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북면 국원리 전통주 공방 ‘향술’과 카페 정원 개장
가양주연구소서 전통주 이수한 김기엽 소장, 선산 옥천에 둥지틀다
카페 정원은 이미 개장, 전통주 공방은 가을 쯤 개강예정

 

전통주공방 향술 김기엽 소장이 술을 배울 때 모습.
전통주공방 향술 김기엽 소장이 술을 배울 때 모습.

길게 돌아왔다. 기나긴 인생 여정, 삶의 터널을 순식간에 관통해 온 느낌이다. 삶의 원형질을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는가를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거친 과정들이 ‘지금’을 있게 했다고 그는 믿었다. 본의 아니게 내몰린 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자본이 응축된 곳,  계산적 관계가 중첩된 곳, 바쁜 게 일상이 되어버린 그 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이끌렸던 곳, 부모님이 계신 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정착하고 보니 부모님이 묻힌 선산 묘소와 불과 수직 1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선산이 있는 군북면 환평-추소리 산이 훤히 보이는 국원리, 그는 산이 보이는 곳에 부모님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문안 인사를 드린다. '어머니 아버지 저 출근했어요. 저 퇴근해요’ 뜨는 태양과 지는 석양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인사를 하면 비로소 하루의 처음과 끝이 매듭된다. 

 서울 삶을 접고 내려오기까지 아내를 7년 가량 설득했고, 준비도 단단히 했다.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는 병원 사무장 일을 수십년간 하다가 그는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도 덜도 바라지 말고 한달에 100만원만 벌자’ 욕심을 반쯤 내려놓고 귀촌 준비를 했다. 

 그래도 생계는 꾸려야겠다 싶어 닥치는 대로 배웠다. 일식, 브런치, 커피, 흙집 짓기 등 어디 가서 살아도 먹고 살만한 전문 기술을 배워야 겠다 싶어서 악착같이 학원을 수강하며 배웠다. 그 중 신기원이 열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전통술’이었다. 합성첨가물을 넣지 않고 물과 누룩, 쌀만 들어간 우리 전통술은 단숨에 모든 걱정과 시름을 무장해제 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편안히 만나게 했다. 직접 술을 만들면서 쌓여진 친분은 ‘주도’를 지키면서 홀짝홀짝 마시는 술에 더 돈독해졌다. 배움과 놀이가 교차하고 깊어졌다. 먹고 마시는 것에 장난치지 않는 전통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계급장 다 떼어버리고 사람 본연의 모습으로 만나게 해주는 전통주에 빠지고서는 헤어나올 수 없었다. 술을 만들어서 팔기보다 술을 같이 만들고 나누고 싶었다. 옥천에 없는 아니 충청권에도 보기 드문 전통주 공방을 그가 차린 이유다. 군북면 국원리 진수성찬 식당 옆 옛 37번 국도 옆 도로가에 '카페 정원 전통주 공방’이란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전통주공방 ‘향술’ 김기엽 소장을 만났다. 그는 농림축산식품부 전문인력양성기관인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무려 1년6개월 동안 몰입해 매달려 우리술 지도사 자격증, 우리술제조관리사 자격증, 우리술-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 우리술 증류주 디스틸러 마스터 자격증 등 술과 관련 다수의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였다. 

  

오랜 직업 병원사무장 물리고, 전통주 장인으로

 이미 정형화된 회사원 이미지를 벗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긴장했던 눈빛이 풀어지고 경직됐던 인상이 부드러워졌다. 얼굴에 염화미소같은 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부드러운 모습으로 술병을 들고 취권을 할 것 같은 이미지였다. 급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간판을 걸어놓았지만, 천천히 시작하고 싶었다. 하나둘씩 준비하면서 가을 쯤에 본격적으로 전통주 공방을 열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김기엽(55)소장은 대전 천동이 고향이다. 동명중학교와 충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주대 관광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진로는 전공과는 무관했다. 병원 사무장으로 풀리자, 그 길로 계속 따라갔다. 간호사였던 누나가 의사인 매형과 결혼하면서 대전 문창동에 있는 백제정형외과를 차렸고 병원사무장을 했던 그에게 병원 살림살이를 맡아달라고 요청받으면서 그는 주저없이 옮겼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처가가 있던 서울로 올라갔고 그는 가족과 함께 하고 싶어서 그도 서울로 뒤따라 올라갔다. 거기서도 다른 병원 사무장 일을 계속 해왔다. 93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23년 넘게 병원생활을 했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 중 특히 병원비를 내지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떼어먹는 사람들, 진료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 극단과 극한에서 부딪치면서 내상을 많이 입었던 터였다. 큰 아들은 공군조종사가 됐고, 작은 아들은 약대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키웠다 싶어 감행을 한 것이다.

귀촌을 차근차근 준비하다

 도시와 병원, 그 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일찌감치 결단을 내리고 현실적으로 준비했다. 아내의 동의를 얻었고 무작정 즉흥적인 귀농귀촌보다 차근차근 준비했다. 강남4거리 한솔요리학원에서 일식 창업반을 들으면서 하루 4시간 3개월 코스 실전반을 했다. 광진구에 있는 커피바리스타 학원에 다니면서 2개월 중급반 과정을 이수했다. 브런치를 만드는 학원도 다녔다. 음성에서 흙집 만드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방배동에 있는 가양주연구소를 다니면서 술을 익혔다. 술에 꽂혔다. 그는 18개월 동안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주말없이 18개월 동안 술에 전념했다. 여러가지를 접했지만, 이것이 나의 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사람들하고 어울렁더울렁 어울리면서 술을 배우고 같이 만들어 마시는 과정을 거치면 마치 천국을 걷는 느낌이었다. 

아내도 술을 같이 배웠다. 아내와 같이 양촌 막걸리 카페를 들른 모습. 

부모님과의 이별, 그리고 선산 옥천으로

그 사이 부모님이 하나둘, 저세상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계셨다. 어머님이 3년 전 쯤 세상과 이별했고, 그 후 100일 후에 건강했던 아버지마저 어머니를 따라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생각은 더 굳어졌다. ‘시골로 가자’ 그는  금산, 논산, 양평, 홍천, 평창까지 살 곳을 물색하러 틈 날 때마다 다녔다. 그러다가 옥천이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선산이 있던 곳이기도 했지만, 주변을 돌아볼 때 도로가에 나와있던 급매물이 눈에 딱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딱 맘에 드는 위치, 공간이었다. 살림집과 같이 붙어 있었고 가격도 적정했다. 서둘러 매입했다. 2018년 6월에 단숨에 계약을 했고, 8월29일 역사적인 옥천으로 귀촌을 했다. 전통주공방만 할 생각이었지만, 배운 것도 써먹을 겸 카페 정원을 먼저 열었다.

전통주 공방은 가을에 본격적으로 개강

 그는 오는 가을에 전통주 공방을 본격적으로 열 계획이다. 하루코스로 막걸리 만드는 과정도 준비하고 술을 담은 다음 덧술을 계속 대면 새로운 맛이 나고 도수가 높아지는 이양주, 삼양주, 사양주, 오양주 과정까지 만드는 3개월 과정 코스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술을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 저온저장고 설치도 이미 끝냈고 배우고 만들면서 저장해 놓고 마시면서 즐길 수 있는 곳까지 준비가 다 끝난 것이다. 강의 실습실은 다 완비됐다. 막 걸러낸 막걸리는 술을 덧대면서 5도에서 22도까지 올라간다. 맑게 침전시켜 오양주까지 만들면 이것이 바로 청주다. 청주를 증류하면 안동소주 같은 한국식 소주가 되는 것이다. 이원 양조장 강현준 대표와도 가양주연구소에서 만나 같은 도반으로 친분을 나눈 바 있다. 

 “술은 크게 막걸리, 청주, 증류주로 나뉘는 데요. 여러가지 재료를 섞으면서 복분자주가 되기도 하고, 말린 꽃을 가미한 백화주가 되기도 하죠. 백화주는 대략 열가지 꽃 철쭉, 아카시아 등이 들어가는데 꽃 향이 끝내줍니다. 소나무 순을 넣으면 송순주가 되고요. 누룩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백수환동곡이란 누룩도 있어요. 백수환동곡은 찹쌀가루와 녹두가루를 섞어서 만드는데 그리고 고초균이 많이 있는 짚에서 놓아두면 절로 발효되어 좋은 누룩이 만들어집니다. 이 백수환동곡으로 백수환동주를 만드는데 뜻 그대로 이 술을 마시면 머리 흰 노인이 도로 아이 얼굴로 변한다는 회춘주로 맛이 기가 막히죠.”

  “이화주는 궁중의 궁녀들이 표시나지 않게 훌쩍훌쩍 숟가락으로 떠먹었던 술인데요. 걸쭉하고 맛이 기가 막힙니다. 고려시대부터 전해내려 온 술인데 술빛깔이 희고 된 죽과 같아 떠먹기도 하고 한여름에 갈증이 나면 찬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는데 다른 술과 달리 멥쌀로 누룩을 만드는데다 멥쌀가루로 구멍떡이나 설기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데 도수는 낮지만 유기산이 풍부하고 감칠맛이 뛰어나 고급탁주로 분류되기도 하죠”

 술과 관련한 이야기는 즉석에서 역사와 유래, 만드는 방법까지 즉석에서 풀어낸다. 

 수제 버거와 수제청 음료가 일품인 카페정원

 “맨 처음엔 양조장을 할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욕심을 버렸죠. 더 이상 일벌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술 배우고 싶은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고 가르쳐주면서 친분을 쌓는 공방을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요즘 다육이도 매장에 ‘킵'을 해놓더라구요. 만든 술을 저온저장고에 ‘킵’ 해놓고 올 때마다 한잔씩 꺼내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건 또 다른 천국 아니겠어요. 우리가 만드는 술은 첨가물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그대로 자연이에요. 그래서 숙취가 없어요. 숙취라는 것이 아스파탐같은 화학첨가물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도 하는 거거든요.”

 그는 카페 정원의 바리스타도 됐다가 전통술 강사로도 뛰는 이중 생활을 한다. 카페는 카페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그가 배운 것을 십분 살려 신선한 야채샐러드와 수제 햄버거 등은 인기 메뉴이다. 그리고 청은 다 직접 담근다. 시럽을 거의 넣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음료를 만드는 것이 이 카페의 정석이다. 

 “음식도 미원맛을 금방 알잖아요. 막걸리도 아스파탐 들어간 지 금방 알구요. 음료수에 시럽 들어간 것도 금방 알아요. 달달하긴 한데 개운치 않은 맛이 합성첨가물 맛이거든요. 그래서 시럽을 다 뺐어요. 자연 맛을 살리려구요.”

조급함 없이 천천히 스며들터

 카페 인테리어도 직접 손수 천천히 하고 있는 그는 아직 조급하지 않다. 아둥바둥 살려고 내려온 게 아니기 때문에 여유롭게 준비하고 있다. 아직 전통주공방은 간판만 붙여놓고 개강도 하지 않았고 카페 정원에는 사실 손님이 없다. 하루 매출 5만원이면 나름 손님이 많았다고 ‘자평'하면서 만족해한다. “서두르지 않으려구요. 천천히 알려지겠지요. 지금도 술 언제 만드냐고 찾아오는 사람 꽤 있어요.”

 그는 옥천이 너무 맘에 든다고 했다. “옥천에 사는 것이 정말 좋아요. 지척에 논과 밭, 산이 있고 뭔가 대전이나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어떤 여유로움, 편안함, 인심과 정이 있어요. 그리고 읍내 나가면 편의시설도 대부분 잘 갖춰져 있구요.” 옥천에서 여유로움을 선물 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선물 받은 것을 그는 앞으로 술을 배울 도반들과 함께 나눌 예정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주소 : 군북면 국원1길 1
전화 : 043-731-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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