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채화
전 옥천군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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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채화 전 옥천군 공무원

존경하는 박찬웅 의장님!

사랑하는 찬웅이 형님!

당신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찌하라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까?  그 길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까?

평소 자상하고 인자한 성품인 당신은 너무나 건강하셨기에 병마소식을 들은 우리는 굳건하게 일어나실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 병원에서 뵈올 적엔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굳은 의지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시고는 다시 못 볼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셨습니까? 당신의 영면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어 글로나마 추모의 심정을 대신하려 합니다.

맏형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포근히 대해주시던 당신의 모습은 빈소에 마련된 영정 앞에서 그 특유의 너털웃음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 같아서 맺히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간 함께 했던 일을 생각해 보면 바쁜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들어간 선술집에서 많은 회포를 나눈 추억이 기억나시나요? 투박한 술잔으로 주거니 받거니 몇 순배 돌고나면 젓가락 장단에 맞춰 같이 불렀던 남일해 씨의 "꿈에 본 내 고향" 노래가 생각납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수몰민으로 한이 서러 불렀던 노래입니다. 누구보다도 고향에 애착을 갖으시고 아끼며 사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정말로 당신에게는 진한 사람 냄새가 녹아 있었습니다.

당신의 78세 생애 속에서 국가와 지역을 위해 노력하신 감회를 잊지 못합니다. 군북면 이평리 반남 박씨 부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 중등교사 자리를 마다하고 지방행정공무원을 선택한 이유는 낙후된 고향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열망이 크셨기 때문입니다. 31년간 공직에 몸담았을 때는 심성이 부드러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는 별칭을 얻으며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탁월한 행정능력을 발휘하셨습니다. 퇴직 후에는 군 의회에 뜻을 두어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장장 12년간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부의장, 의장을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특히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제6대 군 의회 전반기 의장 재임 시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군민을 대변하는 민본의정을 구현하셨습니다. 

당신의 품성 그대로 옥천을 위해 남기신 업적은 우뚝 선 봉우리와 같습니다. 지역의 터주 대감으로, 원로로, 지역을 지키다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너무나 서럽고 그립습니다.

슬하에 5남매는 모두 사회의 당당한 일꾼으로 잘 키워서 자랑스러운 아버지 역할을 하셨습니다. 민우의 손자를 안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가끔 취기에 말씀하셨지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랑하던 천사 같은 아내에게는 믿음직한 남편이었습니다. 당신을 먼저 보내고 애통해하는 가족들은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찾아 본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게서 나던 향기는 아마 오래도록 우리 곁에 배어있을 겁니다. 이제 모든 걱정 다 내려놓으시고 고통과 아픔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그리고 그토록 아끼던 고향의 선영에서 편안히 영면 하시옵소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불러봅니다. 박찬웅 의장님! 찬웅이 형님! 안녕히 잘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2019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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