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업적 지닌 황영준 화백, 고향 옥천에서 기억해야”
“수많은 업적 지닌 황영준 화백, 고향 옥천에서 기억해야”
  • 양수철
  • 승인 2020.03.26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북화가 화봉 황영준, 조선화 장르 개척부터 공훈예술가 칭호까지
“옥천에서 미술관·토론회 등 황영준 화백 기억 위한 활동 나서야”
황영준 화백 전시회 총감독 이양재 고려미술연구소 대표 인터뷰
'황영준 탄생 100주년-봄이온다'(경인일보 주최) 전시회를 총 감독한 이양재 고려미술연구소 대표. 이양재 대표는 고향 옥천에서 황영준 화백을 기억하기 위한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화봉 황영준 화백(사진제공: 경인일보)
금강산 천불동계곡 절경(1974년), (사진제공:경인일보)

 

옥천읍 매화리 구덕재 출신 월북화가 황영준(1919~2002) 화백의 전시회 '황영준 탄생 100주년-봄이온다'(경인일보 주최)가 1월10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습니다. 황영준 화백은 북한에서 조선화의 장르를 개척해 공훈화가의 칭호를 받은 인물입니다. 남한에서 북한작가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회고전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내 작가의 경우에도 전 생애 그림을 전시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옥천신문은 지난달 황영준화백의 전시회 총감독을 맡은 고려미술연구소 이양재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이양재 대표는 황영준 화백이 북한의 한국화인 '조선화'의 기틀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북한 미술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높게 평가했습니다. 더불어 고향 옥천에서 황영준 화백을 기억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화봉 황영준 화백의 전시회 총 감독을 맡은 고려미술연규소 이양재 대표는 황연준 화백을 '조선화라는 장르를 제화하고 개척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더불어 황영준 화백이 북한에서 조선화(남한의 한국화)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이끈 선구라자고 봤다. 조선화를 이론화하고 기틀을 잡은 인물이라는 것. 북한의 예술가 최고 호칭 중 하나인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그다. 황영준 화백의 제자들 역시 북한에서 뛰어나기로 알려져 있다.

"황영준 화백은 북한에서 국가 공인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조선화라는 장르를 체계화하고 이론화해 기틀을 잡고 화풍을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북한의 주체미술은 조선적이면서도 화가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펼치는 걸 중시합니다. 황영준 화백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어요. 평양미술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제자들도 많죠."

이양재 대표는 중국 지인을 통해 황영준 화백의 그림을 입수했고 전시회 총감독까지 맡게 됐다. 지난해 12월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시작으로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황영준 화백의 전시회가 인천에서 열린 바 있다. 북한 화가의 생애 작품을 전시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 건 국내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남한 작가로서도 전 생애 작품이 전시되는 건 흔치 않다. 인천 전시회 당시 황영준 화백의 작품 220여점이 전시돼 대중과 만났다.

이양재 대표는 황영준 화백의 작품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양재 대표에 따르면 황영준 화백은 전통적인 조선시대 수묵화 화풍부터 근대 채색화까지 폭넓은 화풍을 보여줬다. 작품의 대상도 백두산부터 일상적인 마을 풍경, 인물 등 다양하다. 밝은 채색과 대담하고 거친 선묘·점묘법이 보이는 한편 서정적인 감각도 엿보인다. 특히 작품을 위해서 금강산 등 현장을 발로 뛰며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부터 2002년까지 52년동안 북한에서 활동했던 황영준 화백은 오랜 세월만큼 2천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황영준 화백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개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림에서 독특한 감각이 느껴졌죠. 특히 수묵화의 깊이를 보고 감동받기도 했습니다. 황영준 화백은 조선시대 마지막 어진을 그린 인물로 잘 알려진 이당 김운호의 제자였습니다. 이당 김운호 선생은 소림 조석진·심전 안중식의 제자이고, 안중식은 조선 3대 화가 중 한명인 오원 장승업의 제자죠. 황영준 화백의 그림은 조선시대의 수묵화 풍부터 근대 채색화의 모습까지 나타납니다. 깊이있는 수묵화 실력을 바탕으로 놀라운 채색 능력까지 보여준겁니다. 황영준 화백 그림의 특징 중 하나가 선묘법입니다. 짧은 선과 점을 바탕으로 그림을 완성하는거죠. 직접 발로 뛰며 그림을 그려내기로도 유명합니다. 황영준의 미술에는 조선화의 발전 과정이 농축돼있다고 보입니다."

■ "옥천군, 미술관 건립, 황영준 토론회 개최 등 미술의 고장 입지 다져야"

옥천에는 황영준 화백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술가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양재 대표는 황영준 화백이 옥천 미술계의 원로격이라고 봤다. 옥천 출신 황영준 화백을 기억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고 미술관을 건립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역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존하는 것이 미술계를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옥천의 문화·예술·관광자원을 살찌우는 길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옥천 지역의 대표 인물로서 문화·관광 측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황영준 화백의 업적과 작품을 봤을 때 정지용선생 만큼 고향 옥천에 큰 의미가 있는 인물이라고 봅니다. 황영준 화백이 월북작가이기 때문에 일부에서 이념적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미술로만 황화백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옥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술가들이 많은 상황에서 예술가로 유명한 곳입니다."

"고향 옥천에서 황영준 화백 미술관이 만들어져 황 화백의 업적과 작품을 기억해야 한다고 봅니다. 황영준 미술관이라고 해서 황영준 화백의 작품만 전시해야하는 건 아닙니다. 제주의 이중섭 미술관에도 이중섭 화백의 작품은 몇 개 되지 않아요. 황영준 화백 작품 뿐만 아니라 옥천 출신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옥천미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정지용 생가에서 황영준 화백이 자랐던 매화리 구덕재는 가깝습니다. 미술관이 구덕재에 생기면 정지용 생가와 함께 연계관광지도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자체에서 나서면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봅니다. 아직 북한에서도 황영준 화백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옥천에서 황영준 화백을 기억하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남 양덕 은하리 황금산 습작(1959년), (사진제공:경인일보)
백화원 수선화의 봄향기 습작(1956년), (사진제공:경인일보)
신재봉 천리마작업반 기수들(1961), (사진제공:경인일보)
채하봉의 봄(1979년), (사진제공:경인일보)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