 하려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참 고맙다. 
“귀농귀촌하는 사람들 중에도 까탈스러운 사람들이 많거든요. 어울리려 하지 않고 혼자 살려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시울 마을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마을일에 협조하려고 하니 고마울 수 밖에요. 그런데 아무래도 사라진 마을을 재건하려다 보니 해결해야 할 민원들이 많아요. 진입로 민원도 그렇고 상수도 민원도 그렇고요. 저도 올해 안에 적극적으로 건의하려고요. 옥천군차원에서도 인구 유입한다고 해놓고 이사와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적극 배려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장의 말처럼 14가구가 들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마을이 생성되는 것인데 택지조성과 개발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관계를 통해 들어와 새롭게 조성되는 마을일 경우에 더욱 귀하다. 
“이제 14가구가 차근차근 들어오기로 한 만큼 군에서도 진입로 문제와 상수도 문제를 해결해주면 좋겠어요. 저희 옥천에 살러 들어왔거든요. 앞으로의 삶을 옥천에서 뿌리내리고 뼈를 묻으려고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혼자 고군분투하며 사비를 들여가며 여러가지 일을 해왔는데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이장님도 그렇게 건의한다고 하니까 저희도 지켜보려구요.”
혼자 들어와 사는 건 쉽지만, 함께 어울려 살려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거창한 공동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각자의 인연으로 14가구가 이시울 마을을 재건하려고 힘을 모아내고 있다. 그 한가운데 이경우 촌장이 있다. 본부장까지 할 정도면 힘 안 들이고 편안한 노후생할을 즐기려 할법 한데 그는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내고 엮어내면서 어찌보면 갈등의 최전선에서 하나의 마을을 일구려고 인생 제2막을 열었다. 이경우, 임현숙씨 부부는 새로운 집에 이시울팜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언제든 머물수 있는 조그만 쉼터 겸 로컬푸드 판매장으로 만드는 꿈도 갖고 있다. 
조금씩 모여든 사람들의 손에 의해 변화되는 이시울 마을의 새로운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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