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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 아래 구부러진 나무가 지붕을 지탱하는 대들보다

몇 년 전 후배들과 서산의 개심사를 찾아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첫 번 째 시도는 가축전염병 때문에 생긴 바리케이트 때문에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두 번 째는 일정 조율 실패로 못가고 세 번째 3년 만에 개심사의 마당을 밟았습니다. 그곳에서 개심사의 구부러진 대들보를 봤습니다. 몇 년 이후 화엄사 각황전에서 훨씬 더 큰 기둥을 봤습니다. 직선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개심사의 구부러진 대들보는 뜨거운 상징입니다. 건물 앞에서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구부러진 것들이 허용되지 않고 구부러진 모든 것들은 착하게 다림질하는 시대에 휘어진 기둥은 제게는 강력한 태클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자연계의 나무는 구부러지면 구부러질수록 값어치가 올라갑니다.

약간 빈 구석이 보이는 이 사진의 주인공은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자켓 에 나오는 레너드입니다 .

한 박자 느린 친구라 해병대 교관 하트만과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이 친구가 한번은 도넛을 사물함에 감춰 넣다가 교관한테 들키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을 겪기도 합니다. 약간 눈이 쳐져 있고 앙 다물어지지 못하는 입은 배시시 웃고 있는 것 같아 교관으로부터 웃지 말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살인기계 '를 만드는 군대엔 안 맞는 친구죠. 한마디로 고문관입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고문관에 찍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적이 있을 겁니다. 훈련소 시절 행군을 할 때면 손과 발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결국엔 교정되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낙천적인 친구라 고문관의 낙인을 잘 견뎌냈습니다.

교정은 비껴나가거나 반듯하지 못한 사물이나 마음의 상태를 바로 잡는 것을 말하죠. 저는 이런 교정을 끔찍하게 당한 적이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매번 단증을 위해 시험을 보는데 저도 단증이 없어 늘 태권 단증을 위해 휴일 가릴 것 없이 연습을 했습니다. 발차기를 위해서는 다리가 일자로 되어야 합니다. 마치 체조 선수처럼, 수요일 외부행사를 하고 온 저녁 부대로 복귀했는데 부대원들이 저를 보더니 다짜고짜 연병장으로 나가자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제 양쪽 어깨에 달라붙어 아래쪽으로 누르고 제 다리는 땅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통 다리가 벌어지지 않는 다리를 생다리라고 하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그 다음 날 저는 온 종일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레나드도 혹독한 해병대 훈련에서 늘 낙오 합니다 그 때문에 부대원은 단체 기합을 받습니다. 참다못한 동료들이 어느 늦은 밤 레너드를 모포로 덮어 씌우고 집단구타를 합니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였겠죠. 그 이후 그 친구는 누구보다 강한 친구로 교정 되었습니다. 무표정한 '살인기계 '로 변합니다. 친구들의 배신이 그 친구를 강하게 키운 셈이죠. 하지만 퇴소를 앞둔 전 날 교관을 죽이면서 끔찍한 마침표를 찍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다른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거리의 불한당이었던 이들은 교도소로 가게 되고 그중 알렉스는 내무부 장관이 추진하는 범죄자 갱생 프로젝트 '루도비코 프로그램'에 자원합니다. 루도비코 프로그램은 실험대상자에게 약물과 영상을 통한 세뇌요법으로 폭력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 반응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세상에 나간 알렉스는 부당한 처사에도 반항하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간만 바뀌었을 뿐이지 사회생활도 군대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 장교 출신들이 환영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낙오를 허용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일 겁니다. 군사문화의 흔적은 조금씩 지워지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지우고 조직의 방향에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웹하드 양진호 사장 혹은 대한항공의 갑질 테러에 노출 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휘어나간다는 건 엄두를 못 냅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는 이런 어른의 습속을 반복합니다. 절대로 빗나 가면 안되는 숨막히는 교육의 현장에서 혹은 그 연장 선상인 사회 속에서 개심사의 구부러진 대들보는 허리띠를 느슨하게 하고 숨통을 트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엔 쓸모없는 건 없다고 말합니다.

풀 메탈 자켓 (1987, Full Metal Jacket)

감독:스탠리 큐브릭

주연: 매튜 모딘, 아담 볼드윈, 빈센트 도노프리오

완벽주의자 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반전(反戰) 영화의 걸작.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부는 평범한 청년들이 해병대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군인이 된 병사들이 베트남전쟁에 투입돼 전쟁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풀 메탈자켓은 탄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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