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제 (옥천작가회의 회원, 동이면 세산리)

세월은 어수선해도 절후는 어김없이 우리들 곁으로 찾아오는가 보다. 아침 창가에 앉아 정원의 수목에 눈이 멎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가녀린 가지 위에 쪼르르  앉는다. 바람이 심술을 놓자 와르르 땅으로 쏟아져 내린다. 마치 참깨를 털 때 흰 알맹이들처럼.

만고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이순(耳順), 즉 마음의 눈이 열리면, 계곡물 소리가 광대한 부처님의 설법(溪聲便是廣長舌)이요. 거기다 목순(目順)까지 부드러워지면, 뒷산의 푸르른 산빛이, 그대로가 부처님의 청정 법신(山色豈非淸淨身)이라고 설파했건만, 나의 밴댕이 속은 왠지 침통에 젖는 일상이다. 그러나 궁할수록 정도를 가라 했던가. 길은 먼 곳에 있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세상은 어지러워도 얼마든지 행복은 곁에 와 있다. '작은 행복'이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곳에서 '행복, 아니 희망 백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자연의 숨결은 거침이 없다. 꽃과 나무와 바람이 전하는 싱그러운 생명의 입술이 우리를 반긴다. 처처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숨결, 신비한 생명의 기운이 대지를 설렘으로 충만 시키는가 보다. 자연은 인간의 영원한 모태이다. 확연무성(廓然無聖)이라 했던가? 세상에는 성스럽지 않은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모두가 존귀한 생명이요, 빛이며 진리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성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만든 세상에는 존귀하지 않은 물건은 있을 수 없단다. 모두가 부처다. 꽃도 부처요, 바위도 부처며, 하물며 개도 부처인 세상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실의 삶이란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오늘을 비탄하고 자조하는 영민한 부처들이 곧, 번민의 중생으로 화한 것이란다. 한 생각 깨달으면 오늘이 극락 당처요, 천당이며, 우리 모두가 곧, 부처란다.

왜, 최첨단의 시대를 걷고 있는 부처며, 예수인 우리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계절에 방황의 늪에 허덕이는가? 그것은 우리들이 현실을 보는 눈이 전도(顚倒)가 돼 있기 때문이란다. 자연은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자연을 '돈과 자본'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쓸모로만 사물을 접하려다 보니, 오늘의 현실이 비극 이란다. '코로나19'의 사태도 인간이 만든 비극이요, 첨단 문명이 빚어낸 참극이다. 세상엔 쓸모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 / 야훼께서 하신 일이다."

이것이다. 이렇게 하찮게 보이는 미미한 것들을 하늘은, 귀중하게 모시는 법을 안다. 이것이 인류구원의 메시지다. 오만과 편견으로 점철된 우리의 시각이 오늘의 사태인, 아수라장을 초래한 것이다. '코로나19'의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기 시작한 서막에 불과하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란 생각은 인간의 오만한 발상이다.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생명의 실상은 똑같다. 천지 만물은 나와 뿌리가 하나요, 한 몸이다. 고로 산하대지의 모든 것이  나의 둘도 없는 소중한 이웃이요, 벗이다. 풀의 생명이나 개의 목숨이나, 똑같이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는 눈이 중요하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선천적인 소경을 만났다.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자기 죄도, 부모의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불멸의 복음이요, 영악한 현대인들에게 요구하는 성인들의 청정법음이다. 이 소리를 듣지 못하면 진정한 행복은 요원한 일이다. 이런 눈으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야 한단다. 그럴 때, 이 세상은 모두가 축복이요, 희망이 아닐까? 

우리네 삶도 좌절했을 때, 주저앉은 다음에, 세상을 달리 보이는 눈이 열리듯,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 행복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가 축복이 될 수 있다. 비록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 난국이, 우리의 저력을 확실히 보여줄 때다. 우리는 그것을 만방에 과시할 수 있는 민족적 저력을 함축한 민족이기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결국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이제는 전 세계의 당면 과제가 됐다. 시절인연은 꽃피고 새 우는 봄이건만, '춘래불사춘'의 계절 같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긴 안목으로 풀자. 우리가 가는 길이 정답이다. 세계가 당면한 '코로나19사태'를 보다 민주적이고 개방적으로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을 부각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선제적 대응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대처하는 방법밖엔 없다. 어떠한 역경과 환란도 가장 민주적이요, 개방적인 국민성 앞에선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위기가 기회다. 오늘의 사태를 발판삼아, 우리는 가장 살기 좋은 대한민국으로 가는 방법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키자. 춘래불사춘의 시국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고, 피 묻은 칼에서 연꽃을 볼 줄 아는 민족이기에, 오늘의 시국을 분명히 슬기롭게 돌파할 것이다. 이 위기만 극복하면 삶의 활기가, 어느 곳에서나 졸졸 흘러넘치는, 국가적 역량을 전 세계가 목도할 것이다. 고지는 멀지 않았다. 힘내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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