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대동리 마을길
매일 같이 걷는 김 할머니

이원면 대동리에는 할머니의 산책로가 있다. 김 할머니는 매일 같이 걷는다. 허리 통증을 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답답한 속을 풀어보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읍면소식-이원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소담한 마을 이원면 대동리에는 김 할머니(84)의 산책로가 있다. 할머니의 산책로는 마을 경로당을 중심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구간이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본인 걸음으로 세 바퀴 도는데 삼십분쯤 걸린다는 것만 안다.

그는 마을길을 걸으며 닭들이 무얼 먹고 있나 쳐다보거나, 개울가에 자란 미나리를 누가 꺾어갔나 혼잣말을 하신다. 할머니는 산책길에 만난 개를 보곤 “안 짖더니 요새 너무 짖어. 꼴 보기 싫어 죽겠어”라고 툴툴대신다. 알고 보니 본인이 키우는 개다. 이름은 아직 없다.

김 할머니는 매일같이 마을길을 걷는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나와 두 시간 째 걷고 있는 참이다. 걷다가 만난 주민과 잠시 수다를 떨고, 또다시 걷다가 허리가 아프다며 의자를 찾으신다.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산책을 즐겼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걸었고, 옆 마을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타고난 체질이 건강했고, 식욕도 좋아 밥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 먹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신다.

그러나 그가 지금 걷는 이유는 예전과 다르다. 걷지 않으면 허리가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의 남편은 지난 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소를 7마리 키웠는데 버릴 수 없었다. 혼자서 하루종일 일하다보니 몸이 망가졌다.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수술 전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소 7마리는 다 팔았다. 할머니는 힘들게 번 돈을 자식들에게 나눠줬다. 손자들이 오면 김 할머니는 항상 용돈을 챙겨주신다. 손자들은 할머니가 돈을 주면 좋아한다.

수영을 하면 허리에 좋다고 하지만, 촌에서 옥천읍까지 나가는 길은 너무 멀다. 그래서 걷는다. 걷다보면 통증이 덜하다. 운동을 계속 하다 보니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자주 가슴이 답답하다. 잘 먹던 밥알이 목구멍을 긁어 삼키지 못한다. 오늘도 그는 밥숟가락을 들다 포기하고 산책로에 나왔다.

그는 당신의 산책로를 걷는다. 걷다가 마을 주민을 만난다. 마을 주민과 남의 마늘밭을 쳐다보며 “농사가 잘 되네, 여긴 땅이 좋아서 그려” 평가를 하신다. 다시 걷는다. 산책로 바로 옆, 언 땅에서 돋아난 냉이를 보곤 “냉이가 엄청 많네. 근데 여긴 사람이 하도 밟아서 드러워”라고 말한다.

먹구름이 끼며 날씨가 우중충해졌다. 오늘 비 온다고 하던데 날씨가 심상찮네, 집에 가서 마늘밭에 비료를 줘야 돼. 비 오기 전에 뿌려야 땅에 잘 스며들거든, 라는 말을 남기고 김 할머니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그렇게 당신의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김 할머니가 산책길에서 발견한 냉이밭(?). 할머니는 "냉이가 엄청 많네. 근데 여긴 사람이 하도 밟아서 드러워"라고 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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