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초 학부모와 학교, 겨울방학 동안 학생들 위해 썰매장 만들어
군밤, 군고구마, 가래떡 등 먹을거리도 풍성, 요리교실엔 돈가스 만들기도
17일 안내초등학교 썰매장을 다녀오다

안내 초등학교 썰매장
안내 초등학교 썰매장

읍에는 피씨방이나 코인노래방, 카페도 있고 도서관, 수영장, 청소년수련관 등 공공시설이라도 있으니 기웃거릴 공간이 있지만, 면에 가면 사실 열악하다. 이원면이나 청산면같이 청소년문화의집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사정은 낫지만, 어중간하게 안내면처럼 아무것도 없는 면은 정말 아득하다.

시내버스를 타고 읍에 나들이를 하지 않으면 마을 안에 친구들도 얼마 없어 혼자 보내는 게 일쑤다. 

방학이 좋지만 또 싫은 이유이다. 자칫 무료할 뻔한 겨울방학을 학교와 학부모들은 '쌈박'하게 바꿔놓았다. 학교가 놀이터로 변신했다. 학기중과 똑같이 학교버스를 운행하고 아이들은 공부가 아닌 신바람나게 놀러 학교를 간다.

10시쯤 가면 교감 선생님은 눈썰매를 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고, 이현호(50, 보은) 돌봄교사와 3학년 전준영(25, 청주) 담임교사는 학부모들이 십시일반해 마련한 화덕 위에 군고구마와 군밤, 가래떡 썰은 것까지 가지런하게 놓고 구워 아이들 먹기에 딱 좋게 해놓는다.

왁자지껄 삼삼오오 눈썰매 위에 올라타기 무섭게 교감샘이 '화다닥' 썰매를 끈다. 환호성이 곳곳에서 들린다. 눈썰매를 타다가 지루하면 얼음썰매로 종목을 바꿔서 단독으로 탄다.  얼음썰매도 지루해지면 겨울팽이를 친다. 직접 만든 닥나무 팽이채로 신나게 얼음 위 팽이를 돌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추운 겨울이 웬 말인가? 등뒤에 땀이 흠뻑 젖는다. 

타다가 출출하면 금방 화덕 옆으로 가서 군밤과 가래떡구이를 곶감 빼먹듯이 먹는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추우면 난로 쬐면서 먹고, 다시 놀고 싶으면 지척 썰매장에서 썰매를 탄다. 사람이 많아 줄 서지 않아도 되고 돈 내지 않아도 되고 전부 무료다. 타는 것도 먹는 것도. 그러니 아이들은 신바람이 난다. 입소문을 타고 졸업생도 왔다.  

안내초등학교의 10여 평 정도가 되는 썰매장은 아이들에겐 보물이다. 안내초등학교 정문 앞에 들어가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실내체육관 옆 그림자가 진 곳에 썰매장이 있다.

 

아이들의 썰매를 끌어주는 정덕모 안내초등학교 교감.
아이들의 썰매를 끌어주는 정덕모 안내초등학교 교감.

 

정인화 안내초 교장(왼쪽), 이연화 안내초 돌봄 교사 (가운데), 전덕모 안내초 3학년 담임 교사 (오른쪽)
김영임 안내초 교장(왼쪽), 이현호 안내초 돌봄 교사 (가운데), 전준영 안내초 3학년 담임 교사 (오른쪽)
간식을 자유롭게 먹는 아이들
간식을 자유롭게 먹는 아이들

안내초 정덕모 교감은 "아이들이 겨울방학에 혼자 휴대폰을 하며 집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노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라며 "아이들이 어른들이 즐겼던 전통놀이를 하면서 사회성도 자라는 모습이 흐뭇하다"고 했다. 전준영 교사는 "썰매 교실을 하면서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썰매도 타고 전통놀이도 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이런 학교는 처음이다" 라고 했다. 이현호 돌봄교사는 "안내초등학교 썰매장에서 돌봄교사 혼자 아이들을 돌보면, 아이들 모두에게 세밀한 관심을 주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안내초등학교는 교장, 교감, 담임 선생님이 함께 돌보아 주니 소외되는 아이들 없이 돌볼 수 있어서 좋다"라고 했다. 안내초등학교 김영임 교장은 "밖으로 나가기 힘든 면 단위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하며 학교 내 썰매장 사업이 아이들에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곳은 추억에 젖은 졸업생들도 온다. 정규찬(옥천중1, 안내면 서대리) 학생과 그의 누나 정승비(옥천여중 2) 학생은 졸업한 안내초등학교에 다시 찾아와 활기를 불어 준다.

 

2층 계단과 다락방, 아이들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
2층 계단과 다락방, 아이들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

 

■ 허기진 배를 채우러 요리 교실로
 

군고구마와 군밤은 많이 먹어야 간식이다. 출출함을 임시방편으로 막을 수는 있어도 끼니가 될 수는 없다. 한참 내달려 허기진 배를 움켜진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특식, 바로 돈가스 만들기 요리교실이 준비되어 있었다. 걸어서 3분, 요리교실은 옛날 강당을 인테리어한 돌봄교실에서 진행되었다. 들어가자마자 고소한 기름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이들은 요리를 하기 위해 손을 닦고 요리교실로 향한다. 박윤정(42, 세종시) 요리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튀김 반죽과 안심살을 준비하고 있다. 돼지고기 안심살에 하얀 밀가루 툭툭 치면서 묻히고 노란 계란물에 푹 담근 다음 고슬고슬한 빵가루를 잔뜩 묻히면 준비 끝. 돈가스를 만들면서 촉감놀이도 즐긴다.

이현호 돌봄교사는 "아이들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지만, 튀김을 튀기는 위험한 작업은 교사들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만든 돈가스가 끓는 기름에 닿자마자 튀겨지는 소리가 참 경쾌하다.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돈가스를 먹는 그 맛은 어떨까? 

 

요리하고 있는 아이들
요리하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은 요리교실을 마친 후 돈가스와 함께 각자가 싸 온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아이들이 싸 온 여러가지 음식을 서로 나눠 먹으며 나눔의 정을 느낀다. 이현호 돌봄교사는 "아이들이 각자의 집에서 싸 온 김치도 집집마다 다른 맛이 난다"며 "아이들이 다양한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뒤늦게 찾아온 주도완 학부모회장은 "아이들에게 겨울방학 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학부모들과 학교와 협의해 썰매장을 만들고 화덕을 만들어 간식을 준비했다"며 "아이들 웃음소리만 들어도 피로감이 싹 풀린다"고 말했다. 

안내초등학교는 방학에도 34인승 스쿨버스가 다니며 아이들의 등하교를 도와준다. 

아이들은 아침 8시부터 친구들과 모여서 썰매, 팽이치기 등을 하며 즐거운 겨울방학을 즐긴다. 하지만 급식소의 사정으로 방학에는 각자가 도시락을 싸 와야 한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추억을 위해서는 도시락을 싸는 것도 좋지만, 군에서 로컬푸드 도시락을 지원해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작은학교를 위해 방학마다 로컬푸드를 이용한 도시락을 제공하여 준다면, 부모님의 수고로움도 덜고 아이들도 지역 음식으로 더욱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작은학교의 겨울방학은 지역사회의 돌봄, 학교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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