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토박이청년, 대전 만년동에 한식선술집 ‘조선’을 차리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메뉴개발팀 출신 전정하씨, 지난해 11월 개업

한식선술집 조선에서 제주 고소리술과 쇠힘줄수육을 곁들이면 정말 맛이 난다. 

사실 술은 퍼 마시는 게 아니라 조용히 음미하는 것일지 모른다. 적당히 취하면서 피곤한 삶을 같이 나누는 중요한 매개인지 모른다.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주, 박제되어 명절 선물시에만 거래 되는 전통주를 일상적으로 마실 수 있다면, 거기에 걸맞는 한식 안주가 같이 있다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멀리 갈 필요 없다. 삼양초, 옥천중, 옥천고를 나온 옥천 토박이 청년 전정하(34)씨가 경주대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경주 궁중음식연구원 3년, 백종원의 더본코리아에서 메뉴개발팀 대리를 맡으며 4년5개월을 거친 쟁쟁한 요리사가 한식선술집 ‘조선’을  대전 만년동에서 개업했다.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문배술과 이강주부터 시작해보자. 제주 고소리술도 괜찮다. 안동소주와 감홍로도 있다. 술술 잘 넘어가는 매실원주는 매실 술 중의 우리나라 최고라고 권한다. 전통주 메뉴에는 원산지와 원재료가 빠짐없이 들어있다. 가령 한산 소곡주에는 충남 서천의 찹쌀과 콩, 생강이 들어간다. 문배술에는 경기 김포의 메조와 찰수수, 쌀이 들어간다. 이강주에는 전주의 쌀, 밀, 배, 생강, 울금, 계피가 들어간다. 합성첨가물과 인공감미료는 없다. 그것에 걸맞는 안주는 소힘줄수육과 육회, 바지락술찜, 명란두부찌게, 명란구이와 오이를 곁들이면 ‘딱’이다. 2018년 11월 대전 만년동에서 한식선술집 조선을 개업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외식조리학과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가 오래동안 편찮았다. 

 투병생활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전문직 일자리를 가져야겠다는 고민이 대학 진학시 첫 번째로 고려됐다.  눈에 띄지 않았던 평범하고 조용한 인문계고 학생, 인생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도예와 조리 중에 잠시잠깐 갈등을 했다. 둘다 딱히 재능이 있다거나 해본 경험이 풍부했던 건 아니지만, 전문직 일자리 중 하나로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내심 고민을 하다가 조금 더 대중적인 그래도 조금이라도 집에서 해봤던 ‘조리’를 택했다.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도 고민을 나눠주었다.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외식조리학과가 있는 대학을 고르던 중 당시에 가장 등록금이 저렴한 대학을 택했다. 경주대 외식조리학과에 진학해 초기에는 한참 헤맸다. 같이 입학한 친구들은 다 고등학교 이전부터 조리에 대한 공부와 실습,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출발선이 달라 경쟁 자체가 안 됐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란 불안한 질문이 생면부지의 타지에서 계속될 무렵, 고독감은 후벼 파고 들어왔다. 정말 열심히 했다.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나중에는 교수 추천으로 2010년 중국 상해엑스포 당시 한국관 한식당에서 학기 중 8개월 인턴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식의 중요함을 외국에서 알게됐다

 상해에서 일하는 동안 요리 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한결같이 물었다. ‘너네 음식은 뭐 잘 하니? 뭐가 맛있니?’ 요리의 전통성, 고유성과 독창성이 함축된 이 물음에 선뜻 답을 할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요리하는 서양 친구들은 전통의 파스타, 피자 등을 뚝딱뚝딱 만들어서 맛을 보여주는데 당시에만 해도 우리가 일상으로 먹는 김치찌게, 된장찌게를 제대로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요리라고 생각을 안 했는지도 모른다. 해외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바깥에 나가서야 비로소 내 안에 있던 소중함을 발견한 것이다. 두번째 고민은 그렇게 해결됐다. 어떤 요리를 전문적으로 할까 하다가 한식으로 방향은 급선회됐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연구가 기능보유자인 한복례 선생의 이수자인 한분이 경주대 외식조리학과 교수였다. 그 교수가 하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한달에 20만원 받고 3년 동안 배우고 일했다. 말도 안 되는 급여지만, 당시엔 배움에 대한 열정이 커서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한식에 꽂혔고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11시까지 거의 쉬는 날 없이 강행군이었다. 한달에 두 세번 쉬었을까. 배울만큼 배웠고 다른 세상을 경험해야 겠다 싶었을 때 줄행랑을 치듯 나왔다. 

 백종원의 더본코리아에 들어가다

그리고 백종원의 더본코리아 메뉴개발팀에 정직원으로 입사하게 된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백종원’의 인지도는 하늘을 찌를듯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사실 ‘프랜차이즈 회사’라는 선입견은 요리하는 사람 입장에서 얕잡아봤는데 아니었다. 나름 배울 것이 많았다. 그곳에서 산업화 된 식당의 체계를 배웠다. 원가관리, 매장관리, 브랜드, 메뉴개발, 매장 오픈, 해외 매장 등 협업하여 한꺼번에 진행되는 어떤 매뉴얼에 대해 통시적이고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메뉴개발팀 대리를 맡아 4년 5개월 가량 일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직접 백종원 대표와 독대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정하씨가 본 백종원 대표는 정식 코스를 밟아 이름 난 쉐프가 됐다기 보다, 산전수전 경험한 경험치로 승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직관과 시대적 흐름, 분위기 등을 동물적 감각으로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메어 있으면서 직접 요리하는 일이 줄어들고 컴퓨터 앞에서 서류작업 하는 일이 늘어났다. 회의감이 불현듯 스며들기 시작했다. 회사의 부속품이 아니라 나만의 원형질을 드러낼 수 있는 독창적인 요리를 해서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무렵,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회사 사람들이 모두 다 와주어서 몇날 며칠을 같이 밤을 새며 위로를 해주었다. 그 때 고마워서 그 이후로 1년 동안은 정말 온 몸을 바쳐서 일을 했다. 하지만, 한번 스민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고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다. 

 이제 내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고향으로 내려왔다. 혼자 계신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쉼표를 찍는 시간이었다. 마냥 쉴 수가 없어 고향 가까운 대전에서 주방장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4개월 정도 구직 생활을 하다가 직접 차려보기로 했다. 프로그래머로 있는 동생이 권유하기도 했다.  고향에 차리고 싶었지만, 아버지 지인들이 많은 곳에 선뜻 차리기가 덜컥 겁이 났다. 외려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마침 요리하는 친구들이 여러 조언을 해줬다. 전통주를 소재로 한 한식 선술집이 어떻겠냐는 이야기에 마음에 쏘옥 들어왔다.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바로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충청도 한산 소곡주, 경상도 안동소주, 전라도 진도 홍주 부터 평안도 문배술, 제주도 고소리술까지 조선 8도의 술을 다 납품받았다. 가격이 다소 나가지만, 우리 농산물과 전통기법이 버무려진 전통주는 그만의 맛과 가치가 충분했다. 전정하씨는 전통주의 가치에 비견될 만한 안주요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삶아낸 '소힘줄 수육', 부채살에 계란물을 입혀 부쳐낸 고소한 ‘육전’, 홍두깨살에 고추장 양념을 넣고 무친 ‘육회’, 버터와 정종을 넣고 살짝 쪄낸 바지락찜, 명란젓과 두부, 조개와 채소를 넣고 맑게 끓인 ‘명란두부찌게’, 고소한 들기름과 대파로 향을 낸 ‘들기름 달걀구이’ 등 그 만의 메뉴를 만들었다. 혼자 하는 일인 식당이었다. 주방에서 요리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음식을 만들면서 먹는 손님과 교감을 하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기능인으로, 부속품으로 정해진 일을 하기보다. 이제 음식을 통해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예술 하는 단골손님들 많이 생겨

 2018년 11월 개업 이후 반년 동안의 성적표는 어떠할까? 단골손님이 생겼다. 바로 식당 인근에 예술의 전당이 있어 예술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찾았다. 선술집 안의 포스터도 그들이 붙여달라고 건의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드나드는 사람들로 인해 한식선술집 조선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이되고 있었다. 그건 사실 그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함께 만들어가는 선술집,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술집이 되었으면 했다. 

 “하루에 많게는 7팀에서 12팀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럼 정신없이 바빠요. 요리 만들어야지, 치워야지 눈코뜰새 없이 바빠서 사람을 쓸까 하는 생각을 요즘 간간히 하고 있어요.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데 정리하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3시에요. 잠을 잠깐 자고 오전에 나와 식자재 챙기고, 다시 들어와 눈 붙이고 문 여는 준비 시작하면 하루가 금방 가요. 그래서 주말 장사를 일부러 안 하는 거에요. 평일에 집중하려구요. 토요일-일요일은 쉬고 있습니다.” 돈 벌 욕심이었다면 주말에도 일했을 터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오는 사람들에게 최상의 컨디션으로 좋은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싶었다. 평일에 집중하기 위해 주말장사는 과감히 포기했다. 

 언젠가 고향에서 한식선술집을 차리고 싶어

 "아버지는 투병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어머니가 그 옆에서 병 수발하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어요. 제가 요리를 하는 사람이니까 아버지 찾아뵐 적엔 꼭 노량진 시장에 들러 싱싱한 해산물 사서 요리를 한 것을 들고 갔어요. 아버지가 맛있게 드셔주니까 그 것만으로도 감사하더라구요.” 

 식당 문을 연 것을 어느새 고향 친구들이 알아서 벌써 자주 왕래를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나중에 언젠가는 고향에서 선술집을 열고 싶다. 같이 나이들어가는 고향 선후배들을 위해 전통주와 한식 안주를 멋들어지게 대접하고 싶다. 그는 그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고향 옥천에서 선술집을 차리고 싶어요. 저를 키워준 고향 옥천, 가면 늘 친구들과 어머니만 보아도 힘을 얻고 와요.” 고향에 가면 진로집과 정겨운 해물마차 등에 자주 가서 친구들을 만난다고. 

 그는 얼마전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한식선술집 조선을 통째로 옮겨와서 지역 주민들에게 선을 보여 극찬과 호평을 받았다. 그렇게 조금씩 고향에 젖어들고 있었다. 

주소 : 대전 서구 만년남로 3번길 8-6 1층(만년동 263)
전화 : 010-206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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