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옥천읍 장야리 출신인 이득남 공신은 조선 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1636년 병자호란 때 옥천군 의병을 이끌고 남한산성 방어전에 참전하였다. 그는 이 당시 경기도 광주 험천진 전투에서 청군과 치열한 전투에 참가하여 빗발치는 화살과 청군에 대항하다가 순국한 병자호란 때 옥천군 의병장이다. 

■ 청군 파죽지세로 남하

1636년 겨울인 12월 초에 만주 땅에서 후금에서 청나라로 이름을 바꾼 청 태종은 선용골대와 마부대를 선봉장으로 10만 대군을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삽시간에 평안도 의주를 점령하였다.

청군이 빨리 남하하여 청천강을 건너 평양성, 황해도 황주 등 경의대로를 통과하여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남진하자, 선조와 조선 조정은 황급히 강화도로 피난하려 하였으나, 길이 막혀 비빈들, 김상헌, 최명길 등 백관들과 함께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곧바로 청 태종은 20만 대군으로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와 조선군에게 항복하기를 압박하였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근왕할 의병모집 격문을 전국에 띠워 남한산성의 포위를 뚫게 명하였다.

현 성남분당, 광주 험천진 전투지 탄천<br>
현 성남분당, 광주 험천진 전투지 탄천

■ 남한산성下 옥천의병  험천진전투 참전

충청감사 정세규(鄭世規)는 인조의 왕명으로 충청도 근왕군과 의병을 충청도 공주에 집결시켰다. 이 때 이득남(李得南) 옥천군 의병장은 옥천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장이 되어서 충청도 근왕군과 함께 수원으로 북상하여 포위된 남한산성을 뚫기 위해 경기도 광주(廣州), 현재 한강의 지류인 탄천 상류인 성남시 분당구 남쪽 험천진 전투에 참가한다.

전세가 불리하고 절대 부족한 군사력으로 청군에 대적하여 승산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구국의 일념으로 옥천군에서 의병을 일으켜 선조 왕을 호종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북상하였다.

이득남 의병장은 근왕군인 김홍익, 이경 현감과 함께 서로 힘을 합세하여 온 몸으로 몰려오는 청군을 베며 수없이 도륙하여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우리 군사들도 많은 살상을 당하여 전사자가 급증하며 지원해줄 증원군을 불렀으나, 더 이상의 응원군은 없었다. 이득남 옥천 의병장은 옥천군 일대의 의병들을 끌어 모아 충청 관군 및 의병과 함께 청군에 대항하였다.

■ 이득남 의병장 험천진 전투에 항전 순국

그러나 청나라 액부양고리 장군의 대병력과 광주 험천진에서 맹렬히 대접전을 치르고 있을 때 이의배(李義培) 감사는 공격해 오는 청나라 대군에게 놀라고 너무 무서워서 자신이 지휘하는 군진을 탈영하여 도망갔다. 그러나 이득남 의병장과 옥천 의병들은 물러서지 않고 험천진에서 화살은 다 쓰고 돌멩이와 온몸을 던져 대항하다 옥천 의병과 함께 순국하였다. 이득남 의병장의 장례는 평소 입던 의관에 혼을 불러들여 초혼 장으로 옥천으로 옮겨와 장야리 선산에서 장사를 치루었고 그 때 그의 나이 불과 38세였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에 그는 이같은 공훈으로 군자감 주부에 추증되었다. 

한편 청군에 의해 강화도가 함락되고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조선 군사는 부족한 식량과 겨울 추위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1637년 1월 인조는 지금의 잠실인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굴욕적 항복을 하게 된다. 이로써 소현세자와 봉림대군과 척화파의 주모자 홍익환, 김상헌 등 삼학사를 잡아서 인질로 심양으로 붙잡혀 가고 청군은 2월 15일 철군하였다.

이득남 의병장은 옥천읍 장야리 출신으로 본관은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자는 자술(子述)이며 대대로 옥천에 세거한 가문으로 선대 조상이 고려시대 판서 급인 전서 벼슬에 오른 이자화(李子華) 전서의 후손이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이득남 의병장은 체모 또한 부친 어모장군 장군의 체신을 닮아 도량이 컸었다 하며 모친 영산김씨(永山 金氏)와 사이에 5남 3녀 중장남으로 태어났다. 1625년(인조3)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한편 이득남 의병장과 함께 전쟁터를 누비던 애마는 험천진 전투 후에 옥천읍 장야리에 돌아와 사육되다, 생을 다해 후손들이 옥천읍 장야리 선영에 이 의병장 묘소 아래 애마총을 만들어 주었다가 장야초등학교가 들어서서 의병장 묘소와 함께  안내면 동대리로 이장하였다.

이전한 이득남 의병장의 애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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