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깨로 직접 미는 손칼국수와 매일 삶는 수육, 그리고 닭볶음탕과 오리백숙까지
마을 사람들과 상생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최영숙사장

 

“오늘은 꽁치조림, 파김치, 연근조림, 풋마늘무침, 보리새우무침, 오이무침, 동그랑땡, 김치, 올갱이국이 나갔어요. 매일 퇴근할 때 메뉴를 생각하기 때문에 내일 뭐가 나올지는 아직 저도 몰라요” 매일 반찬과 국이 바뀌는 식당을 가본 적이 있는가? ‘진구네 칼국수’의 최영숙씨(63, 이원면 백지리)는 타고난 영양사이다. 제철 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떠올려내는 것은 물론 150~200인분의 식사를 혼자 감당해내기도 한다. 매년 새해가 되면 주변 마을의 어르신들께 떡국을 대접하고 있는 것도 벌써 6년째다.

진구네 칼국수의 최영숙사장

 

■ 매일 메뉴가 바뀌는 7첩 반상, 직접 미는 손칼국수 등을 선보이는 최영숙씨
진구네 칼국수의 메인은 백반이다. 놀라운 것은 7첩 반상의 메뉴 조합이 매일 바뀐다는 점이다. 최영숙씨는 타고난 영양사이다. 메인 반찬과 국의 균형을 자연스레 생각해낸다. “보통은 아침 8시, 늦어도 9시부터는 조리를 시작하지요. 겉절이 외에는 전부 아침에 만들어요. 전날 밤 8시 반이나 9시에 문자로 재료를 주문해놓으면 유통업체에서 분류를 해주세요. 그럼 다음날 아침에 아들이 가서 재료를 받아옵니다.”
최영숙씨는 국이나 메인반찬 중 하나를 선정하게 되면 그에 어울리는 반찬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신선한 제철재료를 사용하고 인공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예를 들면 소고기국과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똑같이 육류라 함께 나가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요. 김칫국이 나가는 날에는 돼지고기 두루치기나 불고기, 소고기국이 나가는 날에는 생선이 메인 반찬이 되는 것이지요. 내일 소고기 미역국을 한다고 하면 메인으로 고등어조림이나 구이, 멸치볶음, 새우볶음, 풋마늘 무침, 무생채를 내는 식으로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해요. 철마다 또 반찬이 달라지지요. 봄철에는 두릅이나 방풍나물 등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매일 다른 메뉴가 나오기 때문에 손님들이 좋아하세요”
진구네 칼국수라는 이름답게 손칼국수도 별미라고 한다. “기계로 밀어서 손으로 써는 집도 많지만, 저희는 직접 콩가루를 넣고 제 손으로 홍두깨를 사용해 밀기 때문에 손칼국수라고 당당하게 말하지요. 미리 반죽을 밀어서 마르지 않게 봉지에 넣은 다음, 주문이 들어오면 칼로 썰어요. 손으로 밀기 때문에 면발이 부드럽습니다” 수육의 경우는 당일에 쓸 양을 예상해 미리 삶고, 닭볶음탕과 오리백숙은 예약을 받아 재료를 당일에 받아온다. “오늘 쓸 것이라고 예상되는 양을 미리 삶는데, 예상과 달리 안 나가면 우리가 먹지요. 묵은지도 시골집과 여기 냉장고에 보관해서 쓰는 것이에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콩국수도 판매해요. 벌써 콩을 두 가마니나 주문해놨답니다”

 

■ 집배원의 권유로 자리 잡은 식당, 마을 사람들과 상생하며 살아가다
옥천읍 구일리에서 진구네 칼국수를 손수 운영하고 있는 최영숙씨는 영동군 심천면 장동리에서 태어나 이원면 백지리로 오게 되었다. 남편이 농사를 지으면서 이원면 백지리에 자리를 잡게 된 것. “장사를 한 지 벌써 6년이 되었네요. 큰 애가 중학생, 작은 애가 초등학교 6학년 일 때 대전에서 ‘금강올갱이’라는 식당을 14년 정도 운영해서 식당일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최영숙씨는 17년 전 남편을 사고로 잃고, 몇 년이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연히 집배원이 권유해 진구네 칼국수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울증이 매우 심했어요. 여자 혼자 낯설어서 잘 오지도 않던 길이었는데, 집배원께서 김진구씨에게 이야기를 듣고 권유해준 덕에 지금은 이렇게 하루하루가 행복하네요”
‘진구네 칼국수’의 사장님은 진구가 아니다. 사장님의 남편이나 아들도 아니다. 사장님이 가게를 임대하기 전에 처음 가게를 하려고 했던 집주인이 바로 김진구씨다. 김진구씨가 식당을 하기 위해 준비했던 자리였지만, 준비하다보니 적성이 아니라고 판단해 임대를 결심하게 되었고 최영순씨가 이를 임대하게 된 것. 자세한 사정을 말하기 복잡하다보니 최영숙씨는 손님들과 웃으며 농담을 하곤 했다. “김진구씨가 가게를 시작하려고 하다가 바로 임대하신 것이라, 폐업신청은 했는데 새 간판이었어요.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게 해주셔서 같은 이름으로 다시 열게 되었지요. 손님들이 ‘진구가 이 집 아저씨예요?’ 그러면 ‘예’, ‘아들이에요?’ 그러면 ‘예’하면서 웃었지요” 
코로나-19로 인해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근처 공장 6군데에 나가는 40~50인분 정도는 고정적으로 배달을 간다.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150~200인분을 매일 직접 만든다. “점심에는 시간제로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지만, 백반세팅을 미리 해놓아야 해요. 작은 아들이 배달간 사이에 세팅을 해놓으면, 손님들이 알아서 자리를 찾아 앉으세요. 단골손님들이 많지요” 조리해놓고 팔리지 않은 반찬은 5년째 세산리 경로당에 드리고 있다. “일주일에 3~4번 정도 식사하러 오시는 분이 있는데, 오시면 다 싸서 드려요. 오리를 포로 뜨고 뼈가 같이 오면 압력밥솥에 고아서 드리기도 하고요. 올해는 경로당을 못 열어서 드리지 못하고 있네요”
최영숙씨는 매년 새해에는 주위 마을의 어른들께 떡국을 대접한다. “예전에는 살기 바쁜 마음이 더 컸는데, 지금도 살기는 바쁘지만 사람들에게 대접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어버이날 같을 때 여력이 되면 대접을 하기도 하고, 새해에는 꼭 각 마을을 번갈아 모시곤 했어요. 동이면 소도리, 동이면 평산리, 동이면 금암리, 근처 파출소의 명예경찰 등을 대상으로 일주일 전에 미리 전화를 드려서 초대를 하고 일주일 마다 마을 별로 떡국을 대접했지요. 한 200분정도 되었던 것 같네요. 다들 뵙고 싶은데 코로나가 끝나고 하라고 해서 올해는 아직 못하고 있네요”
최영숙씨는 현재는 작은 아들 장효섭씨(39)와 함께 가게 일을 하고 있다. 2년 째 일을 배워 이제는 장효섭씨도 웬만한 일은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졌다. 작은 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최영숙씨의 행복 중 하나이다. “작은 아들이 완전히 일을 배울 때까지는 제가 가르쳐야지요. 요리를 할 때 수치를 재는 것이 아니라 눈대중으로 양념을 하는 것이라 가르치기가 쉽지는 않은데, 이제 제 나이가 63이니까 7년은 더 일해도 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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