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정책의 핵심은 발빠른 정보 공유!"
"귀농귀촌정책의 핵심은 발빠른 정보 공유!"
  • 황민호 기자
  • 승인 2020.04.03 0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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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귀농 11년차, 표고버섯농가로 안착한 진용대씨
청성면 묘금리가 고향 동이면 석탄리에서 '옥천표고농장' 운영
군내 10여 표고 농가와 함께 올해부터 옥천향수표고작목반 참여도
동이면 석탄리에서 표고버섯농가를 운영하는 진용대씨. 하우스 6개 동을 수리해, 표고 배지를 놓고 키우고있다.
동이면 석탄리에서 표고버섯농가를 운영하는 진용대씨. 하우스 6개 동을 수리해, 표고 배지를 놓고 키우고있다.
진용대씨가 재배하는 표고버섯의 모습.
진용대씨가 재배하는 표고버섯의 모습.

 

딱히 귀농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홀로 늙어가는 어머니 병수발을 하느라 들어오다 보니 눌러 앉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랐던 고향이라 낯설지 않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으니 역시 예측할 수 없는 농사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다. 어머니가 지으시던 복숭아 한철 농사 가지고서는 먹고 사는 게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표고버섯 농사를 기획했고, 바로 실천에 옮겼다. 동이면 석탄리 산얼기 마을 인근에 나온 하우스를 인수한 후 개보수 했다. 총 6개 동을 수리한 후 그나마 쉽다는 표고 배지를 사서 쭉 나열해놓았다. 참나무에서 키우는 것 보다 훨씬 쉽고 편리하긴 했지만, 노상 붙어 있어야 했다. 일년 열두달 수확을 하느라 어디 놀러갈 수가 없었다. 하우스동마다 다 자라는 시기를 달리 하다보니 매일 일이 있다. 수시로 발걸음을 해야 하고 매일 봐주고 솎아줘야 좋은 표고를 얻을 수 있다. 1리터짜리 플라스틱 물통 절반만한 크기의 참나무톱밥이 그득한 그 배지 안에서 표범무늬 얼룩덜룩 표고가 쑥하니 올라올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단다. 가만히 보고 있어도 귀엽다. 버섯 속살이 쫙 펴지지 않고 옹송그린 채 통통한 기둥을 바탕으로 작은 우산을 뒤집어 쓴 모양은 그 자체로 먹음직스럽다. 

고향이라고 말처럼 귀농이 쉽지는 않았다. 진용대(56, 옥천읍 삼양리)씨는 청성면 묘금리에서 태어나 묘금초등학교(29회)를 졸업하고 동이면 우산리로 이사가서 영동 심천중학교와 영동상고를 나왔다. 그리고서 꾸준하게 타향살이를 했다. 서울가면 성공한다고 했지만 김우중씨가 경영했던 대우실업에서 한참 있다가 회사가 공중분해되면서 부산의 선박회사를 다니기도 했다. 우리나라 가장 큰 도시 두 군데서 각각 20년, 15년 생활을 했다. 35년 남짓 도시 생활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은 빈 자리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편리하게 충족되었지만, 맘 한켠에는 어머니가 있는 옥천이 자꾸 맘에 걸렸다. 

어머니와 가까이 있겠다고 그리로 갔더니 아직 남아있었던 잔 뿌리들이 고향 땅에 찰싹 하니 밀착해버렸다. 그러고서 온 가족이 이사를 왔다. 어머니는 3년 전 돌아가셨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일궜다. 회사를 다녀본 경험이 있던지라 막무가내로 실패만 하지는 않았다. 판매 유통도 홀로 개척을 했고 매일 나오는 표고는 대구와 서울 농산물 공판장에 직접 실어 나른다. 박스떼기로 내다 파는 것이다. 자체 브랜드 '옥천 표고'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소매보다는 도매로 많이 나간다. 아무래도 많은 양을 한꺼번에 팔기에는 그 곳이 편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각종 지원사업 정보도 타 지역 농가들은 어떻게 알고 지원을 받아 조금 더 돈 안 들어가게 농사를 짓는데 옥천은 정보가 와 닿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해서 군청에 들어가 따지고 그랬다. 일부는 개선되기도 했다.

"표고버섯 배지 지원사업 같은 게 보조사업으로 나와요. 그런데 이런 정보들이 널리 회자되고 공유되지 않아요. 담당자가 자주 바뀌기도 하고, 정보를 늦게 들어 신청시기를 놓치기도 하거든요. 영동 표고버섯 농가들이 그런 지원사업을 받고 저렴하게 배지를 마련했다고 들으면 속에 천불이 끓는 거에요. 폭염피해 보상도 정보가 늦어서 못 받았어요. 그래서 몇번 찾아가서 요구도 했죠. 농산물 유통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보의 유통이 굉장히 중요해요. 정부 정책이든 지자체 정책이든 널리 홍보해야 많은 사람들이 알고 활용하지 않겠어요?" 

그는 지자체 귀농 정책에 할말이 많은 듯 작심하고 쏟아냈다. 

"가장 필요한 게 정책이고 정보입니다. 인구를 유입하여 귀농인구를 늘이기 위해서는 정책을 수립하고 정보를 많이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죠. 특히 자본금이 없는 귀농인들에게는 초기자금지원이 중요하거든요. 각종 보조사업이라도 되면 쉽게 자리잡을 수 있죠."

"그리고 우리도 모여야겠더라구요. 그래서 표고버섯 재배농가들이 모여서 얼마전에 옥천향수표고버섯작목반을 만들었어요. 10여 농가 되는데요. 회장은 안내면 현리에서 표고농사 짓는 민병용씨가 총무는 이원에서 농사지시는 정상훈씨가 맡았어요. 경매장 등에 가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가 옥천이라고 하면 굉장히 반갑더라구요. 그래서 정보교환도 하자는 차원에서 자주 만나다보니 작목반까지 구성하게 됐답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답니다"

표고는 쉬운 것 같지만서도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다고 강조한다. 

"겨울에는 8시간 주기(아침과 저녁)로 여름에는 6시간 주기(새벽6시, 정오, 저녁 6시, 자정)로 표고버섯을 따요. 장시간 안 따면 표고버섯이 커져서 상품성이 떨어지거든요. 혼자서 하다보니 한꺼번에 많은 작업을 못 해요. 각 동마다 성장시기를 달리 하다보니 노는 날이 거의 없어요. 1박2일 놀러를 못 간답니다."

"물건이 남아서 못 파는 건 없지만, 가격이 문제에요. 중국산이 밀려들어오고, 배지가 가격이 꽤 나가고 교체시기에 현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 어느정도 매출이 나와야만 유지될 수 있어요. 매출액이 한해 1억원 정도 된다면 절반은 배지 사는데 쓰는 거에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대구 시장도 폐쇄되고 서울 시장도 축소되다 보니 물건 값을 제값 받기도 힘들어요. 킬로그램당 만원 하던 것이 절반도 안 쳐주다보니 죽을맛이죠."

그래도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귀농 11년차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 

"밤에 일찍 불이 꺼져 때론 유령도시 같지만, 익숙해지다보면 옥천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잘 해주고 계시지만, 귀농귀촌팀에서 조금 더 밀착 마크해주시고 정보를 많이 공유해주신다면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옥천에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옥천표고 구경하고 맛 보러 한번 오셔요. 석탄리 지나 옛날 한미산업 가는 길목에 작은 표지판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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