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쌀이라면
마스크가 쌀이라면
  • 옥천닷컴
  • 승인 2020.03.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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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서 (전 옥천군친환경농축산과 과장)

농협 하나로 마트와 면사무소 앞 광장에는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기다란 줄을 서고 있다. 쌀을 사기 위하여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을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등에 업힌 애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몸이 불편한 어른들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는다. 성질 급한 젊은 사람이 새치기하려다 고성이 오가고 멱살잡이가 벌어진다.

작년 가을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이상저온 현상과 태풍으로 쌀 생산량이 반 토막이 났다. 그동안 쌀을 주로 수출하던 미국, 중국, 베트남도 같은 처지라 쌀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나섰다. 쌀 뿐만이 아니라 밀, 옥수수도 흉작이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걱정이 태산이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지난 월요일부터 쌀 5부제 판매를 시행하고 있다. 1인당 1주에 2kg씩 한정 판매를 하고 있다. 생년월일 끝자리가 1.6일은 월요일, 2.7일은 화요일..... 5.9일은 금요일 만 살 수가 있다. 그래도 워낙 쌀 재고가 모자라다 보니 정부에서는 궁여지책으로 하루 한 끼는 분식 또는 라면을 먹도록 권장하고 있다. 밀가루는 전량 수입이고 라면 공장에서도 급하게 생산물량을 늘여보지만 폭발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음 주부터는 라면도 쌀처럼 농협과 면사무소에서 5부제를 한다는 뉴스가 지금 막 TV에서 흘러나온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쌀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쌀을 구하느라 전화통이 불이 난다. 그러나 농민들도 지난가을 공공비축미라는 명목으로 공출 비슷하게 일부 먹을 것만 남겨놓고 모두 다 정부 수매에 응했다. 농민들도 쌀이 부족하여 이집 저집 쌀을 구하려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 나도 쌀을 구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면사무소 광장에 가서 줄을 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앞에서 나누어주던 번호표가 떨어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야, 이놈들아~"하며 소리를 질렀다. 깨어보니 다행히도 꿈이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하여 약국과 우체국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평생을 농정에 몸담았던 한사람으로서 쌀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동안 한 끼에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쌀에게 누구 하나 따스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항상 경제 논리에 밀려 찬밥신세였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확진 환자가 8천 명을 넘었다. 며칠 전부터는 증가세가 진정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세종청사로 출근하는 사위도 며칠간 자가 격리에서 겨우 풀려나 어제부터 정상 출근하고 있다. 같은 층에 근무하는 20대 직원이 확진자로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접촉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손자들이 아예 짐을 싸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평소에는 쌀처럼 쳐다보지도 않고 존재감도 없던 마스크가 이렇게 귀한 몸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마스크를 사기 위하여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까지 가지고 줄을 서는 현실이 꿈만 같다. 마스크 줄은 안전에 대한 줄이지만 쌀을 사기 위한 줄은 바로 우리들의 생명 줄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죽고 사는 문제로 차원이 달라진다.

현재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48.9%이고 곡물 자급률은 23.4% 그친다. 선진국들은 대체로 곡물 자급률을 60% 이상 유지하고 있다. 식량자급 없이 선진국 진입은 불가하다는 반증이다. 쌀을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기상 이변 등 만일의 사태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하여야 한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농업진흥지역 같은 보전 가치가 높은 농지는 최대한 보전하여 기본적인 생산 기반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는 물론 예상치 못한 돌발 병해충에 대해서도 평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약국, 우체국, 농협 하나로 마트 앞에 마스크를 사기위하여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면서 '만약 저 줄이 쌀을 사기위한 줄이라면 과연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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