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교동리서 취미로 옥천목공방 10년 째 운영
‘함께하는 초보 목공’ 네이버밴드 회원만 1만7천명 가량
연말에는 회원들과 함께 목공 장난감과 원목 샤프 후원도

옥천읍 교동리에서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옥천목공장 대표이자 네이버 밴드 ‘함께하는 초보 목공’ 공동리더인 박정길씨.
옥천읍 교동리에서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옥천목공장 대표이자 네이버 밴드 ‘함께하는 초보 목공’ 공동리더인 박정길씨.

 

비가 내려서 그런지 작업실에서 나무 향이 한껏 진하게 풍겨온다. 커다란 기계. 소리와 빗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작업실 여기 저기에는 톱밥이 눈처럼 쌓여 있다. 그곳에서 목공 작업을 하고 있던 박정길(51, 교동리)씨가 우리를 반긴다.

연락하고 찾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소리소문없이 10여년 동안 목공 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조용히 뿌리내리는 나무를 연상케 한다.

취미를 하다보면 어느새 을 고민하게 된다. 언제까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으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의 문제는 그만큼 중요하고, 좋아하는 취미는 삽시간에 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지만, 그는 10년 동안 하면서 전환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 네이버밴드에 함께하는 초보목공동호회를 개설하면서 연예인을 비롯한 17천명의 회원을 거느린 나름 셀럽이다. 유명세를 활용해 을 한다면 그만큼 대성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기 쉬웠을 것이다. 늘 그렇듯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다는 건 중요하다. 상업적으로 변모하지 않고 아마추어리즘을 끊임없이 고집하면서 사람답게 살려는 움직임, 그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은 그나마 젊은 시절 모아두어 구매했던 건물의 임대료였다. 삶을 풍족하게 해주진 않았지만, 절약하면서 그의 삶을 일굴 자양분은 됐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지만, 나무를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같이 서로 부족한 기술을 공유하며, 경쟁보다 협력을 꿈꾸며 사는 사람, 박정길씨를 7일 만났다. 넉넉한 풍채와 사람좋은 웃음으로 반기는 박정길씨는 평범한 사람과는 달랐다. 목공을 취미로 10년 동안 계속 유지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전 플라스틱 사출공장을 하면서도 지역의 플라스틱 사출업체를 찾아다니면서 먼저 인사하고 협력할 방법을 모색했다는 것도 그렇다.

경쟁업체다 보니 서로 정보를 안 주면서 내외하기 쉽지만, 먼저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모임을 구성하는 데 역할을 했다. “경쟁하기보다 서로 협력하면 좋잖아요. 그래서 먼저 인사부터 드렸죠. 그런데 맨 처음에는 경계를 하시더니 진심을 알고서 이물없이 지내게 됐죠

이런 방식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는 나무의 결대로 사람의 결대로 그렇게 살려고 자연스럽게 했다. 그런 그의 삶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삶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보자.

 

박정길씨만의 비밀의 공간, ‘옥천목공방'

박정길씨는 옥천읍 교동리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목공소를 운영하고 있다. 샤프, 볼펜, 원목 장난감, 탁자, 의자, 서랍장 등등 공방 곳곳 그의 손길을 거친 수많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목공을 체험하기 위한 수강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 밴드 함께하는 초보 목공회원 수는 16천 명을 넘어 거의 17천 명을 바라보고 있다. 1년에 한 번꼴로 진행하는 12일 정기 모임에는 약 400명이 모일 정도로 결집력이 대단하다.

대전 동산초, 보문중, 대신고, 한밭대학교 화학공학과까지 모두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박정길씨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번개탄 대화동 공장의 대왕연료 상호를 이어받아 대전에서 대왕플라스틱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출공장이 점점 커지면서 터를 옮겨야 했고 그렇게 찾은 곳이 옥천이다. 옥천읍 교동리에 있던 한 창고를 공장으로 개조했다. 창고였던 곳을 절반은 공장, 절반은 가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목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전과 옥천을 왔다 갔다 한 게 벌써 10년째다. 옥천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며 언젠간 옥천으로 완전히 귀촌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름 규모가 큰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장인이지만 한 번도 작품을 판매한 적이 없다는 박정길씨. 재료값이 만만치 않은데 판매는커녕 주변에 나눠주기 바쁘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목공'

 

박정길씨의 목공 역사는 10년 전에 시작됐다. 사연 많은 가정사로 인해 혼자서 네 아이를 책임지게 된 박정길씨는 그 무게감으로 우울증이 왔다. 하루하루 숨이 턱턱 막혀왔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출공장은 어려워 급기야는 공장을 접었다. 막다른 길목에서 그는 누군가의 권유로 목공을 시작하게 됐고 그 이후 삶이 변했다. 처음에는 아이 장난감, 옷 등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장 만들기부터 시작했다. 목공을 하다 보니 재밌고 하루가 금방 갔다. 목공 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무를 만지는 동안은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그때부터 목공은 그의 삶이었다. 처음에는 기계를 하나 사서 간단한 필통 등 흉내 내기를 먼저 시작했다. 너무 재밌었다. 투박하던 나무가 손길을 거칠 때마다 작품이 됐다.

나무는 금방 깨지고 크랙이 생기기 때문에 건조를 시킨 후 사용해야 한다. 햇빛이 없는 그늘진 곳에서 통풍이 잘되도록 보관해야 한다. 그의 작업실에 쌓인 수백 개의 나무는 질서 없이 쌓여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통풍이 잘되도록 받침대를 끼워 넣어 모든 나무 사이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의 정성이 느껴진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무는 느티나무, 참죽나무, 호두나무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나무는 처음엔 예쁘게 보여 수강생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금방 질려 결국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느티나무. 참죽나무로 돌아온다고 한다.

 

박정길씨가 들려주는 목공 이야기

원목 샤프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 이것을 여러번 깎으면 샤프의 몸통이 된다.
원목 샤프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 이것을 여러번 깎으면 샤프의 몸통이 된다.

그의 주 종목은 원목 샤프와 원목 펜이다. 투박한 나무를 손에 쥐기 쉽도록 미세하게 여러 번 깎아내고 가운데 심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뚫는다. 그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펜을 판매할 법도 한데 아끼지 않고 주변에 선물해준다.

판매할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박정길씨도 목공으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목공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아예 접었다. 이전에 친구의 부탁으로 싼 값에 물건을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친구가 비싸다고 한 것이다. 재료값도 제대로 안 받았는데 말이다. 원목 값이 워낙 비싼 탓이다. 주변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기성품들은 합판에 코팅을 한 형식이라 저렴한 값에 살 수 있는데 박정길씨는 100% 원목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훨씬 비쌀 수밖에 없다. 박정길씨는 아 친한 친구도 이렇게 오해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이 일을 계기로 판매는 하지 않고 연락이 오면 직접 만드는 것을 도와준다고 한다. 직접 만들면 완벽하지 않아도 훨씬 애착이 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그런 기쁨을 주기 위한 것도 있다.

목공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방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었다. '열쇠 공방', '베란다 공방'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열쇠 공방은 여러 명이 같은 열쇠를 가지고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열쇠공방은 목공을 깊이 배우게되면 기계값이 비싸 혼자하기 어려워 함께 목돈을 모아서 기계를 사고 공동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공방이다. 10명 정도가 모여 500만원 가량 등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그 돈으로 공방을 구하고 기계를 구입한다. 그리고 나가게 되면 그 돈을 돌려받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그 몫을 내는 것이다. 일종의 보증금인 셈이다. 박정길씨는 옥천에서 열쇠 공방을 열고 싶었지만 옥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헛간, 창고 등 이미 개인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해 결국은 추진하지 못했다. 베란다 공방은 말 그대로 베란다에 공방을 차리는 것이다. 작은 기계를 구입한다면 소음도 크지 않아 얼마든지 집에서도 공방을 차릴 수 있다고 한다.

 

'함께하는 초보목공' 밴드, 단합도 맘씨도 으뜸

 

함께하는 초보목공 밴드 공동리더인 박정길씨는 목공을 하는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목공은 기술의 정보 공유가 가장 중요하다. 목공은 분야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자신 있는 부분이 다르다. 같이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네이버 밴드를 개설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네이버 밴드 '함께하는 초보 목공'은 규모가 커지고 커져 만든 지 4년 만에 회원 수가 16천 명을 넘어 거의 17천 명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 중에는 류승룡, 정종철, 춘자 등 연예인도 다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면 단합이 잘 안 될 법도 한데 이 밴드는 분위기가 너무 좋다. 단순히 친목도모를 넘어 무언가 배워갈 수 있는 모임이다. 온라인상에서만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기엔 한계가 있어 일 년에 한 번 정도 정규모임도 한다. 12일 동안 진행되는 정기모임에는 무려 400명이 모인다. 이들이 모이면 나무로 못 만드는 것이 없다.

밴드의 결속력이 매우 좋고 충분히 활성화가 됐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나무로 만들고 싶은 장르를 말하면 전국의 장인들을 연결해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렇게 모인 이들은 단순 취미 공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활동들도 한다. 지난달 24일에는 아이들을 위해 원목 장난감과 원목 샤프 각 50개를 사랑의 후원 물품으로 전달했다. 그 이전에는 원목 작품을 가지고 경매 등을 통해 모은 돈 77백만원을 수녀원에 기부하기도 했다.

 

목공은 사람의 상처를 치유한다

박정길씨는 목공은 힐링을 넘어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 스크롤쏘(나무를 곡선으로 자는 톱)를 배우러 온 암 투병 환자가 있었다. 손주에게 직접 만든 원목 장난감을 선물해주고 싶어 목공소를 찾은 것이다. 투병 중이었던 그는 몸이 점점 상하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그쯤이면 목공소에 그만 와도 될 법한데 꾸준히 왔다.

힘들지 않냐는 박정길씨의 물음에 수강생은 손주 장난감도 좋지만 이제는 진통제 대신이라고 답했다. 스크롤쏘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동안은 몸이 아픈 것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어느 날 박정길씨에게 목공을 만나게 해줘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전한 문자가 한통 왔다. 그게 그 수강생의 마지막 문자였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들에게 마지막 문자를 부탁한 것이었다.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집안 곳곳 원목 작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손주들이 모두 커 어른이 됐을 때도 할아버지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망인은 밴드에 남편 대신 고맙다는 장문의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목공이 마음의 상처 뿐 아니라 몸의 상처도 잊게 해준 중요한 사례였다.

박정길씨는 완성된 작품은 한 번도 팔아본 적이 없다취미로 목공을 시작했고 죽을 때까지 취미로만 할 것이라고 전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뜻이다. 목공을 체험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도 재료비 외에 수강료를 거의 받지 않는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원목을 즐기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제가 선산도 옥천읍 수북리이고, 옥천이 알게 모르게 정이 많이 드네요. 나중에는 가족들까지 다 이사해서 옥천에 뿌리내리며 살 겁니다. 함께하는 초보목공 밴드에 가입해도 되고 안해도 목공 배우고 싶으신 분 언제든 놀러오셔요. 아는 만큼 일러드리겠습니다. 목공으로 좋은 인연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완성된 원목 샤프.
완성된 원목 샤프.

 

옥천읍 교동리에서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옥천목공장 대표이자 네이버 밴드 ‘함께하는 초보 목공’ 공동리더인 박정길씨.
옥천읍 교동리에서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옥천목공장 대표이자 네이버 밴드 ‘함께하는 초보 목공’ 공동리더인 박정길씨.
옥천목공방을 찾은 김진용씨가 원목 샤프펜슬을 만들고 있다.
옥천목공방을 찾은 김진용씨가 원목 샤프펜슬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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