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건 다 땅에서 받아 쓰지요"
'일주일 한 번 안내공소 나가는 것도 참 즐거운 일'

3일 안내면소재지 거리에서 만난 홍종년(79,현리)씨. 코로나 때문에 누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들에 나가 냉이를 따며 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읍면소식-안내면] 홍종년(79,현리)씨는 방금, 봄 소식 물씬 나는 냉이를 캐서 집으로 총총히 걸어가던 중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소와 특별히 다른 일은 없었다. 그런데 길에서 갑자기 기자 양반을 만날 줄은 몰랐지. 

"우리집 꽤 멀다니까 어디까지 따라오려는겨..."

3일 오전 6시40분, 홍종년씨는 늘 눈 뜨던 시간에 일어나 할아버지와 김치와 콩나물국에 밥을 간단히 챙겨먹었다. 부엌과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집안일 하다가 오후 3시쯤 됐을까. 찌뿌둥한 몸을 못 이기고 일어났다. 요새 코로나 때문에 경로당도 문 닫고 어디 만날 수 있는 할머니도 없는데 좀이 쑤셔 못 견디겠다, 냉이라도 따러 들로 나가야지, 목에 손수건 하나 두르고 호미 들고 나갔다. 소나무며 꽃나무며 나무들은 아직 헐벗고 있는데 냉이, 쑥, 돈나물은 이곳저곳 틈바구니에 잘도 나 있다. 쪼그리고 1시간 동안 쓱쓱 캐서 검은비닐봉다리 수북하게 쌓았다.

마당에 냉이를 쏟아놓는다. 흙을 털고 파지를 뜯어낸다. 깜짝 손님이 왔겠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이야기보따리 하나 풀어놓는다.

자식은 셋이 있는데 둘은 대전에 살고 하나는 일본에 나가 산다. 다들 결혼도 다 했고 바쁜 와중일 텐데, 간간히 전화하며 안부를 확인한다. 할아버지와 두 사람이 먹을 나락농사에, 콩도 하고 팥도 짓는다. 필요한 것은 대부분 다 땅에서 받아 쓴다. 닭도 몇 마리 키운다. 아직 알을 잘 낳는 기특한 녀석이다.

요새는 즐거운 일이 뭐가 있을까. 좀 더 젊었을 적에는 읍에 나가 복지관 다니며 장구를 배웠고 또 몇 년 전에는 안내면 행복한 학교를 다녔다. 이제 모두 졸업했지만. '80세 노인이 어딜 자꾸 댕기겠어' 가볍게 핀잔을 주는데, 알고 보니 요새도 열심히 하는 일이 있으시다.

"일요일마다 안내 공소 나가는 게 또 즐거운 일이지. 가서 신부님 이야기 듣고 기도도 하고. 우리 건강하고 자식들 일 잘 하고 나라 잘 되라고 기도하지. 다른 기도? 다른 건 없어. 주어지는 대로, 지금도 형제님이고 자매님이고 정 많은 사람들 이야기 나누는 게 참 좋아. 또 우리 할아버지도 같이 다니거든."

이야기하는 사이 수북하게 쌓였던 한 덩이 풀이 흙을 다 털어냈다. 그만 가보겠다 일어서니, "식은밥이라도 챙겨주면 좋은데, 아이고. 고마워. 나랑 이야기하고 놀아줘서..." 홍 할머니, 수줍게 웃으셨다.
 

3일 안내면소재지 거리에서 만난 홍종년(79,현리)씨. 코로나 때문에 누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들에 나가 냉이를 따며 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필요한 건 다 땅에서 받아 쓰지요". 날 적부터 농사를 해온 홍 할머니. 흙 묻은 손이 초록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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