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면 현리 인근 임도 타고 들어가면 보이는 3천평 규모 감밭 '장관'
대목에 없어서 못파는 '향수 곶감', 소비자 만족도 최고
"안내면 역사와 함께 보낸 세월, 여생도 안내면서 농사 짓겠다"

28일 오후 안내면 현리에서 이병준(74, 안내면 현리)씨를 만났다. 

[옥천을 살리는 옥천푸드] 20년 전 안내면에 감식초 가공 공장을 지었다. 당시만해도 50대였던 이병준(74, 안내면 현리)씨는 같은 뜻을 가진 3명을 모아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문을 닫고 말았다. 판로가 문제였다.

"감식초 가공 공장을 하겠다고 마음 먹고 동시에 감 농사도 짓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잘 안됐죠. 감 식초를 만들긴 했는데 어디 내다 팔 곳이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문을 닫았어요. 감식초 가공공장 때문에 시작한 감 농사지만, 그 때 심은 감을 이용해서 곶감을 만들고 있어요."

안내면 현리 인근 임도를 쭉 타고 들어가면 산 아래 자리잡은 이병준씨네 곶감 밭이 있다. 겨울임에도 눈이 탁 트이는 게 진풍경을 이룬다. 이곳에서 자연풍을 맞고 자란 곶감용 둥시들은 옥천 향수 곶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간다. 상주나 영동에서 주로 재배하는 감 품종인데 곶감으로 만들기 제격이다.

겨울이라 다소 황량한 이병준씨네 밭. 푸른 실록과 과수는 달리지 않았지만 풍경만큼은 장관이다.
무더운 여름 날 이병준씨가 직접 찍은 감 밭 전경. (사진제공: 이병준씨)
잡초 제거를 마친 감 밭의 풍경. 붉게 물들어 간다. (사진제공: 이병준씨)

이병준씨네 곶감은 공판장보다는 지인들을 통한 개인판매로 이뤄진다. 알음알음 인맥을 이용해 팔기 시작한 곶감인데 이제는 어엿하게 주요 고객층이 자리 잡았다. 연 평균 1천200박스(20kg 기준)를 생산하는데 이 중 400박스 정도가 직접 말린 곶감으로 나간다. 나머지 800박스는 말리지 않고 영동에 내다 판다. 

"3천평 규모로 감을 키우고 있어요. 풀 깎는 거나 나무 관리하는 건 저랑 제 아내가 맡아서 하고 있지만, 규모가 크다 보니 감이 익어서 수확 할 때는 인부를 쓰고 있어요. 감은 보조 사업을 받아서 지은 건조장에서 전통방식을 고수하면서 말리고 있습니다. 올 설날에도 기업은행에서 곶감 선물을 하겠다며 몇 박스를 가져갔죠."

곶감은 주로 대목에 선물용으로 팔린다. 1호, 2호, 3호로 나누어 곶감을 선별하고 있다. 고객 맞춤형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옥천푸드 인증도 받았다. 올해는 개인판매로 물량이 다 나갔기 때문에 직매장으로 출하하지 못했지만, 직매장을 통한 판매 역시 고민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밭을 찾은 군 관계자들에게 밭 구경을 시켜줬어요. 주무관 중 한 명은 밭으로 진입하는 임도가 워낙 꼬불꼬불하니까 멀미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옥천푸드 인증은 감과 호두 두 가지 품목을 받았습니다. 호두는 5~600평 정도 심었어요."

이병준씨는 안내면 현리 근처에 감 건조장을 두고 곶감을 생산하고 있다. 해당 감 건조장은 군 보조사업을 지어 받았는데 향수 곶감 작목반 회원들이 함께 이용한다. (사진제공: 이병준씨)

호두는 10년 전 심었다. 호두 나무를 심고 5년 째 되는 해 생각대로 호두가 열리지 않아 전전긍긍하며 관계자를 찾아가기도 했다. 

"찾아갔더니 보통 8년 정도는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고 하더라고요. 인내가 필요한 작목인 것 같아요. 기다리고 보니 정말 신기하게 호두가 달리더라고요. 보통 9월에 수확을 하는데 40kg 정도 수확했어요."

감과 호두를 놓고 보면 여러모로 호두가 농사 짓기도 편리하고 가격 면에서도 더 낫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호두는 키우는 것도 감에 비해서는 손이 덜가고, 농약도 덜 치는 것 같아요. 가격면에서도 2kg 기준으로 2~3만원까지 가니까 더 좋고요. 그런데 굳이 두 품목을 비교하면 그렇다는 거지 사실상 감도 호두도 과잉 생산 때문에 날이 갈수록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요."

농사가 종 잡을 수 없는 이유는 가격 형성이 해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감과 호두의 경우 공급량이 많아 요즘은 흔히 '바닥시세'라고 부른다. 그래서 어렵다. 더군다나 갈수록 몸이 약해지는 나이여서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요즘 '농사를 언제까지 지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을 많이 해요. 근래에 협착증 때문에 곤혹을 치뤘어서 나이가 먹을수록 힘이 딸리는 게 느껴져요. 아들은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갔다가 아예 미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고 딸 2명이 있지만 이들도 생업이 따로 있거든요. 그나마 막내 사위가 삼성연구원을 다니다 50세로 정년 퇴지를 했는데, 농사 짓는 것에 관심을 보여서 본격적으로 가르쳐 줄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병준씨는 지금은 수몰된 안내면 인포리 걸포마을 토박이로 안내초-안내중학교를 졸업했다. 농사 짓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지만, 처음부터 농사에 몸을 담았던 건 아니다. 30대에는 경기도 시흥에 있는 기아산업에서 자재과 직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원래 걸포가 경주 이가들 집성촌이에요. 수몰되서 그렇지 그전까지만 해도 담배도 심고 고추도 심고 다양한 농사를 지었죠. 30대만 하더라도 저는 농업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어요. 일례로 경기도 시흥에서 기아산업 직원으로 일했죠." 

28일 오후 안내면 현리에서 이병준(74, 안내면 현리)씨를 만났다. 

그런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이후 안내면 현리 이장과 안내면이장협의회장을 역임했다. 또 면지역발전협의회 부회장과 안내농협(대청농협 합병 전) 이사로 활동했고, 2005년에는 안내농협 제13대 조합장으로 취임, 8년간 조합장으로 일하기도 한다. 안내면의 역사를 몸소 겪어왔기에 그만큼 애정도 크다.

"말 그대로 안내면의 역사와 함께 했어요. 최초 체육회장, 최초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죠.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처음 할 때 해돚이 행사는 걷기 운동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철거된 장계관광지내 옛 대청비치랜드는 이병준씨네 밭 뒤로 형성돼 있었다. 본래 김영만 군수 때 안내면 현리 임야와 옛 대청비치랜드를 연결한 케이블카 사업도 구상된 바 있는데 결국 현실화 되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옛날에는 대청비치랜드에서 여름이면 물놀이하고, 겨울이면 썰매를 타곤 했죠. 그런데 워낙 산업이 발달하다보니까 경쟁력이 없어진거죠. 이곳을 개발하겠다고 군이 나서기는 했는데 결국 다 이뤄지지는 않았어요."

안내면 현리 토박이로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크다. 앞으로도 안내면을 지키면면서 몸이 허락하는 한 농사를 계속 짓고 싶다는 그다.

"안내면은 현재 인구 감소가 더 가속화 되고 있어요. 아예 귀촌한 사람들로 만들어진 마을이 생겨날 정도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인구는 줄고 있죠. 행정 뿐 아니라 주민들도 안내면의 발전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몸을 더 움직여야 하는데, 그래도 농사를 지으면서 땀을 내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늘 감사합니다. 힘이 닿는 한 계속 농사를 짓고 싶어요."

28일 오후 안내면 현리에서 이병준(74, 안내면 현리)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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