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제일 좋은 날은 바로 오늘!

 

■ 내 인생은 나의 것.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나는 심심할 새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바지런하고 머리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나는 빈둥빈둥 누워서 시간만 때우면서 지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황금빛 노년기를 운동과 봉사로 꽈악 채워 넣었다. 나는 옥천복지관의 장수 우등학생이다. 나는 진작부터 몸을 돌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아주 일찍 ! 65세 때부터 몸 짱짱 다리 튼튼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라인댄스와 스포츠댄스 그리고 장수 춤 이 세 과목을 10년째 수강하고 있다.
운동뿐인가? 기예에도 소질이 있어서 옥천복지관 풍물반에서 장구를 20년 이상 배웠다. 지난 11월 말에 우리 옥천복지관 풍물반이 청주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받았다. 단체사진 한가운데에 고운 얼굴에 한가득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장구를 두드리는 이가 바로 나다. 나는 금구4리에 새로 지은 단층 슬라브집으로 이사와서 터를 잡은 지 35년째인데, 작년부터 금구4리 경로당에도 일주일에 3번 여러 강사들이 와서 체조와 기공운동을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누군가! 운동 마니아답게 그 수업도 꼬박꼬박 참석해서 즐겁게 몸을 풀고 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자니 상투 튼 아버지 얼굴이 떠올라

 

■ 나는 뼈대 있는 가문의 규수
나는 영동 양산 원당리에서 태어났지. 신분이 높은 양반집이라서 백씨(큰아버지), 중씨(작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모두 상투를 틀으셨어. 세 형제가 부모에게 잘했다고 나라에서 효자상을 주었다네. 지금도 원당리 동네 앞에 전각이 있는데 그 옆에 삼 형제 효자비가 서 있어. 우리가 덕수 이씨 이순신 장군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친정아버지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지. 친정엄마는 경주 최씨로 내가 17세 때 그만 57세 나이로 별세하셨어. 친정엄마는 6남매를 낳았는데 그 시절 홍역으로 다 죽고 맏언니와 종말이 막내인 나만 살았어. 해방둥이인 나는 부모님이 불면 날아갈까 참말로 애지중지 키우셨지. 나는 양산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때 한 동네에서 나와 남자애 둘만 초등학교에 들어갔어. 나는 중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여자는 배우면 안 된다고 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 학교 공부를 하고 싶어서 7살에 입학 통지서도 없이 학교에 들어갔고 12살에 졸업했는데, 집에서 아버지에게 천자문 동문선습 정도만 떼면서 양반규수 수업을 했었지. 
내 나이 스무 살에 영동출신인 5남매 중 장남과 중매로 결혼했어. 남편은 철도공무원 근무하고 있다가 군대에 입대했는데 휴가를 나와서 나와 결혼식을 했어. 시부모님이 양반가 며느리를 잘 봤다고 나를 귀하게 대접하시는 게 역력했어. 신랑은 시댁 어른들이 나에게 쩔쩔매신다고 나를 ‘높은 양반, 높은 양반’하고 농으로 불렀지. 

 

■ 인생이 다 그렇지, 돌아보면 추억이라네.
우리는 결혼하고 3남 1녀를 보았어. 남편은 부역장으로 (차장 중간역, 조역이라 불렸다.)경부선 정차역인 옥천 영동 황간에서만 근무하다가 결국 옥천에서 자리 잡았지. 당시에는 집에서 시키면 상대방을 잘 몰라도 결혼하고 첫애 낳고 살림 하나하나 고르고 집 장만도 하고 할 때가 돌이켜보면 행복이었어. 가장 슬펐을 때는 가장이 떠났을 때였지. 믿고 의지하고 도란도란 살았는데, 병이 나서 서울병원에서 한 달 입원하다 대전에서 돌아가셨지. 지금은 내 앞에 있는 자식들이 잘 살아가는 모습 보는 게 나의 희망이자 기쁨이지. 
종가집이어서 옛날부터 수도 없이 제사를 지내왔지. 4대 봉사로 11번이었는데 이제 줄여서 그나마 8번 지내고 있지. 나는 평생 제사만 지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부모 제사 때 아랫동서들이 도와주기도 하네. 조카며느리들이 걸거친다고 작은 어머니들 편안히 계시라고 부엌에서 내보내는 걸 보기도 하네. 주말 닿거나 명절 때는 내 며느리들이 도와주고 있지. 이제 세대교체를 하여야 할 것 같은데, 이 제사준비의 고역을 어떻게 감당할지 마음이 아리네. 내 딸내미는 평생에 걸친 나의 이 제사 노동을 한 번에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고 솔깃한 제안을 했어. 바로 교회 나가라고 하도 닦달을 해서 쫄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내가 그래도 뼈대 있는 양반규수로서 제사를 어떻게 해결할지 두고 보세요.

■ 노년의 즐거움, 옥천 시니어클럽 자랑
동네 친구인 김숙희와 둘이서 똑같이 시니어 클럽 회원이 되었다.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고 나서 한 달에 10번 30시간을 시간 분배를 해서 김숙희와 둘이 짝이 되어 노인 돌봄 서비스를 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2년 반이나 되었다. 우리도 시니어이지만 우리보다 살짝 더 나이 드신 80세~91세 노인들을 도와드리는 일이다. 하는 일은 아주 다양한데 독거노인을 방문해서 말벗해주고,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은 시니어클럽에서 정해준 날짜에 방문해서 ‘수혜자’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해서 도와드린다. 
김숙희와 나는 ‘참여자’라고 불리는데 둘이 활동하는 이유는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갑자기 쓰러지는 응급상황이나 혼자 다루기 힘든 경우 등을 대비해서라고 한다. 인근에 걸어 다니는 곳에서 3시간씩 1주일에 3번 고정적으로 활동하면 나라에서 27만 원을 수고비라고 준다. 시니어 클럽 관리 선생님은 나더러 “그 돈으로 모아서 애들 주지 말고 몸에 좋은 것 사 먹으라고 코치하는데 잘 안된다. 가끔 맛있는 것도 사 먹기도 하고 손자들 오면 용돈도 주고 하면 하늘을 날 것같이 기분이 좋다.
“멀리 있는 딸자식보다 우리가 더 낫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럴 때마다 많은 보람을 느낀다. 우리가 하는 일을 자세히 말하자면 독거 노인들에게 말동무를 해드리는 것이다. 은행이나 주민센터에 모시고 가서 눈이 어둡거나 글을 못 읽어서 하지 못하는 송금이라든지 돈 찾는 일이라든지 공과금 납부 같은 것을 같이 처리해드린다. 혼자 사시는 85세 할머니가 당이 떨어져서 현관에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병원에 모셔다 드려서 위급한 순간을 넘기도록 하였을 때 정말 다행이면서도 나의 일에 자부심을 많이 느꼈다.

 

■ 금구4리 경로당 자랑
2019년에 군에서 동네 단층 슬라브 집을 한 채 세를 얻어서 회관이 만들어졌다. 공간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집에서는 기름 값이 무서워서 겹겹이 껴입고 사는 분들이 회관에서는 기름 값 걱정 없이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고, 믹스 커피도 마음껏 타서 먹을 수 있으니 천국 같다고들 말하신다. 재잘재잘 소녀처럼 떠들고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다. 할머니 회원들이 20명 고정 멤버인데 대부분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아서 적적함을 달래기에 너무 좋다. 노년의 하루하루를 일하는 보람 친구들과 즐기는 기쁨 다 가질 수 있어서 난 정말 행복한 시니어다.

작가 이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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