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영화들, 웃는 얼굴로 돌아보다
2019년의 영화들, 웃는 얼굴로 돌아보다
  • 옥천닷컴
  • 승인 2020.01.13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아시스
piung8@hanmail.net
(옥천읍 가화리)
오아시스piung8@hanmail.net(옥천읍 가화리)
오아시스piung8@hanmail.net(옥천읍 가화리)

최근 한국 영화를 선정하는 건 몹시 괴로웠습니다. 블로그에 한해를 정리하는 영화를 올리곤 했는데 3년 동안은 공유하고 싶은 영화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관객의 눈치를 보느라 만든 영화들이지만 그마저도 관객들에게 먹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대중영화라고 하지만 창작자의 등 푸른 비늘은 보이지 않고 숙성이 덜 된 담근 술의 뚜껑을 열게 되면 만나게 되는 민낯의 알콜이 코를 찌르는 형국이었습니다. 
성난 얼굴로 한국영화를 돌아보는 일이 많았는데 올해는 다행히 웃늘 얼굴로 돌아봅니다. ‘기생충’이 칸느부터 헐리우드까지 오지랖이 넓어졌지만 독립영화들의 활약도 반가웠습니다. 거대 자본없이도 충분히 좋은 영화는 가능하다는 독립영화의 도전과 기백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2011년도 독립영화들이 한국영화의 체면을 살렸습니다. 파수꾼/혜화,동/계몽영화/무산일기들이 2011년의 빛나는 작품들입니다. 그 이후 간간히 만나다가 올해 다시 독립영화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공유하고 싶은 영화들을 제 나름대로 선정해봤습니다. 영화 웹사이트에 단 댓글과 함께 짧은 리뷰 달았습니다.

 

1. 벌새

-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 같은 세상에서 사는 법
‘벌새’는 82년생 김지영’의 중학생 버전처럼 보인다. 묵묵히 현실을 견디다가 결국 빙의에 다다른 김지영의 답답한 청소년기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도입부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은희의 모습은 아직도 문을 열어달라고 고군분투하는 요즘 청소년들이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강북’스타일의 주인공이 성공의 강박이 일상인 건조한 ‘강남’에서 버티고 사는 눈물겨운 생존기의 영화다. 내가 함께 일하는 센터의 ‘과장’님이 영화의 절반부터 울고도 모자라 집에 가서도 슬픔에 허우적거렸다고 한다. 은희와 같은 나이에 강남에서 살았다. 

 

2. 82년생 김지영
-‘미숙아’에서 눈물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젠더를 물어보면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 한국에서
소설속의 무심했던 남편은 관객들의 부러움을 사는 남편이 되었다. 물론 좀 더 들어가면 친절의 배경이 불온하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현실에서는 꽤나 좋은 남편이어서 영화의 호불호가 갈라지는 원인이 되었다. 아직은 여성의 고민을 직접화법으로 묘사하기엔 좋은 토양은 아니라서 영화는 좀 더 대중적인 캐릭터를 선택했다. 그리고 ‘김지영’의 빙의 방식은 강한 정화의 효과를 경험하게 한다. 
그동안 젠더 이슈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많지 않았다.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에서 성폭력에 노출된 한국의 젠더지형을 다루고 나서는 그 이후 눈 여겨 보지 않는 독립영화에서 간간히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젠더를 이야기할 수 있는 82년생 김지영’의 등장이 매우 반갑다. 

 

3. 아워 바디
-성공과 경쟁의 프레임에서 학대받던 몸이 의식의 주체와 성적 주체로 태어나는 몸의 변화가 뭉클하다. 그리고 나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되는 몸들의 연대.
8년 차 공무원 수험생 자영이 어느 날 책장을 덮었다. 모든 젊은이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공무원 준비를 포기 한 자영은 달리기를 시작한다. 우연히 한강 둔치에서 달리기를 하는 현주를 보는 순간 자영의 학대받던 몸이 반란을 일으켰다. 정신승리를 강조하는 대한민국에서 ‘몸’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거의 없다. 그래서 반갑다. 일본영화 ‘백엔의 사랑’도 비슷한 맥락의 영화다. 불안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공격으로 자기 삶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술은 주체로 돌아가라고 자주 태클을 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최근 전고은 감독의 영화 ‘소공녀’또한 반갑다.
40이 되고부터 ‘몸’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산업화 프레임은 우리 몸을 가두고 학대했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다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으로 몸에 대한 역설을 갈음하겠다. 
몇 해 전 학교 폭력 문제로 사회가 한참 시끄러웠다. 각종 가족적, 사회적 원인과 처방이 쏟아졌다. 그때 문득 나의 중학 시절이 생각났다. 중학생들은 양기가 뻗치는 시기다. 나처럼 소심한 여중생도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웠는데, 혈기방장한 남학생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 힘을 발산시킬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골목길도 마당도 광장도 다 사라졌다. 예전에 그나마 쉬는 시간엔 뛰어다닐 수 있었건만 지금은 놀 때도 몸을 쓰지 않는다.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향한다’<니체> 적대감과 원한이 싹트는 토양이다. 그 힘이 나아갈 방향은 두 가지뿐이다. 자기를 학대하거나 아니면 타자를 짓밟거나 전자가 우울증 혹은 자살충동으로 이어진다면, 후자는 맹목적 분노 혹은 폭력 중독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생명의 물리적 법칙이다. 요컨대 집중력 향상이건 폭력방지건 정말로 대책을 마련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몸의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         
<몸과 인문학>에서 일부 인용-고미숙​ 

 

4. 김군
-5,18 이후의 세대가 긁어 낸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려움 그리고 투명한 응시
‘김군’은 군사 평론가 지만원이 5,18이 북한군의 소행이라 하면서 ‘제1광수’로 명명한 북한 특수군 출신 김군을 추적하는 다큐다. 기존 역사를 다룬 다큐는 당대의 아픔을 기록하는데 집중하거나 역사에 대한 분노를 토하면서 정화 효과를 누렸다. 최근 다큐의 경향은 역사 이후이 세대가 참여하면서 조금 더 역사의 모순에 함몰되지 않는 톤을 유지하면서 진행한다. 전자의 방식도 나름 의미가 있고 후자도 마찬가지다.

 

 

5. 기생충
-이창동의 ‘버닝’이 묵직하게 계급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면 봉준호는 웃픈 유머로 칼을 꽂았다.
칸느의 후광에 밀려 판단력이 많이 흔들렸었다. 내게 좋은 영화는 두 번째 볼 때 결정된다. 첫 번째 강렬한 인상을 준 ‘기생충’은 두 번째 볼 때는 밋밋했다. 장르의 조합과 뛰어난 미장센으로 차린 화려한 밥상이었지만 정작 내게는 먹을 것이 빈약했다. 이런 아쉬움은 봉준호 감독에 대한 내 높은 기대치 때문이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