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서 (전 옥천군친환경농축산과 과장)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연탄가스처럼 내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헌법 제121조를 보면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라고 명시되어있다. 경자유전이란? 투기적 농지 소유를 막고, 식량 자급을 위하여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원칙이다. 소작(小作)이란? 농지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소작료를 받고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일찍이 18세기 말 다산 정약용 선생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주장한 바 있다. 해방 후 1949년 제정 공포된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농지의 소유권을 경작자에게 돌려주었다. 유상매수와 유상분배를 원칙으로 3ha 이상 소유하고 있는 농지는 경작 농민에게 돌려주었다. 농지개혁법에 따른 분배농지 상환업무는 60년대 말까지 20년간 지속하였다. 지금도 옥천군청 서고에는 분배농지 대장이 일부 보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현재 경자유전의 헌법정신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농지법 제6조 2항에는 예외 규정이 무려 10건이나 나열돼 있다. 한마디로 이 경자유전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빈 쭉정이만 덜렁 남아 있다.

경자유전의 헌법 정신은 필자가 군청에서 농지법 실무자로 근무하던 1990년대 들어서 급격히 무너졌다. 영농조합을 시작으로 농업법인의 농지 소유가 허용됐다. 1996년에는 농지법이 제정되면서 도시거주인도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농지법 시행 전부터 소유한 농지의 임대차도 이때 모두 합법화됐다. 2003년에는 도시민도 1,000㎡(300평)까지는 주말 영농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경자유전의 대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현재 우리나라 임차농지 비율은 50%나 된다. 특히 누구보다도 법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 중에도 약 3분의 1이 본인이나 가족·친지들의 이름을 빌려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농사를 지을 시간도, 마음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농지를 불법으로 소유하고 있다. 재산증식을 위한 욕망 때문이다. 지금 시골에는 농민이 줄어들고 있는데 오히려 서울에는 농민이 늘어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해방 이후 농민은 항상 찬밥이었다. 재벌 중심의 수출산업화 정책에 밀려 희생만 강요당해 왔다. 필자가 처음 공직에 입문한 1970년대 만 해도 농가 인구가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는 4% 미만으로 급감한 상태다. 그중에서도 60대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곡물 자급률은 23%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생명과 직결되는'식량 주권'이 벼랑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최근 일본이 전격 시행한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로 국내 기업들이 입은 타격을 기억해보라. 지금 우리는 곡물의 80%를 미국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만약 곡물이 수출규제를 받게 된다면, 우리는 1인당 평균 3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손에 쥐고도 굶주림의 고통을 벌건 대낮에 눈 뜨고 당해야 할지 모른다. 2011년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터졌던 식량 대란과 대규모 폭동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무엇이든 문제가 어려울수록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지금부터라도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을 철저히 이행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토지공개념도 신중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땅을 왜 땅이라 했을까? 혹시 땅이 많으면 예부터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산다고 땅이라 부른 것은 아닐까? 지구 표면에서 수면을 제외한 나머지가 토지다. 어찌 감히 인간이 하느님이 주신 신성한 땅을 소유하여 사익을 추구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할 수 있는가? 경자년 새해 아침, 헌법 제121조 경자유전의 원칙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지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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