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수 (청소년 기자단, 안내면 도율리)

어젯 밤 늦게까지 놀았던 탓인지, 12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일어나자 마자 숙소 바로 앞 카페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따 6시에 촌촌킴에서 만나자." 달랏에서 만난 윤정이 누나였다. 지수 누나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혜림이 누나와 윤정이 누나. 이렇게 셋이서 촌촌킴이라는 베트남 가정식 식당에서 만났다. 식사를 하며 한참을 떠들다 보니 "우리 너무 많이 시킨거 아니야?" 라며 다 못 먹을까 걱정했던 음식들은 이미 사라져있었다. 소화도 시킬 겸 나트랑 시내를 돌아다녔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랍스터와 꼬치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 저거 사들고 해변으로 갈까?" 

한 마리에 약 5천원. 까보면 새우 세 마리 정도의 살 밖에 나오지 않는다. 

마땅한 자리도 없고 불빛도 희미해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군다나 윤정이 누나와 혜림이 누나는 오늘 처음 봤다. 하지만 둘의 직업이 비슷해서인지 끊임없이 수다가 이어졌고, 6시에 만났는데 어느덧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변을 산책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어딘가로 사라졌고,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내 뱉던 시끄러운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이만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결국 마지막 날이 오고야 말았다. 

바리바리 싸들고 왔던 비상약들을 혜림이 누나에게 줬고, 나트랑의 사진 명소 탑바포나가르참탑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덤시장에서 한국에 싸들고 갈 닭 육포와 냉장고 자석을 사다보니(닭 육포는 반입 금지 물품이여서 세관에서 압수되었다.), 어느덧 비행시간이 코 앞이었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발마사지를 받았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의 베트남 여행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해준 모든 분들에게 연락을 했다. "덕분에 여행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나만의 감성 속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이 2시간 30분이나 연착 됐다. 

역시 마지막까지 곱게 보내 주지 않는다. "밤 비행이여서 푹 잘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한건 나의 착각이었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때문에 잠을 설쳤다. 겨우 잠이 들었을 무렵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마치 누군가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은 장면이었다. 베트남에서의 좋지 못했던 일들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하며 나만의 나침반이 생겼다. "내가 행복한 일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는. "여행" 십대의 마지막, 19살. 이 한 해를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말이다. "여행"이 내게 삶을 "여행"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두 번의 배낭여행. 나름 성공적으로 보낸 마지막 학년. "여행"이 내게 알려준 것들을 잊지 않고 2020년 2월 24일에 가는 군대도, 후에 있을 그 어떤 일들도 나만의 방법으로 "여행"해야지.

어쩌면 지난 5년간의 청소년 기자단 활동을 마무리하는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6월21일부터 12월 13일까지 여러분들을 찾아뵈었던, 시베리아 여행기 7편과 베트남 여행기 10편은 여기까지 입니다. 글을 연재 하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미흡한 점도 많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진심을 다해 쓴 제 이야기를 긴 시간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탑바포나가르참탑에서 하는 공연
탑바포나가르참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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