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뭉클한 이야기, 부활원에서의 120시간
가슴 뭉클한 이야기, 부활원에서의 120시간
  • 조서연
  • 승인 2019.11.27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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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실습생 6명의 행복한 간증
복지사 자격증 취득 위한 실습, 그 속에서 찾은 행복
“너무나 순수한, 마치 천사 같은 사람들이에요”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며

[편집자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필수조건, 현장실습 120시간. 누군가에게는 큰 걸림돌일 수도, 적당히 넘어가며 때우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옥천닷컴에서는 그 시간을 ‘인생에 큰 축복이고 행복이었다’고 회상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바로 부활원에서 120시간의 실습을 마친 이선규씨, 조용순씨, 안상숙씨, 홍유진씨, 박승옥씨, 오선옥씨입니다. 행복했던 추억, 변화하는 이야기들을 함께 곱씹다가 말고 “우리 무슨 간증 하는 것 같애” 하며 웃습니다. “근데 그만큼 좋았잖아?” “맞아, 맞아.”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즐거웠던 건 당연하고요. 신문에 이런 훈훈한 이야기가 나가면 아무래도 외부에서 보는 시선들, 편견들이 좀 바뀌지 않을까 해요. 저도 부활원 잘 몰랐거든요. 정신장애인들이 있다는 것만 아니까 편견이나 선입견이 많았어요. 그런데 우리 지역에 이런 사람들이 있고,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고, 사실은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사회가 좀더 훈훈해지지 않을까요.”

이선규(67, 군서면 오동리)씨.
이선규(67, 군서면 오동리)씨.
조용순(49, 옥천읍 문정리)씨와 오선옥(47, 옥천읍 금구리)씨.
조용순(49, 옥천읍 문정리)씨와 오선옥(47, 옥천읍 금구리)씨.

 

부활원에 어떻게 오셨나요

이선규 : 어머니가 98세신데, 올 3월에 대전의 한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셨어요. 그런데 상담을 해 보니, 노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람을 수익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 내가 자격증을 따서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로 들어가야겠다 한 거죠. 수월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힘들어도 제대로, 새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FM대로 잘 한다는 부활원에 왔습니다. 정말 잘 왔어요. 계획대로 잘 해주시고, 독려도 많이 해주셨죠. 아주 잘 한 선택이에요. 많은 밑거름이 됐어요.

조용순 : 주변에 어려운 친구가 있어요. 희귀성 난치질환이라고 하는데 돈이 없어 치료도 못 하고. 뭐라도 돕고 싶어서 사회복지기관을 들락거렸는데, 뭘 알아야 돕겠더라구요. 그래서 자격증에 도전하게 됐죠. 하면서 ‘내가 뭘 하는 거지’ 싶어서 두려운 마음도 있었죠. 아무래도 정신질환자니까 편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딱 3일 지나니까 가족이 되더라고요. 지금도 와서 보니 울컥해요.

안상숙 : 실습할 때가 돼서, 주변에서 편하게 하려면 어디로 가고, FM대로 하려면 부활원으로 가라고 조언을 해주더라구요. 저는 자격증만 딸 게 아니라 제대로 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부활원에 왔구요. 부활원에 산책봉사를 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낯설거나 걱정이 되진 않았어요. 처음엔 당연히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부장님이나 생활인 분들 등 모두 편하게 대해주셔서 금방이었어요.

박승옥 : 손녀딸에게 지적장애가 있어요. 할머니로서 이 애를 위해 뭘 해야 하지 않나, 해서 자격증을 따게 됐습니다. 부활원은 잘 몰랐는데 봉사를 다녀온 지인이 너무 좋았다며 추천을 해주어서 오게 됐어요. 너무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홍유진 : 전에 YWC에서 봉사를 하고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소외된 분들, 쉼터 분들을 많이 만나고 상담하고, 마음을 듣고 나니 더 관심이 가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공부를 하게 된 거죠. 실습기관 추천도 YWC에서 해주셨어요. 여기서는 정말 다른 곳에서보다 엄청난 것을 많이 배울 거라고요. 부활원의 존재도 몰랐는데, 공부를 안 했다면 기회가 없었을 테니 참 감사한 일이죠.

오선옥 : 평생학습원에서 웃음치료지도사 강의를 들었는데, 수강생 거의 다 사회복지 쪽 일을 하시는 분들이었거든요. 각자 자기 분야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되게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공부해보자, 하고 시작했죠. 부활원은 사실 어딘지도 몰랐고 영생원을 지원했는데, 실습담당자가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부활원 연결할게요’ 그렇게 오게 됐어요(웃음). 모르는 곳이라 무섭고, 겁을 잔뜩 먹고 왔는데, 부장님도 편하게 해주시고 같이 하는 선생님들도 너무 좋아서 금방 적응했죠.

부활원에서의 '부침개 데이' 모습이다.
부활원에서의 '부침개 데이' 모습이다.

■부활원에서 만난 행복

안상숙 : 처음에 상담을 해야 하는데 덜컥 겁이 났어요. 생활인들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사생활을 물어봐도 되는 건가 싶어서요. 매번 실습생이 올 때마다 똑같은 얘기 하기도 힘들 거 같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걱정했죠. 그런데 다들 되게 편하게 대해 주셨어요.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도 해주시고, 그러면 공감하고, 애착이 생기고, 그러니 마음이 열리고 정이 들었죠.

홍유진 : 저는 매사 부정적이고 투정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실습을 하면서 배울 것은 어린 아기한테든, 조현병 환자한테든 어디에나 있다는 걸 항상 생각하게 됐어요. 저희가 생활인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같이 생활하는 것이다 보니, 그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배우게 됐거든요. 겸손한 사람이 되고,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됐어요. 큰 행복을 많이 찾았죠.

박승옥 : 부활원에서의 기억들은 생에 잊지 못할 일들이 됐어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죠. 서로 돕는 모습, 부장님이 사람사람 챙기는 모습... 긍정적인 마인드를 많이 배웠어요. 원래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거든요. 손녀를 보면서도 ‘얠 어째야 하나...’ 했는데 이제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지요. 너무 감사해요.

조용순 : 저희가 ‘부침개 데이’를 한 적이 있어요. 조리실에서 해주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아무래도 부침개는 갓 구워서 먹어야 하니까(웃음). 각자 집에서 재료를 준비해왔죠. 그런데 하필 딱 그날 비가 오는 거예요! 생활인 분들이 정말 너무 좋아하셨죠. 같이 굽기도 하고, 부치면서 같이 먹고... 그 뒤로 며칠 내내 손을 꼭 붙잡고 너무 좋았다고 얘기하셨어요. 또 하면 좋겠다고 해서 한 번 더 하기도 했고요(웃음). 실습 끝날 때까지 그 얘기를 하셨어요. 이런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학교에 가서 ppt를 만들어서 브리핑했는데, 교수님이 너무 좋은 곳이라며 협약을 맺고 싶다시지 뭐예요?(웃음)

오선옥 : 생활인들이 자꾸 생각나서 요전 어울마당 큰잔치에도 요구르트 사들고 왔었어요(웃음). 이전에 옥천신문에서 부활원에서 뽕핫도그 만들어 먹은 이야기도 취재했죠? 그때도 아들을 데리고 왔어요. 처음엔 쭈뼛거리더니, 다녀오고 나서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가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되게 보람 있었다고요.

조용순 : 저도 그 때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마지막 그 모습이 너무 따뜻했어요. 처음엔 도망다니던 머시매들이(웃음) 마지막에는 안아주고. 좋은 일들은 전염이 되는 것 같아요. 닫힌 마음도 활짝 열리잖아요. 우리 미래가 이 아이들을 통해서 좀더 따뜻하고, 밝게 변하면 좋겠어요.

지난달 적십자 마중물봉사회의 '부활원과 함께하는 뽕핫도그 만들기' 행사 모습이다.
지난달 적십자 마중물봉사회의 '부활원과 함께하는 뽕핫도그 만들기' 행사 모습이다.
지난달 적십자 마중물봉사회의 '부활원과 함께하는 뽕핫도그 만들기' 행사 모습이다.
홍유진(52, 대전 유성구)씨와 박승옥(55, 옥천읍 신기리)씨.
홍유진(52, 대전 유성구)씨와 박승옥(55, 옥천읍 신기리)씨.

■부활원 사람들

조용순 : 다들 정말 순수하세요. 항상 입구에 앉아서 ‘커피 줘’ 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좀 정이 드니 손을 잡아끌면서 ‘나 저거(간식) 하나만 더 줘...’ 하시는 거예요(웃음). 부장님 몰래 슬쩍 드렸죠.

오명숙 부장 : 몰래 한다 해도 다 알아요. 우리도 그렇게 하나씩 더 주고 하는 걸(웃음). 다 알고 다 주지만, 그 분들 입장에서는 ‘나만 더 주네. 내가 사랑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마음에 남아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여유가 생기죠.

이선규 : 그렇다 보니 생활인 분들도 서로서로 도와요. 눈이 안 보이는 분도 계신데, 어느 한 분이 늘 옆에서 손 꼭 붙잡고 함께 다니세요. 밥 먹을 때도, 어딜 갈 때도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있지요. 우리 살아가는 사회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용순 : 또 얼마나 순수하시냐면, 저랑 같이 실습한 네 분 중에 정말 예쁜 분 별명이 ‘진’이었어요. 저는 탬버린을 열심히 흔들어서 ‘가수’, 여기 오선옥 선생님은 ‘미’구요. 너무 순수한 사람들이다 보니 한번은 ‘제가 진 아니에요?’ 하는 농담에 눈을 굴리면서 대답을 못 하는 거예요(웃음).

오선옥 : 그런데 그게 기분이 하나도 안 나쁘고, 기억해주고 얘기해주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조용순 : 봉사 올 때도요. 기쁨으로 하는 거잖아요. 빨간 날에 가족도 뒤로 하고 왔는데, 표정을 보면 너무나 해맑고 순수하고... 덕분에 힘든 줄을 몰라요.

오명숙 부장 : 천사들이에요. 우린 못 가도 저 분들은 다 하늘나라 갈 거야.

안상숙(46, 옥천읍 문정리)씨.
안상숙(46, 옥천읍 문정리)씨.

■부활원에서부터 온 변화

홍유진 : 처음 왔을 때부터 공기도, 환경도 왠지 낯설지가 않았어요. 같이 캠프에 가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놀고, 재미있게 지내고 왔더니 소속감까지 느끼게 됐어요. 외톨이가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가족 같은 느낌. 작년에 얻은 큰 축복이죠. 매일 잠자기 전에 두 가지씩 감사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주변에서도 제가 많이 성숙해졌다고 얘기하곤 해요.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이곳에서 배운 거예요.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부분이 많이 변했죠. 실습 끝날 때 엄청 울었어요(웃음).

조용순 : 9시부터 6시까지 실습을 하는데, 올 시간쯤 되면 생활인 분들이 창가에서 다들 손 흔들어 인사해주셨어요. 갈 때도 마찬가지구요. 환대받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일방적인 게 아니라 상호적으로, 애정과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느낌이요.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해요.

오명숙 부장 : 봉사자만 기쁜 봉사, 생활인들만 기쁜 봉사보다는 함께 기쁨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봉사가 되는 거지요.

홍유진 : 맞아요. 그렇게 일이 아니라 즐거운 생활이라 생각하면 힘든 일이 하나도 없어요. 시간 때우려고 온 거라면 힘들 수도 있었겠죠. 여기서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었어요.

조용순 : 부장님이 천사라는 표현을 자주 쓰세요. 처음엔 낯설고, 두렵고, 다가가기 힘들 수 있죠. 그런 애매한 상황이 3일 정도 가요. 그런데 그 때 생활인 분들이 먼저 다가와주세요. 진짜 천사가 맞는 거 같아요. 1주일만 같이 해보면 모든 게 편견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어요. 사람들이 괜히 멀리하고, 두려움을 갖고 거부하곤 하죠. 저도 그랬는걸요. 부활원에 와서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우리랑 똑같은 인격체고, 다만 지속적인 관리만 받으면 서로 잘 어울려서 살 수 있다는 걸요. 그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았고 정도 많이 들어서, 여건이 된다면 계속 관계를 맺고 싶어요. 제 인생에서 평생토록 남을 추억의 한 페이지예요.

부활원의 오명숙 부장.
부활원의 오명숙 부장.

■오명숙 부장의 이야기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두 번 이상 했던 말이 있다. ‘오 부장님이 너무 잘 해 주셔서요.’

 “제가 실습 지도자라서 그래요. 그래서 내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거지, 행정이나 서류 일 같은 걸 많이 하니까. 제가 잘 해서 그런 게 아니구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실습생들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잘 하세요.” 그야말로 이구동성이었다.

 “실습이라는 게, 학부만 할 게 아니라 현장 감각을 익히기 위한 거잖아요. 물론 쉽게 할 수 있는 기관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요즘 사회복지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너무 많잖아요. 그것보다는 ‘진짜 마인드’를 가지시라고. 자기만의 특별한 것을 개발하라고 말해요. 미술이든, 음악이든, 무엇으로든 함께할 수 있는 것을요. 이런 시설이, 일 안 하고 놀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곳이에요. 그런데 일을 하려고 들면 24시간이 모자라죠. 주어진 것만 할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새로운 것을 개발해야 해요.” (오명숙 부장)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부활원을 꺼리기도 한다. “제가 일부러 처음 오는 사람들한테 겁을 주기도 해요. ‘여기서 실습하면 생활인들 목욕도 시켜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요. 그러면 그 말을 듣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진짜 때를 밀어라 시키지는 않죠. 나중에 정말로 일을 하게 됐을 때는 한 사람 한 사람 어디 상처라도 있는지 잘 살펴야 하잖아요. 그 말에 도망칠 형식적인 자격증 딸 사람 같으면 오지 말아라, 이런 의미도 있고요.”

 홍유진씨가 말을 거든다. “그런 마인드로는 실질적으로 가족들을 대할 때도 수익을 바라보고 대하게 될 것 같아요.”

 오선옥씨는 일을 하면서도 오명숙 부장의 마인드를 항상 생각한다. “처음 왔을 때 부장님 말씀이, ‘남보다 좀더 고되고 힘들고 움직이는 삶을 즐겁게 살자’는 거였어요.”

 조용순씨도 말을 보탰다. “부장님께 많이 배웠죠 정말. 자격증만 가지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필요한 곳에, 우리 도움과 손길과 마음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지요. 그걸 우리는 정말 많이 배웠어요.”

 “부활원의 설립자 분이 생활인들을 위해서 정말 피와 땀을 쏟으셨어요. 지금 원장님과 국장님도 생활인들에게 인격적으로 너무 잘 대해주시고, 항상 많이 생각하세요. 부활원의 설립 목적에 맞아야 하잖아요. 자부심이 있고, 자랑스럽습니다.”

조용순씨는 이날의 인터뷰로 지역사회가 정신지체장애인들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조용순씨는 이날의 인터뷰로 지역사회가 정신지체장애인들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인터뷰를 하면서, 봉사자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보람차다’는 말은 누구에게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이었는지, 자신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실습을 위해 왔을지언정 이곳에서 그들이 지낸 시간이 ‘일’이나 ‘봉사활동’이 아니라 어우러져 생활하는 것이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저도 이제 아이를 데리고 같이 오려구요. 어떤 사람도 혼자서는 살 수 없어요. 배척할 것이 아니라 품어야지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래가, 세상이, 좀더 따스하게 변하지 않을까요.” (조용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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