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립대 기계자동차과 장영헌 학생 인터뷰

편집자주_ 본래 자기 나이보다 더 빨리 나이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일적으로 프로페셔널하다는 말이 아니다. 내 것을 챙기기보다 타인에게 주는 게 익숙하고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챙기는 게 익숙하다는 이야기다.

스물여섯 영헌(청주시,충북도립대 기계자동차과)씨, 영헌씨 이야기를 듣다보면 '스물여섯이 맞나' 싶다.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때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찾아왔다. 집안 형편이 썩 좋지 않았고 두 살 터울로 누나 한 명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이지', '내가 더 잘 해야지' 생각했다.

'다음주 첫 출근이라고 들었어요. 이번주 어떻게 보낼 계획이에요?', '이번주 토요일까지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가 있어요. 주말에는 풀타임으로 일하구요.', '첫 출근인데 하루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요?', '고등학교 때는 더했는데요, 뭘.', '고등학교 때는 뭘 했는데요?', '그때 아르바이트는 정말 힘들었어요. 배달하다가 사고 난 적도 있었거든요.', '부모님이 많이 속상해했겠어요.', '부모님은 지금도 제가 알바 때문에 다쳤는지 몰라요. 고등학교라고 해도 돈 들어갈 일이 많잖아요. 제 때는 무상교육이 아니었으니까. 당시 부모님은 보태줄 형편이 안 됐고, 빨리 자립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원망 들 때는 없었어요?', '...그냥 너무너무 힘들다는 생각은 많이 했어요. 때로 보탬이 되면 뿌듯하기도 하고요(웃음).' 

영헌씨의 말투는 생각보다 유쾌하다.

"장학금을 보장받고 싶어서 도립대에 입학했는데 막상 군대 다녀와서 1학년 성적을 보니까 이건 너무 아닌 거예요(웃음). 결국 교수님이랑 상담해서 재입학하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니 국가장학금을 1년밖에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학교 장학금이라도 받아야지, 하고 과대표도 하고 학회장도 했어요. 학교 복지 프로그램 이수하고 공모전 나가고, 학교 축제 때는 복면가왕에도 나갔는데...(웃음) 모아놓고 보니 100만원이 넘어서 긴요하게 잘 썼죠."

영헌씨는 16일부터 CJ 제일제당 진천 송도리 신공장에 출근한다. 전문학사 공채로 공무직 기계부분에 합격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간 참 고생이 많았다. '아, 정말 힘들다' 생각한 나날들이 많았는데, 그렇지만 때로 가족을 책임질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앞으로도 가족들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영헌씨는 오늘 마음이 뿌듯하다.

도립대 CPU센터 2층에서 만난 기계자동차과 장영헌 학생. 10일 촬영

 [도립대 사람들] 시작은 친구네 아버지가 운영하는 마트였다. 고등학교 1학년, 매장과 창고를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을 워낙 똑부러지게 잘하니 친구 아버지 지인이 자신의 청과물 시장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목장갑 끼고 과일을 팔기 시작했다. 과일 배달도 맡게 됐고, 그때부터 오토바이를 탔다. 또 주의 깊게 본 인근 가게 주인들이 영헌씨를 불러 배달 일을 부탁했다. 치킨을 배달하고 족발을 배달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고가 났다.

"겨울이었어요. 이제 슬슬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을 때요. 아스팔트는 어두워지면 길이 어떤지 전혀 안 보이거든요. 코너를 도는데 휙 바퀴가 헛돌았어요. 그때 무슨 생각이 났냐고요? 무슨 생각이겠어요. 아파 죽겠더라고요(웃음)... 팔이 시큰시큰하고 죽겠는데, 아, 그 생각은 났어요. 치킨이 멀쩡하나? 빨리 배달해야 하는데. 한손으로 운전해서 갔어요. 그리고 돌아와서 '사장님 저 병원 가봐야겠는데요', 이야기했죠. 뼈에 금이 갔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이런 생각 들었죠. '아, 이제 어떡하지. 무슨 알바하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겠다 생각했다. 어찌 되든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야간자율학습에 꼬박꼬박 들어갔다. 습관 붙지 않은 공부였지만 언제나 성실했다. 공부머리는 있었나보다. 국립대에 붙었다. 그런데 장학생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충북도립대 기계자동차과 입학을 결정했다. 영헌씨는 '안정적인 것'을 생각했다. 

"과는 기계자동차과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부 못하면 저희끼리 장난으로 '너 김치공장 가는 거 아니냐, 사료공장 가는 거 아니냐' 이야기했거든요.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김치공장이든 사료공장이든 어딜 가든 기계가 있잖아요. 기계 없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기계자동차과에 가면 일할 수 있는 범위가 정말 넓겠다, 생각했어요."

대학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대학 생활을 즐겼을까. 영헌씨가 웃는다.

"1년 정도는 즐긴 거 같은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는 다시 바짝 일했어요. 생활비가 있어야죠. 역시 집에 보태주고 싶은 것도 있고요. 입학하고 3월부터 다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친구들이 돈에 미쳤냐고 하는데, 그냥 현실이죠. 학교 다닐 때는 주말을 풀타임으로 일하고, 방학 때면 법정근로시간 주 46시간 꽉 채워 일했어요. 학교 공부도 쉽지는 않죠, 물론. 그래도 주말에는 오전 11시 출근해서 중간 밥 시간 1시간 제외하고 9시 퇴근했어요."

가게를 마감하고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면 오후 11시30분. 침대에 누워 정말 꼼짝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주할 수는 없었다.

"잘 준비해서 꼭 정규직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르바이트생은 물론이고 다른 정규직만큼 충분히 일 잘 해내는데 돈은 덜 받잖아요. 제 직급을 가지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해냈구나(웃음). 그래서 지금 정말 홀가분해요. 그런데 또 우습기도 하죠. 제가 일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줄어들 텐데 돈을 더 많이 벌게 될 거라는 사실이요. 어딜 가나 열심히 했는데. 참 이상해요."

영헌씨 꿈은 아기자기하다. 연애도 하고 혼자 해외여행도 가보는 것, 또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같이 시간을 나누는 것. 

"제일 아쉬웠던 건 가족들이었어요. 학교 다니고 또 일하느라 집에 와도 이야기할 틈이 없어서요. 물질적으로 보태주는 것도 좋고 뿌듯하지만, 역시 아쉽죠. 첫째 누나가 아들을 낳았어요. 얘랑 많이 놀아주고 싶어요. 첫 조카라 가족들 모두 정말 아끼고 저 말고도 놀아줄 사람들 많지만... 그래도요(웃음)."

본래 자기 나이보다 더 빨리 나이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 내 것을 챙기기보다 타인에게 주는 게 익숙하고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챙기는 게 익숙한 사람들. 영헌씨를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도립대 앞 정자는 학교에서 영헌씨가 좋아하는 공간 중 한 곳이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 하니 못내 어색해져서 차마 카메라는 바라보지 못하고...
'이러면 가방 모델같지 않아요?' 장난치며 웃었다
기계자동차과 실습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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