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하은·서연·보경·태풍·혁윤·금녕·정완·건·예슬·소진·희수 학생
"나의 속도, 나의 방향 찾아서 멈추지 않고 걸어갔으면"

■ 작은학교 6학년 차영경 교사 인터뷰

[우리반 짱!] 작은학교 교사 인터뷰를 하면 꼭 물어보는 말이 있다. "작은학교는 어떤 게 좋나요?"

성장과 효율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작은학교'를 찾는 일은 남들과 달리 길을 거꾸로 돌아가는 일이다. 작은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차영경 교사는 고향이 전북 군산이다. 서해초와 군산중, 군산여고, 청주교대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적게는 7개, 많게는 9개 반이 있었다. 한 반 친구들만 해도 30명 이상이었으니 교실이 나름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6개 학급 전교생이 60여명이고, 한 반 학생이 12명이 전부인 건 청산초에 와서 처음 겪었다. 물론 그뿐일까. 차영경 교사가 '베시시' 웃었다.

"처음 왔을 때가 지금도 기억 나요. 청주교대를 나와 충북으로 지원했는데 옥천으로 첫 발령이 났거든요. 처음에는 '옥천이면 대전이 가깝다고 하니까 대전에서 문화생활하면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참 차를 타고 청산에 들어왔는데 밖에 보이는 풍경이... 멀리 다방이 보이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눈물이 한 방울 주르륵 떨어지는 거예요. (아니, 선생님... 마주보고 깔깔 웃었다) 그때만 해도 '여기서 어떻게 2년을 있지' 생각했는데 벌써 4년이 지났네요. 차가 있긴 하지만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구요. 

어떤 게 좋냐구요? '작은학교'요. 작은학교라는 것 자체가 좋아요.

제가 신규였을 때 당시 교무 선생님이 김대중 선생님이라고 계셨어요. 그때 선생님이 제게 해주신 말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셨거든요. 자기반 학생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학생들 하나하나 다 신경 써야 한다고, 다 자기 학생처럼. 

그때는 그 말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어요. 맞죠. 학생 수가 적으니 그게 어려울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작은학교라서 학생 수도 적고 선생님 수도 적고, 그런데 선생님 행정 업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거든요. 한 선생님이 여러가지를 맡아야 해요. 신규니까 더 바쁘기도 하고, 학생들을 살펴볼 틈이 없었어요. 

그런데 조금씩 선생님들이랑 이야기하고, 작은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많지 않다보니까 나이와 관계없이 대화하고 서로서로 챙겨주시거든요.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가르쳐주시는 대로 업무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학생들에게 눈길 한 번 더 주고... 그렇게 학교에 천천히 애정이 생긴 거 같아요. 

작은학교에서는 확실히 관계가 깊어질 수 있어요. 학생들에게 제가 가르친 것보다 더 많은 걸 배웠어요. 예전에는 제가 선생님이니까, 제 기준에 맞지 않으면 학생들이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학생들이 말을 잘 안들으면 화도 내고 소리도 치고요.

그런데 학생들을 자세히, 오래 알고 지내다보니 알겠더라고요. 아이들마다 각자 어쩔 수 없는 자기 환경이 있어요. 어떤 학생에게 쉬운 일이 다른 학생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어요. 당연히 똑같은 결과를 내길 기대할 수 없어요. 각자 자기 나름대로 자기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가령 평소 욕을 많이 하는 학생이 있죠. 그런데 그 학생에게도 자기 나름의 상황이 있고, 고치려고 조심하려고, 자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거거든요. 자기 속도와 방향이 있어요.

학생들을 보면서 저를 보기도 해요. 대학 때까지만 해도 하라는 공부를 하고 남들과 같은 목표점에 도달하면 '이제 해냈다' 생각했는데, '나도 내 속도가 있고 내 방향이 있을 텐데' 퍼뜩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때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책할 때도 있지만요. 그래도 제가 노력해온 과정은 제가 잘 알아요. 그러니 괜찮아요. 학생들도 스스로 자기를 잘 북돋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생들에게 일년 동안 항상 해온 이야기가 있어요. Love Myself(웃음). 우리 스스로, 그리고 서로 많이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차영경 교사)

지난달 18일 청산초등학교 6학년 교실. 이날 학생들은 '용기' '평화' '노력' 등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청산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 왼쪽 앞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박금녕, 박 건, 박정완, 임혁윤, 전태풍, 김희수, 손보경, 차영경(교사), 서하은, 박소진, 오서연, 고예슬, 이은서 학생
청산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 왼쪽 앞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박금녕, 박 건, 박정완, 임혁윤, 전태풍, 김희수, 손보경, 차영경(교사), 서하은, 박소진, 오서연, 고예슬, 이은서 학생

■ 작은학교 6학년 학생들 '무지개 꿈'

학교를 찾아간 지난달 18일 오전, 마침 학생들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꿈'에 대해 발표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문득 이 학생들은 어쩌다 그런 꿈을 가지게 됐을까, 궁금해졌다.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은서 전 화가가 되고 싶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예전에 어떤 그림을 보고 '참 예쁘다, 나도 그리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예쁜 풍경을 그리고 싶어요. 저희 학교 오후 시간이 되면 요새 하늘이 되게 예뻐요. 태권도 가려고 집에서 나오다가 봤는데, 언제 한 번 와보세요. 저는 꼭 그려보고 싶어요.

서하은 제 꿈은 미용사예요. 웨이브 머리가 예뻐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동생 하원이 머리를 잘라준 적이 있었는데... 망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미안해요(웃음). 나중에 제 미용실을 차려서 '미용실이라면 역시 저 미용실이지!' 생각 들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 하원이 머리로 연습하거나 하지는 않을게요.

오서연 의상 디자이너가 꿈이에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요. 사람을 그리기도 하고 종이로 접어서 뭘 만들기도 좋아해요. 의상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연아 선수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꿈을 이루려면 정말정말 열심히 해야겠구나!

손보경 웹툰 작가도 하고 싶고... 꿈이 여러가지에요. 잘 고민해봐야겠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좀 다른 사람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거에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마음껏 열심히 하고 싶어요. 할 수 있겠죠?

전태풍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공격수요! 친구들은 제가 방어를 잘 한다고 자꾸 골대를 시켜요. (옆에서 친구 혁윤이가 '아냐. 네가 느려서 그래' 라고 말했다) 어쨌든 어제도 축구를 했는데, 순식간에 제가 네 골을 넣었거든요. (옆에서 혁윤이가 '그건 우리가 패스를 잘해서 그랬지' 라고 말했다) 어쨌든 전 공격수가 좋아요. 골이 들어갈 때 그 쾌감이 너무 좋아요!

임혁윤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이 요리하는 모습을 봤는데 멋지고 당당해 보였거든요. 계란푸딩이나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 계란찜같은 건 만들 수 있어요. 주말에 아빠는 일 가고 없고 동생들은 놀러 나가고 엄마는 시장 나가고, 그럼 늦잠 자고 일어나서 혼자 요리를 해요. 점심 때쯤 엄마가 와서 같이 요리 해드리면 맛있다고 좋아하세요. 동생들이요? 걔네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걔네 때문에 제가 맨날 혼나요. 시키는 대로 잘 하지도 않고... 그래도 동생들한테 화 안 내려고 노력해요. 쓸모는 없지만... 소중하니까요.

박금녕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제가 배틀 그라운드를 좋아하거든요. 열심히 노력해서 조금씩 실력을 올릴 거예요. 부모님한테 아직 말하지는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정완 축구선수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열심히 해서 월드컵 우승도 하고, 그래서 축구팬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요. 사실 최근 설리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었어요. 슬펐어요. 저는 설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희망이 생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아야지, 노력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박 건 프로게이머요! 게임을 좋아해요. 근데 프로게이머라고 하면 전략 전술이 좋아야 하고 쉽게 포기해도 안 되는데, 저는 왜 이렇게 짜증이 자주 나는지 모르겠어요. 팀원이 잘 못하거나 중간에 나가버리면, '그냥 지고 다시 새로 시작하자'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끝까지 한 번 해볼 수도 있는 건데... 짜증 안 내고 끝까지 잘하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고예슬 빵 만드는 걸 좋아해요. 전에 사촌언니랑 집에 있을 때 브라우니를 만든 적이 있거든요. 동생들이랑 가족들이 먹어보고 맛있다고 칭찬해주니까 정말 뿌듯했거든요. 제빵사가 되고 싶어요. 맛있고 꾸미는 것도 재밌고. 그런데 빵 만들려면 재료가 많이 필요해서, 한 달에 몇 번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건 아쉬워요.

김희수 저는 제가 아직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예전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전에 독감 걸렸을 때 너무 아파서 옥천성모병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정말 친절하게 진료해주셨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요. 알아보니까 의사하려면 공부도 정말 오래 해야 하고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 그런데 맞아요, 지금 조금 참고 열심히 하면... 좀 더 고민해볼게요!

박소진 공부하는 게 좋아요. 선생님이 될 거예요. 친구들한테 모르는 거 알려주는 것도 재밌거든요. 보통 남자애들이 많이 물어보니까 남자애들한테 많이 알려주는데...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물론 고맙다고 안 해도 괜찮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지금 선생님 보면, 정말 잘 가르쳐주시거든요. 사소한 거에도 신경써주시고, 속상한 거 있으면 따로 불러서 상냥하게 이야기해주시고... 저도 우리 선생님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말하다보니 알겠어요. 굳이 절 찾지 않아도 제가 먼저 가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박소진 학생. 소진 학생은 언제나 자신감 있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오서연 학생. 서연 학생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청산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사진제공: 차영경 교사)
청산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사진제공: 차영경 교사)
청산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사진제공: 차영경 교사)
지난달 18일 촬영한 청산초등학교 전경. 점심시간이 끝나고 이제 다시 수업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간간이 축구하던 학생 대여섯명 학생들도 반으로 뛰어 돌아가고, 운동장이 금방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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