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북한 이탈 후 시작된 파란만장 삶
양양→캐나다→인천, 정착지 옮기다 귀농한 옥천
깻잎농사 첫 시작으로 이제는 굼벵이 농원까지 운영
"미래를 위한 투자, 도전은 계속됩니다"

이정옥(50, 옥천읍 성암리), 조성렬(50, 옥천읍 성암리) 부부가 운영하는 안내면 도율리 소재 굼벵이 농장. 군서면에서 깻잎농사를 지으면서 처음 굼벵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굼벵이 농장 이름도 군서면을 대표하는 명소 '장령산'과 '굼벵이'를 합한 장령산 굼벵이다. 

[옥천을 살리는 옥천푸드] 이정옥(50, 옥천읍 성암리), 조성렬(50, 옥천읍 성암리) 부부의 삶은 말그대로 파란만장했다. 2009년 북한에서 중국 길림성으로 넘어온 후,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정착한 그 순간부터 녹록지 않은 생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시간 동안 부부는 4번에 걸쳐 정착지를 옮겨 다녔다. 첫 정착지는 이정옥씨의 어머니 고향인 강원도 양양군이었다. 친정엄마는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양양군에서 터를 잡고 살았단다. 서울보다는 더 친근한 느낌이기에 이들 부부와 두 아들은 이곳에서 처음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북한 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오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죠. 대부분 식당일부터 시작해요. 저희도 북한으로 넘어오면서 브로커 비용으로 돈이 많이 나갔기 때문에 거의 알몸으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돈을 벌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캐나다 이민을 무작정 떠났어요." (이정옥씨)

무작정 떠난 캐나다에서 난민 신청 후 영주권을 획득했다. 임시 거주처에서 살면서 한인식당으로 식당일을 나가며 생계를 꾸렸다. 하지만 캐나다 생활도 얼마 가지 못했다. 북한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을 추방하다는 소문이 북한 이탈주민 사이에서 파다하게 돌았기 때문이다. 

"소문이 돌자 불안감이 커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보의 출처가 명확한 건 아니었는데 당시 저희들이 처한 상황이 어렵다보니 쉽게 흔들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1년 정도 캐나다에 머물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돌아 와서 인천 남동구에 자리를 잡았어요." (이정옥씨)

이들 부부보다 앞서 한국으로 넘어온 언니는 부천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와 가까운 인천 남동구에 둥지를 틀었다. 조성렬씨는 지게차 자격증을 취득 후, 일을 시작했고 이정옥씨는 강아지 사료 제조 회사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이정옥(50, 옥천읍 성암리), 조성렬(50, 옥천읍 성암리) 부부가 운영하는 안내면 도율리 소재 굼벵이 농장. 이정옥씨가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옥(50, 옥천읍 성암리), 조성렬(50, 옥천읍 성암리) 부부가 운영하는 안내면 도율리 소재 굼벵이 농장. 이정옥씨가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옥(50, 옥천읍 성암리), 조성렬(50, 옥천읍 성암리) 부부가 운영하는 안내면 도율리 소재 굼벵이 농장. 이정옥씨가 흰점박이꽃무지 번데기방을 보여주고 있다.

■언니따라 옥천 귀농, 인생 새막을 연 깻잎 농사

그때만 해도 옥천으로 귀농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귀농하겠다고 선택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으로 언니 혼자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 조성렬씨를 겨우 설득해 옥천으로 왔다. 당시 귀농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그래서 옥천에 앞서 터를 잡고 깻잎 농사를 짓는 옥천군북한이탈주민협회 원정근 회장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깻잎 농사가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들어서 무턱대고 시작했어요. 비닐하우스 2동을 먼저 짓고 추가로 2동을 더 마련했죠. 대출을 일부 받았지만, 초기 투자 비용을 합하면 1억원 가까이 돼요." (조성렬씨)

야심차게 시작한 깻잎농사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1천평 가까이 되는 농사를 부부가 오롯이 감내해야 했다. 무엇보다 깻잎을 팔아 얻은 소득 전부가 다시 4동의 비닐하우스를 관리하는 비용으로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군서깻잎작목반 소속이어서 물량 전부를 고정업체 납품해 판로는 문제가 없었죠. 하지만 농산물 가격이라는게 워낙 변동이 심해서 비닐하우스 관리 비용 이상으로 소득 창출을 하지 못했어요. 깻잎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관정 문제 때문에 한해 농사를 거의 망쳤을 때에요. 그때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이 문제가 이어져서 나머지 비닐하우스 2동은 깻잎에서 포도로 작목을 전환했어요." (이정옥씨)

이정옥(50, 옥천읍 성암리), 조성렬(50, 옥천읍 성암리) 부부가 운영하는 안내면 도율리 소재 굼벵이 농장. 군서면에서 깻잎농사를 지으면서 처음 굼벵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굼벵이 농장 이름도 군서면을 대표하는 명소 '장령산'과 '굼벵이'를 합한 장령산 굼벵이다. 

■굼벵이 농원으로 제3의 인생 꿈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귀농으로 어찌보면 큰 좌절을 맛봤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 같아 정말이지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라는 심정으로 임했다. 북한 이탈주민으로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된 것을 느꼈다. 그래서 농업기술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군서면에 사는 또다른 북한 이탈주민이 아이들을 옥천지역아동센터에 맡기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저희도 김회문 센터장을 알게 됐어요. 저희가 깻잎농사를 짓는다니까 이분이 농업기술센터에 가보라 조언해주시더라고요. 정보가 한없이 부족했던터라 해당 조언으로 다양한 지원 정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정옥씨)

바쁜 와중에도 농기센터를 자주 찾아 상담했다. 당시 김성수 전 기술지원과 과장을 비롯한 많은 담당자들이 도움을 줬다. 정보를 단순히 제공받는 것보다 직접 습득하기 위한 움직임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농업인대학 곤충과정을 이수했다.

"농업인대학 말미에 굼벵이를 20마리 정도 키워보라고 줬어요. 이를 첫 시작으로 굼벵이 사육을 하게 됐죠. 키우던 굼벵이가 계속해서 늘면서 제법 규모가 커졌는데 아예 체계적으로 굼벵이 사육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죠. 그래서 안내면 도율리에 부지를 찾고, 일부 지원을 받아 굼벵이 사육 시설을 마련했어요." (조성렬씨)

'장령산 굼벵이'가 위치한 안내면 도율리는 청주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지리적 조건이 좋다. 청주 등지를 오가는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향후 굼벵이 판매를 위해서도 교통적인 이점이 작용한다. 지난해 12월 말 완공된 농원이기에 아직 가공시설 등 구비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제3의 인생을 시작되는 중요한 장소다.

"미래에 투자했다고 생각해요. 굼벵이는 미래 식량으로 각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단백 식품으로 건강까지 챙길 수 있잖아요. 엄밀히 따지면 아직까지 굼벵이가 저희에게 소득으로 돌아오지는 않아요. 그래도 도전을 멈추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정옥씨)

이정옥(50, 옥천읍 성암리), 조성렬(50, 옥천읍 성암리) 부부가 운영하는 안내면 도율리 소재 굼벵이 농장. 군서면에서 깻잎농사를 지으면서 처음 굼벵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굼벵이 농장 이름도 군서면을 대표하는 명소 '장령산'과 '굼벵이'를 합한 장령산 굼벵이다. 

■북한 이탈주민 제대로 자리잡는 옥천 꿈꾼다

북한 이탈주민에게 있어 지역 정착은 다른 주민들에 비해 더 어렵다. 특히 옥천에 정착한 이들은 대부분 '농사'를 선택하지만, 정보 취득 경로가 현저히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 

"저희는 스스로 정보를 찾고 개척하는 길을 택했지만, 여전히 많은 북한 이탈주민들이 귀농이나 농사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요. 안타깝습니다." (조성렬씨)

농기센터의 문을 두드린 이후 생산적 일자리 사업 지원으로 농번기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었다. 또 최근에는 현대차그룹과 초록우산 기프트카 캠페인을 통해 1톤 트럭과 창업자금 등을 지원받았다. 직접 도움이 될만한 정보들을 찾고, 행정에 도움을 청한 결과다.

"농번기에 일손이 무척 부족했는데 군에서 연락이 와서 긴급 지원형식으로 인력을 보내주셨어요. 정말 큰 도움이 됐죠. 기프트카 지원 역시 군 담당자님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북한 사람들도 자립 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원책과 정보들이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한 이탈주민들이 옥천에서 모두 잘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조성렬씨)

이정옥, 조성렬 부부는 깻잎 농사 뿐 아니라 굼벵이 농원까지 잘 운영해 다른 이탈 주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도전의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미래에 투자했어요.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결과는 내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저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정옥씨)

이정옥(50, 옥천읍 성암리), 조성렬(50, 옥천읍 성암리) 부부가 운영하는 안내면 도율리 소재 굼벵이 농장. 지난 1월 부부는 현대차그룹과 초록우산 기프트카 캠페인을 통해 1톤 트럭과 창업자금 등을 지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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