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도 괜찮아, 오아시스의 달팽이 여행

 

새벽 5시 기상 일출을 보러 앙코르 와트로 갔다.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태양의 순례자들이 사원으로 향했다. 웅장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일어나는 불편한 생각은 이 웅장함을 빚어내기 위해 고군부투 했을 옛 건설현장의 백성들이 떠올랐다. (인도 타지마할의 경우 20년 동안 엄청난 세금 폭탄으로 백성을 괴롭히고 결국에 왕의 아들이 그를 왕좌에 끌어 내려 왕궁의 탑에 가두고 왕은 그곳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명령을 했던 왕의 이름만 버젓이 남아 있고 벽을 올리고 땅을 팠던 그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명령을 내리기는 쉽다. 높은 의자에 앉아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황제의 오만한 눈초리가 느껴진다. 
겨울에 해당 되는 2월이지만 한낮은 뜨겁다. 숙소에서 잠시 피해 있다가 톤레삽 호수로 갔다. 원래는 근처에 머물러 있다가 돌아 올 예정이었는데 톤레삽 호수에 머무르자 얼떨결에 40 달러의 비용을 치르고 수상가옥이 있는 곳으로 배를 타고 갔다. 방송에서 워낙 많이 다뤘던 소재라 익숙한 곳이었다. 배 주인은 내게 작은 배의 운전대를 맡기면서 여행의 분위기를 띄어줬다. 화기애애하게 가던 도중 한 수상가옥에 멈췄다. 가게주인이 나오더니 쌀포대가 얹어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상황이 잘 맞지 않아 못 알아들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내용은 근처에 고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데 35달러를 내면 이 쌀포대를 그들에게 기부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너희들 돈 내고 기부하라는 이야기였다. 순간 아찔했다. 미리 알고 왔었으면 당황하지 않았을텐데, 10달러를 내니 생수 2박스를 건네준다. 그러고는 근처 학교에 가서 전달하라고 학교로 데리고 간다. 자비를 강매하는 현장 때문에 뜨거운 태양보다 더 화끈한 오후였다. 
2월 6일 목

 

씨엠립의 마지막 날. 처음부터 대단한 걸 보면 마지막이 시시해진다해서 마지막으로 미뤄 둔 앙코르 툼과 타프놈 사원. 앙코르 툼 사원은 얼굴의 사원이라 부를 만큼 사면에 새겨진 얼굴의 부조가 밖을 바라보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사원은 행렬을 따라가며 높은 사원 위에서 한참 밀림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낮은 점점 뜨거워진다. 
마지막 타프놈 사원. 거대한 스펌 나무들이 사원들의 기둥과 벽을 먹고 들어가고 있다. 문명과 자연의 접전이라고 하지만 우연하게 생긴 자연의 현상을 굳이 그렇게까지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점심에는 시내에 있는 평양냉면 식당엘 갔다. 처음으로 북한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레였다. 한국 관광객들이 떼지어 들어온다. 종북세력으로 분류하기 좋은 현장인데 다행이 관광객들까지는 종북으로 낙인 찍지 않아 다행이다. 관광객들을 향해 웃음을 절제하는 북한 여종업원의 태도마저도 반갑다. 다음 날에도 들르고 싶었지만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북한식당을 나와 근처 제과점에서 딱 한 권 가져 온 소로우의 ‘월든’을 읽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부터 다가오는 전율. ‘적게 벌면 적게 써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버거워했던 내게 대안을 제시했던 스콧 니어링보다 소로우는 훨씬 이전의 철학자다. 그를 만나고 나는 간디학교로 방향을 돌렸다. 소로우를 너무 늦게 만났다. 책을 읽으면서 쏟아지는 무수한 생각들 때문에 한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한낮 더위를 피해 들어오는 손님들 때문에 읽기를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에 3일 동안 우리를 태우고 다니던 뚝뚝 기사 번나와 번나의 사촌을 만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었다. 여행은 만남이라는데 오랜만에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웠다. 늦은 밤까지 씨엠립의 뒷골목을 옮겨 다녔다. 
2월 7일 금

오아시스/piung8@hanmail.net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