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9경, '구읍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마을'
옥천 9경, '구읍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마을'
  • 옥천닷컴
  • 승인 2020.03.18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교공뉴스 이 경 기자

 

'옥천 9경',  옥천의 주요 관광지에 선정된 옥천 구읍의 새로운 이름이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에 옥천 구읍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이라 표현하고 있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하면 그런 그림이 먼저 그려진다. 그래서 옥천 구읍에 도착차면 넓은 동쪽 끝과 실개천 그리고 얼룩빼기 황소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먼저 찾은 곳은 정지용 생가에 들렀다. 야트막한 담장 사이로 정지용이 살았던 그 터에 작은 방 두개 부엌 하나 그리고 노란 병아리 놀았을 법한 마당에 우물이 있다. 담장 옆, 신선이 먹었다는 산수유나무 노란 꽃망울 터뜨리고 있다. 직박구리 새 푸드덕 날아올라 옥천 축향초등학교 쪽으로 날아간다.

정지용문학관에 들러 구읍 정지용 시인의 생애와 마을에 관련된 역사를 듣고 죽향초등학교 쪽으로 나 있는 길목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가옥 사이로 예쁜 찻집들 문을 열었다.  주인들 차를 우려내고 있다. 커피를 볶고 있다. 

근대건축물인 죽향초등학교 구교사(등록문화재 제57호)는 정지용 시인이 다녔던 학교였다. 정지용 시인이 학교를 다녔던 때는 옥천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옛날 학교 풍경을 생각나게 하는 책상과 걸상 그리고 풍금들이 구교사에 전시되어 있었다. 운 좋게도 그곳을 볼 수 있어 마음이 훈훈해졌다. 다시 골목길을 되돌아 나와 옥천 사마소와 옥천 향교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옥천구읍 상계리, 하계리, 문정리, 교동리  5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옥천역이 들어서고 교통의 중심지에 맞춰 옥천행정구역이 옮겨가면서 옥천 구읍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그래서 오래전 모습을 보존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개발의 중심지였다면 벌써 고택들과 문화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 덕분에 옥천 구읍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옥천 9경' 관광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옥천 구읍은 구한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 동안의 생활 변천사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옥천 구읍을 오기 전 미리 무엇이 있는가를 알고 찾는다면 모든 풍경들이 정겹고 이야기가 풍부해진다. 관심사가 비슷하거나 마음의 교류가 풍부한 지인들과 함께 여유를 갖고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옥천 향교와 옥천 사마소를 보는 행운을 얻는다.  

옥천 향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어있다.

골목으로 접어드니 '명륜당'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선이 유연하고 웅장한 목조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 어귀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2층 구조의 명륜당이 위풍당당하게 홑처마 팔작지붕이 하늘을 향해 곧게 치켜들고 있다.

잠시 멈추고 서서 오래전 학문을 닦고 연마했던 어린 유생들이 낭낭한 목소리로 풍월을 읊던 그 소리를 듣는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었다는 개 한 마리 어슬렁거렸을 법해 주위를 살핀다. 모든 것을 상상하니 재미지다.이제 옥천 사마소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문헌에는 옥주 사마소(沃川 司馬所)로 불렸다.

옥천 사마소는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되었다. 옥천의 옥주 사마소(沃川 司馬所)는, 옥천지역의 대표적인 유림 집합소였다. 초시 즉 생원시·진사시에 급제한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하던  조선후기에 형성된 교육시설인 것이다.

옛 모습 그대로 잘 복원과 보존이 잘 되어, 옥천 구읍이 오래전부터 교육 행정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큰길 쪽으로 나왔다.

'그냥 찻집'이란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고택을 개조한 전통 찻집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10대 갑부로 불렸던 김기태 선생이 지은 고택이다. 한때 한치봉 선생이 고택을 사서 옥천의 여성교육을 위해 옥천여자전수학교로 이용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옥천여중의 모태가 된 곳이다. 지금 주인장은 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평거 김선기 선생이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물건들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정감이 간다. 진하게 우려낸 대추차 한 사발! 고택만큼 색이 짙다. 점점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가슴이 먹먹하니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되새김질 된다. 할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내림의 사랑을 터득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남의 집 허드렛일 해주며 살림을 일구어야 했던 내 어머니, 힘겨운 세상 속에 핀 모성애는 큰아들과 막둥이에게만 손길이 닿고 마음을 품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늙은 어머니는 손사래 쳤지만, 질투심 많은 어린 나를 늘 치마폭에 품어주었던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없었다면 허허롭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휑한 가슴, 어찌 달래었을까 돌이켜보니 덜컥 겁이 난다. 

옥천 구읍은 이외에도 오래된 고택이 몇 채 남아있다.  

독립운동가인 김규흥이 살던 97칸의 고택으로 85칸의 기와집과 12칸의 반초가ㆍ반기와 집이었다고 전해지는 민속춘추관 고택과 150여년 되었다는 아리랑 고택을 담장너머로 감상했다. 

향교 옆에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이 집을 오래전에는 교동집이라고 불렀다한다. 옥천의 명문가로 1600년대부터 3정승 즉 김 정승, 송 정승, 민 정승이 살았던 그 한옥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현대식 한옥으로 신축되었다. 그곳 마당에 들어서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행복해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옥천읍 하계리에는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이 건립되었다. 체험관과 숙박시설, 편의시설 등이 조성되어 앞으로 그곳에서 다도예절, 서당체험, 한지 공예, 인절미 만들기, 한과 만들기 등 옥천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구읍은 맛집과 찻집도 많아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다양한 곳이다.  누군가 말했다.  옥천 구읍은 '한나절 여행으로 딱 좋은 곳' 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맞는 동무들이 어울려 찾아온다면 온종일 노닥대며 허리춤 풀어놓고 놀기에 이보다 좋은 곳 없을 듯싶다.

주변에 생선국수와 도리뱅뱅, 올갱이국밥, 물쫄면, 묵집 등 맛집들이 곳곳에 있다. 이 외에도 십분 내 거리에  순두부, 추어탕, 민물매운탕, 한우 등 지역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들을 큰 돈 들지 않고도 맛볼 수 있다.

*찾아오는 곳
정지용 문학관-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
(지번) 옥천읍 하계리 39
*043-730-3408 대표번호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