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piung8@hanmail.net (옥천읍 가화리)

 

‘파리, 텍사스’는 길 위에서 시작해서 길 위에서 끝나는 영화다.
초반 길 위를 헤매던 주인공 트레비스가 동생의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영화 러닝 타임의 1/3을 길이 차지한다. 공교롭게도 프로덕션 이름도 로드무비 필름이다. 
‘길’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구도자의 아우라가 나온다. 요즘 ‘길’은 전국 지자체의 얼굴마담이 되어 주말 여행자들을 꼬시고 있다. ‘산티아고’는 걷기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길이든지 당신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땡기는 무게는 비슷하고 마음과 몸은 자웅동체가 될 것이니,
‘길’은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아우라가 느껴진다. ‘길’에는 자기 삶을 되돌아보라는 주문과 또는 욕망을 비우고 떠나라는 사이렌의 음성이 들린다. 영화 ‘파리, 텍사스’는 느린 보폭으로 일관하는 카메라와 주인공 트레비스의 주름진 표정과 눈빛 그리고  라이 쿠더의 음악이 결합해 제대로 무게 중심을 잡는다. 
주인공 트레비스는 어린 아내를 맞이해서 지극정성을 다한다. 심지어 어린 아내와 함께 있고 싶어 직장까지 그만둔다, 하지만 차츰 어린 아내가 미더워지기 시작하고 의심까지 한다. 이런 남편의 태도에 어린 아내는 버티기 힘겹다.

 

→ 이제하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80년 대 겨울공화국의 음울한 풍경을 은유적으로 풀어놨다.

스무 살 무렵 다녔던 시골 교회엔 내 또래의 어린 집사님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남편과 눈이 맞어 17살 정도의 나이에 사랑이 명령하는 대로 사내 아이 둘을 낳고 시골에 정착했다. 그리고 나보다 3살 정도 많은 또 한분은 남루한 가계를 메꾸기 위해 면 소재지의 넉넉한 철물점에 시집 가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 4명의 남매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시어머니와 증조 할머니까지 모셔야하는 형국이었다. 20 대 초반엔 이분들과 힘을 합쳐 교회의 큰일 작은 일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시골 가는 일이 뜸해지고 나중에 알게 된 두분의 근황은 어지러웠다. 첫 번째 집사님은 다른 동네의 남정네와 눈이 맞어 집을 나갔다. 그리도 두 번 째 집사님은 도시의 남자와 눈이 맞았다는 소문이 들렸고 결국엔 4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도시로 나왔다. 철물점을 배경으로 딴딴하게 버틸 것만 같았던 그녀의 남편은 어느 소읍의 다방 아가씨와 산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남았던 재산은 공중분해 되었다.
트레비스의 젊은 아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자식은 그녀에게는 투기 부리는 남편 사이를 억지로 봉합시키는 불편한 대상이었다. 늦게 돌아 온 아내를 난로에 묶어 놓고 잠든 어느 날 밤, 아내는 불을 지르고 나간다. 불기운에 놀라 일어난 남편은 집을 뛰쳐나와 4일 동안 무작정 달린다. 그리고 4년을 걸었다. 결국엔 몸의 물기운이 말라 쓰러졌다. 트래비스의 동생이 그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가는 중에도 그는 아직 길을 다 걷지 못했는지 가끔씩 동행길을 벗어나려 하고 트레비스는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바라본다. 그러자 동생은 말한다. ‘길 위에 아무것도 없다. 부질없다’하지만 트레비스는 다시 길 밖의 일상이 불편하다. 그에게 남아 있는 집착과 욕망이 두려울 뿐이다. 집착과 욕망 혹은 추억의 은유를 보여주는 빨간색은 첫 장면 트래비스가 쓰고 있는 빨간 모자에서 시작해서 다시 아내를 만났을 때 아내가 입고 있는 빨간 드레스까지 이어진다. 집에 돌아오는 시퀀스의 비중이 높았던 건 트레비스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트레비스는 아직도 길이 목마르다. 그리고 4년을 느리게 살아 온 그에게 비행기는 너무 빨라서 4년의 침묵이 따라오지 못 할까봐 출발하려고 하던 비행기마저 멈추게 하고 만다.
(다음 호에 이어가겠습니다)

 

파리,텍사스 (1984)

감독:빔 벤더스 출연:해리 딘 스탠튼, 나스타샤 킨스키 
음악:라이 쿠더 촬영: 로비 물러 

1984년 칸느 그랑프리를 받은 작품입니다. 감독 빔 벤더스 (1945년 8월 14일 ~ )는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이면서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4년 전, 무려 30년 만에 이 영화를 만나고 나는 너무 늦게 만난 걸 후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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