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도 괜찮아, 오아시스의 달팽이 여행

 

2주 전 아는 분들과 쿠알라룸푸르부터 치앙마이까지 기차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대학시절 새벽 12시 40분 제천에서 강릉까지 가는 동해선과 그리고 조치원에서 부산까지 가는 부산행 야간 통일호 기차가 떠올랐습니다. 태국 남부도시 핫야이에서 방콕까지 가는 심야기차는 무려 18시간이었습니다. 비록 빠르게 가지는 않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두런두런 속삭이듯이 진행하는 기차의 느린 속도가 좋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기차를 좋아합니다. 여행처럼 좋은 학교가 없습니다. 스스로 배우고 각자의 목적을 성취하고 오는 여행은 배움의 장은 특정한 장소에 가둘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엔 수학여행을 성인이 되어서는 패키지 여행을 할 수벆에 없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스스로 기획하기 보다는 가이드에 의존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다행히 대학시절부터 경험했던 여행은 스스로 기획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간 몸담았던 간디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는 여행의 방식이었습니다. 간디학교에서는 전시관과 박물관은 금기의 공간입니다. 기존여행에서는 필수코스였지만 청소년들에겐 그곳은 지루한 코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학습의 강박이 작동하는 문화기행이나 어학연수를 볼 때마다 청소년이 주도하기보다는 어른의 욕망이 작동하는 걸 보게 됩니다. 여행이 학습의 도구로 바뀔 때 여행은 또 다른 네모난 교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달팽이처럼 천천히 다녔던 여행을 중얼거려볼까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들과 함께 했던 여행까지, 몇 년 전에 다녀왔던 배낭여행에서 최근 기차여행과 오토바이 여행을 잘 버무려 보겠습니다. 몇 개월이 될지 모르겠지만 만나는 동안 즐거운 상상을 하고 여행의 의미를 같이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글은 작년 1월에 다녀왔던 오토바이 여행 후기 글입니다. 로컬식당에서 각자 식사를 해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배낭여행이었습니다. 제 여행글의 주제를 담고 있는 거 같아 실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곳에 가지 않았다
-2019 필리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이웃 동네 마실 가는 여행 같아서 큰 감흥이 없었는데 조금씩 마음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리피노는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같은 영토의 이웃처럼 보입니다. 
필리핀 세부에서 두마게티까지는 무려 6-7시간 꾸불꾸불한 해안도로를 타고 가야하는 녹녹치 않은 길입니다. 출퇴근 시간이 맞물리는 날이면 좀 더 많은 인내를 각오해야 합니다. 이런 여행은 아주 비경제적입니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무려 반나절이나 걸리다니, 경제를 배웠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소모적인 여정입니다, 오늘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세부에 새벽에 도착해서 조금 눈을 붙이고 두마게티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에서 외국인을 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어느 미련곰탱이가 가성비 안 따지는 여정을 진행할까요 ?
이 버스는 생각보다 더 천천히 갈 겁니다. 가다가 화장실 가고 싶은 승객이 있으면 간이정거장에서 잠시 멈출 거구요. 과자를 주렁주렁 매단 장사꾼들이 종착점까지 출몰할 예정이니 결코 놀라지 마세요. 버스 안내원이 펀치로 구멍을 내고는 미리 청구서처럼 구멍 난 종이를 건네 줄 겁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도 안내원은 흔들림 없이 차비를 받고 거스름돈을 건네 줄 겁니다.
비행기로 순식간에 갈 수 있는 거리를 굳이 이 고단한 여정을 선택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 
이 고단한 과정은 목적지까지 가는 게 녹녹치 않다는 걸 증명합니다. 누군가에게 간다는 건, 너에게로 가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고단한 과정이 생략 된 채 최소비용에 최대 효과로 구성되는 패키지 관광의 동선은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찍고 오는 관광이나 다름 없습니다. 빠듯한 휴가 일정 때문에 속전속결로 관광을 다녀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다녀오는 태국 혹은 베트남과 라오스를 우리는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갔다고 하면 앙코르 와트의 거대한 사원 혹은 현지인들과 격리 시키는 리조트의 든든한 성채 같은 담벼락과 그리고 유적지를 유창하게 안내하는 가이드. 패키지로 지정 된 식당과 쇼핑몰만 보고 왔을 뿐입니다. 기존의 여행 방식으로는 현지주민을 만날 수 없습니다. 물론 리조트 종사자를 만나고 왔습니다. 소음이 절제 된 리무진 버스 안에서 후끈한 거리를 지나쳐가는 창밖의 그들을 봤을 뿐 입니다. 그래서 몇몇 관광객은 ‘거리가 더럽다느니’하며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쥐꼬리만한 휴가로 무엇을 바란다는 건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강도 높은 피로 사회를 제대로 달래려면 제대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시스템에서 마련해줘야 합니다.
저희 여행의 원칙은 ‘각자의 목적을 성취하고 오는 여행’입니다. 각자의 프레임을 가지게 할 수 있도록, 여행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이번에 작은 실수들이 있었지만 실수를 통해서 지혜를 배우고 연대를 배웠습니다. 그저 패키지 여행이었다면 상상하지 못할 끈끈한 우애를 이번 여행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리무진 버스를 동원한 관광이었다면 나올 수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다시 어깨죽지가 가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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