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의 대중화’를 내건 황예순, 고향 화인땅에 천년비색을 열다
 청자 만들기 체험 가능, 은은하 차와 커피도 대접해

 안내면 인포리, 안남면 들어가는 길목에 작은 이정표가 생겼다. 흔히들 거창하게 ‘랜드마크’라고 하는데 ‘천년비색’(대표 황예순)은 유일한 안남면 진입로 왼편에 위치해 있어 오가면서 보는 ‘홍보효과'는 엄청날 듯 하다. 

 ‘천년비색’이라는 이름으로는 도무지 뭐하는 곳인지 추정할 수 없지만, 조금만 살펴보고 이야기를 들으면 단박에 알아챈다. ‘고려청자’ 단어 하나 언급하는 것 만으로 '아! 청자와 관련있는 곳이구나’ 가볍게 유추할 수 있다. 

 오래도록 우리 하늘을 지키고 닮았던 청자의 비색을 이야기하는 구나라고. 말 그대로 청자의 유구한 전통이 사라져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안내면 월외리 양문석 청자 장인에게 배운 황예순씨가 문을 연 것. 

 주막에 들러 목을 축이듯 길가는 나그네가, 이웃 주민들이 마실가듯 들르기 딱 좋은 위치다. 주인장도 이물없이 마음이 후하다. 동네 토박이라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 적당한 곳, 양지바른 곳에 뿌리내렸다. 다시 고향에 오기까지 나름의 고충이야 많았겠지만, 그 속앓이를 충분히 이겨낼 만큼 아흔 넘은 아버지 곁에 본인이 꿈꾸던 작업장을 차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10년 전 맺은 청자와의 인연이 천년비색까지

 2010년 안내초등학교 인근 안내사랑방을 문화예술사업으로 운영할 당시 프로그램을 설계하느라 월외리 청자 공방을 들렀다가 본인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었다. 소개하고 연결시켜주러 간 것 뿐인데 하다보니 보다보니 청자의 매력에 듬뿍 적셔진 것. 그래서 청자를 시작했다. 둥글둥글 해보여도 관계의 헝클어짐으로 마음의 화가 많아 늘 치유를 달고 살았다. 시낭송, 시인, 작가, 독서상담치료, 기천문, 머리와 몸으로 익히는 치유부터 심리 상담, 마음의 치유까지. 많은 것을 배우고 가다듬었지만, 모든 배움은 역시 청자로 수렴되었다. 청자를 만드는 동안, 상감과 유약을 새기는 동안, 높은 온도에서 청자를 굽는 그 시간 동안, 생각의 편린들이 하나둘 정리되었다. 완성된 청자를 두고 보는 시간 내내 어지러운 마음들이 제 갈길을 찾기도 했다. 이 좋은 것을 혼자만 알고 할 수 없기에 ‘문화로 보급하겠다’는 큰 일념으로 소상공인진흥공단 창업사관학교에 응모신청서를 냈다.

 “저는 2010년에 도자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했어요. 그때 양금석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 덕분에 청자를 처음 보게 되었어요. 저는 의문점이 들었죠. 왜 조상들부터 사용한 청자를 지금은 사용하지 않을까? 저는 그 답을 ‘고려 시대에는 왕족계층이 청자를 사용했지만,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백자라는 자기를 사용했기에 지금은 청자가 익숙하지 않구나’를 깨달았어요. 3년 정도 청자를 보니까 청자의 비색(푸른색) 매력에 빠져버렸어요. 이렇게 조상부터 사용했던 청자의 매력을 알리고 사람들이 사용하게끔 도와주고 싶었어요.”

 황예순씨는 양금석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야기 중에 “선조가 만들어 둔 도자기를 전시만 해서는 안 된다. 삶에서 사용하고 소비하여야 도자기 기술도 그리고 디자인도 점차 발달하는 것이다”를 듣고 청자를 밥그릇, 머그컵 등을 만들어서 생활도자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가짐이니 안 될리가 없었다. 창업사관학교에 덜컥 되서 1개월 이론교육, 3개월 동안 대전 둔산동 타임월드 앞 번화가에서 직접 매장을 무료로 운영했다. 그렇게 판매되고 모은 돈은 없었지만, 일단 작은 가능성을 봤다. 그곳에서 황예순 씨는 별도 지원금과 상을 받았다. 사업 아이템이 독창적이면 받는 지원금 2천만 원과 SNS를 통해 홍보를 잘 하면 받는 상도 받았다.

 

청자와 함께하는 지역 쉼터로 거듭나길

 창업사관학교를 수료하고 독립되어 나오는 순간, 돈이 돌고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창업을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맞지만, 그는 거꾸로 택한다. 

 당초부터 큰 돈을 벌겠다는 욕심도 없었고, 고향 땅에서부터 청자를 조금씩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아흔 노부의 곁에서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삼남매 맞이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작업장을 만들고, 카페 폐업하는 지인의 장비를 인수해 설치해 놓았다. 인테리어도 아기자기하게. 그러고 보니 아담하고 작은 문화공간이 탄생했다. 아직 이래저래 처리할 것이 많아 늘 상주하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나 미리 예약하면 청자를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시간대별로 칠보공예부터, 상감 넣는 법까지 다양한 체험을 만끽할 수 있다. 체험을 하는 동안 바리스타 못지 않은 솜씨로 내리는 차와 커피는 무료다. 

 “제 집에 여기서 조금 올라가서 화인마을 한 가운데에요. 안내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산 하나 넘으면 걸포, 산 두개 넘으면 현리가 나왔어요. 누이와 친구들과 손잡고 간 기억들이 아직 새록새록 해요. 안내중학교 30회인데 중학교는 걸어서 정말 가까웠죠. 당시만 해도 이 동네에 학생들이 20명 가까이 됐는데 지금의 안내중 전교생 보다 많다니 격세지감이에요”

 청자의 비색은 사람을 묘하게 빠져들게 하는 색이다.  “중국 황제는 고려청자의 비색을 비가 갠 뒤, 맑은 하늘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만큼 맑고 아름답죠.”

 황예순씨는 도자기와 사람의 심리는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도자기는 참 신기해요. 이상하게 어떤 사람이 만드는 도자기는 더 잘 깨지는 도자기 있는 거예요. 잘 생각해보니 그 분이 심리가 아주 불편할 때, 그런 것 같더라고요. 도자기 만들 때 혼이 들어간다 하는데, 이러한 심리가 숨어있지 않은가 싶어요. 도자기의 강함정도는 도자기 굽는 온도 등의 차이도 있지만 심리적인 요소가 들어가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정성이 중요한 거 같예요. 도자기는 사람의 심리가 반영된 섬세한 작업이죠”

 그는 천년 비색이 볼거리, 배울거리가 많은 안남면의 관문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 

 “향수 100리길이라고 자전거를 타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요. 천년비색 자리는 여백의 공간이 많아 자전거를 세우고 딱 쉬기 좋은 곳이거든요. 자전거 나그네들 목도 축이고 화장실 일도 보는데 천년비색이란 공간이 매우 유용하기도 할 것 같아요. 인근 화인산림욕장과도 연계하면 더 좋겠지요. 제가 돈 버는 머리는 아직 없어서 크게 구상은 안 해봤지만, 천년 비색이 쓰임새가 많은 공간이 되길 바라죠. 누구나 들러 편히 쉬며 청자를 빚을 수 있는 공간을 꿈꿉니다. 언제든 놀러 오셔요. 미리 전화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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