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순두부 맛이 그리워 직접 두부를 만들기 시작
스위스 바젤에서 두부를 만드는 박진희씨 인터뷰

대두 500그램을 샀다. 밤새 콩을 불렸다. 콩이 제법 오동통해졌다. ‘직접 두부를 만들게 될 날이 올지는 몰랐는데’. 원래 두부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겨울이 제법 긴 스위스에서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순두부찌개가 생각났다. 따뜻하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뭉그러지는 순두부찌개. 

스위스에서 순두부찌개를 먹기는 어렵다. 뭐랄까. 스위스에서 조리한 두부는 단단한 편이다. 표면의 식감이 약간 질겅질겅하다. 두부를 고기 대체식품처럼 여겨 소스에 버무려 구워먹는 게 대체로 이곳의 조리법이다. 남편 톰이 처음 한국에 와서 두부김치를 먹었을 때 ‘두부 맛이 원래 이런 거였어?’ 라고 깜짝 놀란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 톰은 한국에 오면 두부김치를 꼭 찾는다. 

오동통한 콩을 채로 걸러내 물을 뺀다. 믹서기에 콩과 물을 넣고 갈아준다. 뽀얗게 고소한  냄새가 난다. 면포에 콩물을 붓고 찌꺼기를 감싸 짜주기를 반복한다. 딱딱한 비지만 남는다. 

콩즙을 끓인다. 거품이 올라온다. 찬물을 붓는다. 간수를 구하지 못해 식초와 소금으로 간을 했다. 저으면서 식혀주자 어느새 몽글몽글 제법 순두부찌개 모양이 됐다. 한 입 입에 넣었다. '그래, 맞아. 이 맛이지'. 

지난달 23일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만난 박진희(39,스위스 바젤)씨
지난달 23일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만난 박진희(39,스위스 바젤)씨

박진희(39,스위스 바젤)씨를 옥천에서 다시 만났다. 박진희씨는 2009년 옥천신문사에 입사해 3년여 일하고 스위스 사람인 남편을 만나 2015년 4월 스위스로 함께 떠났다. 어떻게 다시 옥천을 찾았는지 물으니, “옥천이 지역 농산물로 만든 두부가 유명하잖아요. 스위스에서 두부를 만들어 판매할 계획을 하고 있거든요. 옥천에서 좀 더 배워서 가려고요.”라고 말했다. 빙그레 웃었다.

스위스에서 두부를 팔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처음에는 겨울철 순두부 맛이 그리워 혼자 만들어 먹어본 게 전부였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조금 나눠줬는데,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 반응이 좋았단다. 가게를 차린 친구가 진희씨를 찾아와 ‘우리 가게에 납품해주지 않겠어?’ 물었다.

“마침 그 친구가 조리작업장을 가지고 있어서 작업장에서 200g 두부를 30개 정도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어요. 일주일에 한번씩이요.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 기계 없이 오로지 손으로 전부 만들려고 하니까 그 정도가 한계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반년간 월요일마다 납품하다보니 나중에는 2, 3일이면 모두 동나더라고요. 단골도 생겼고요. 그때 생각했죠. 이거 한 번 제대로 도전해볼 만하겠다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바젤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풍요로운 도시다. 특히 식문화에서는 유기농만 먹고 지역 농산물에 관심 많은 채식주의자가 제법 있다. 포장지 없는 가게(No Waste Shop)나 로컬푸드 가게, 유기농 식품 가게 등 이들을 타겟으로 한 가게도 제법 많다. 굳이 채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고 먹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두부가 맛있네요’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이 두부를 만든 콩이 어디서 온 건지 물어보는 손님들이 정말 많아요. 유기농인지, 우리 지역에서 만들어진 콩이 맞는지, 이 콩을 만든 작업장은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해 해요.” 

진희씨도 노력하고 있다. 본래 진희씨는 바젤에서 1시간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지역에서 스위스 유기농 콩을 구입해 두부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1시간30분 정도 거리면 멀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진희씨는 지금 진희씨가 살고, 작업장이 있는 바젤 근교에 유기농 콩을 재배하는 농가를 찾고 있다. 

“식품이 오가는 거리를 최대한 줄이고 지역 안에서 잘 만든 신선한 식품으로 자급자족하는 것. 로컬푸드를 중요하게 바라보는 바젤 주민들의 가치나 지역의 분위기는 굉장히 빨리 이해했어요. 지역 농산물의 중요성은 사실 제가 옥천에 있었을 때도 이미 합의된 부분이었으니까요. 지역 농산물 지원조례가 제가 옥천신문사에 다니기 전인 2007년 이미 완성됐고 이후에도 옥천푸드 등이 주요 화두였거든요. 스위스에서도 두부를 만들 때 단순히 ‘유기농 두부를 만들자’뿐 아니라 ‘지역에서 난 농산물로 만들자’라는 생각까지 나아갈 수 있었어요.” 

지난해 4월 본격적으로 두부 레시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조리작업장을 계약했고, 기계와 전기 설비를 마치고 2월부터는 두부를 판매할 계획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특별한 것, 포장은 쓰레기 없는 소비를 위해 회수가 가능한 유리병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유기농 콩에, 포장도 재활용이 가능한 유리병을 사용하는 것. 포장지 없는 가게(No Waste Shop)나 로컬푸드 가게, 유기농 식품 가게 어디든 납품할 수 있어요. 소규모로 하니까 제가 대장이잖아요? 제가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웃음).”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는데 바젤란드에 있는 한 은행에서 250만원을 후원해왔다. 시작이 좋다. 일반인을 위해서는 후원하면 날짜를 정해 두부 가져갈 수 있게 하거나 에코백 증정, 한국식 저녁 대접, 두부 요리교실 참여 등 다양한 선물을 준비했는데 이런 답례와 관계없이 친환경 지역 농산물이라는 가치에 공감해 타지역에서 후원해오는 사람도 있다.

■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두부’

두부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얼핏 조리법은 간단해보이지만 콩은 상당히 민감한 식품이라 날씨와 온도, 콩 상태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스위스에서 진희씨가 원하는 품질의 콩을 찾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아무 기계 없이 오로지 수제로 두부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판을 만드는 데 6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또 타향살이 중에 자기 사업을 진행하며 온갖 서류를 준비하는 일이 쉬운 일이랴. 주변 사람에게 의지하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도 많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기자 생활도 했겠다, 영어도 잘하는 편이고 어려울 게 없을 거 같았는데 막상 타지에 와서 공식적인 서류를 작성하려고 하니까 막막한 게 많았어요.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그런데 기어이 왜 했냐구요? 30대면 왕성한 시기잖아요. 사실 스위스에 와서 몇 년 취업이 어렵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방향성이 안 보이였던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였을 때, 어떻게든 해보고 싶었어요. 안 하면 어떤 일도 없었던 게 되지만 뭐라도 하면 실패라도 할 수 있잖아요? 실패나 성공이나 제 삶의 이력이에요. 나중에 하다못해 두부공장이라도 취직할 수 있겠죠(웃음). 진짜로요. 제 이름으로 회사를 운영해봤다,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죠.”

진희씨가 만드는 두부에도 분명 꿈이 있다.
 
“스위스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이 두부를 고기 대체식품처럼 먹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제가 SNS에 두부 사진을 올릴 때 꼭 붙이는 해시태그가 있어요. ‘모두를 위한 두부’. 두부는 무엇을 대체하는 식품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기자님도 안남에서 막 만든 두부 먹어보셨죠? 따끈따끈하게 속을 든든하게 메워주는... 그 고유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두부의 맛을요.”

톰과 박진희씨 부부의 모습. 톰이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두부김치다. 한국에 와서 진짜 두부의 맛을 알았다고. 함께 두부 레시피를 좀 더 연구하기 위해 옥천을 찾았다. 
스위스에서 두부를 만들고 있는 박진희씨의 모습.
스위스에서 실제로 판매했던 박진희씨가 만든 두부. 유리병 용기에 200g의 두부를 담아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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