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제 (옥천작가회의 회원, 동이면 세산리)

우리는 50년 지기 죽마고우다. 빛나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가슴에 달고, 부푼 청운의 꿈을 나눈 벗이다.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가 부럽지 않은 결기로, 친목계를 결성한 지 40년이다. 그동안 개나리도 피었었고 뻐꾹새도 하 많은 세월 울었었다. 풍상이 섞어 친 날도 의연히 일편단심으로 혈맹의 단지를 맹세했다. 그러나 유수의 세월 속에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나의 소박한 욕심이었다.

작은 모래알 같은 불신이 세월의 흐름을 타고 흘러들었다. 40년 동안 친목계를 운영하는 기간 9할은 내가 총무를 도맡았다. 총무의 책무는 막중 지사다. 주로 나는 허드렛일을 책임졌다. 재정은 빈약했고 우리네 아픈 청춘의 가락은 사연이 깊었다. 당연히 2차는 움막 같은 우리 집이었다. 궁핍한 살림에도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서로가 막역지우이었기에 숨기는 것이 오히려 병이었다. 같이 뒹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궁핍한 것은 죄가 아니다. 부모님한테서 빗만 물려받은 것을 아는 친구들이었기에 오히려 나는 당당했다. 못 배우고 빈털터리 나의 인생이 죄가 되지는 않았기에 오히려 찾아오는 그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나와 집사람은 늘 그렇게 살며 생각했다. 언제나 사람이 그리웠다. 아무것도 없는 집에 와서 부담 없이 자고 가는 그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문이 내 귓가를 때렸다. 내가 총무를 하면서 곗돈을 슬금슬금 떼어먹는단다. 순간,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미련 없이 총무직을 벗어던졌다.

원하는 친구에게 인수인계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사람이다. 친구가 수상했다. 처음엔 '좋은 것이 좋다고' 넘어갔는데, 결산을 차일피일 미룬다. 

3년 차에 가서 이실직고를 받고 보니, 장부를 잃어버렸단다. 알고 보니 그동안 받은 곗돈을 몽땅 말아먹은 것이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만 것이다. 이것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이다. 내가 조목조목 따지니 소주병을 내 머리통에 날린다. 가까스로 피해서 불상사를 면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전역 앞 포장마차에서 마신 깡소주 맛은 지금 생각해도 맹물이었다.

우리는  없었던 일로 치부를 하고 다시 뭉쳤다. 그러나 세월 앞에 인간의 마음은 모래알같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마음은 간교해지기 시작했다. 학식과 권세가 높을수록 눈빛은 흐리고 마음은 음흉해지는 것 같았다. 세상이 왜 자꾸만 꼬여가는 줄 알 것 같았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남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세상이 되어갔다.

무위(無爲)와 인위(人爲)는 극명하다. 무위는 내 발 달린 소가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풀을 뜯으며 걷는 모습이다. '무위(無爲)의 길'은 병든 나뭇가지 하나라도 천수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하늘의 섭리요, 이치다.

인위는 그 소의 코를 뚫고 멍에를 씌우는 일이다. 고로 사람이 하는 일은 약한 놈의 것을 헐어 힘 있는 놈의 배를 채우는 일이다. 이 묘한 짓거리는 만물 중에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추태며 욕심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인간의 '시기와 질투'는 하느님이 빗은 최고의 실패작이다. 결국 친목회는 잘나고 가진 놈들의 농간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났다.

며칠 전이다. 우연한 길에 친구한테서 친목계원의 모친이 서거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땡초가 아니 올 사람이 아닌데 궁금했단다. 가슴이 아렸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그 친구는 흙을 파먹고 사는 순진무구(純眞無垢)한 놈이다. 흙빛을 닮은 보석 같은 친구다. 초창기 일등 공신이다. 이튿날 찾아갔더니 이미 장례를 모신 후다. 40년 시부모를 봉양한 지수 씨가 울먹이면서 "제가 부족해서 어머님을 잃었다."고 피눈물을 토한다. 나도 갑자기 피가 솟구친다. 멍하니 천장만 쳐다본다. 산다는 것이 왜, 이다지도 서러운 일일까? 혼자서 바보처럼 원망하면서 가슴을 쳤다. 눈물을 감추고 강한 척하느라 애를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험한 세상을 인내하면서 가는 길이 참으로 참담했다. 이 미련한 땡초가 사는 인생살이는 마냥 이 모양이다. 이것이 나의 '헛께비 인생살이' 파고다. 우리네 살림살이의 속내가 너무도 추잡스러워 보였다.

설령, 백 년을 산다고 해도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 같다. 세상사는 끊임없이 변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명을 다한다. 이 허무하고 덧없는 삶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 주어진 오늘을  '보다 나은 삶의 보람'으로 살찌우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부처님은 열반(涅槃)을 앞두고 간곡히 말씀하셨다.

묘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갈수록'최소한의 양심으로' 건강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숨을 고르기 힘든 세상이다. 나는 인생을 헛산 허수아비 인생이다. 그래도 사람이 세상의 등불이 아닐까?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길 잃고 헤매는 우리들을 안고 건네줄 '나룻배'는, 당신의 어둠을 뚫는 맑은 눈빛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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