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함께 손잡고 가는 교실, 증약초 6학년 친구들'
'느려도 함께 손잡고 가는 교실, 증약초 6학년 친구들'
  • 오정빈
  • 승인 2019.11.21 0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일 만난 작은학교 증약초 6학년 교실,
“서언이‧현수‧정우, 느리더라도 꾸준히, 이렇게 함께 잘 자라주길”

[우리반 짱!] 증약초등학교 6학년 이정일 교사 인터뷰

(한 해 동안 학생들에게 꼭 하나 가르치고 싶었던 게 있었다면 그게 뭘까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학교는 가족이 아닌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적으로 성장해가는 최초의 공간이에요. 사람이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학교에서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초등학교에서는요. 물론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상처나 어려움을 가지고 있고, 관계에서도 각기 다른 갈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을 정말 잘 관찰해야 해요.

상담을 하다보면 아, 이 부모님은 교육관이 확고하시구나, 비교적 엄격한 편이시구나 하는 때가 있어요. 확실히 그런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친구들은 어른들에게 예의가 발라요. 잘 자라고 있구나 싶어요. 그런데 잘 보면 아이답지는 않아요. 마음껏 감정표현하고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지는 못하거든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다보니 '내가 더 잘해야 하는데' 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어요. 그런 학생들에게는 '정말 잘하고 있어'라고 자꾸 말해줘요. 틈날 때마다 같이 어울리면서 이 친구가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거예요.

우리 6학년 친구들, 서언이 현수, 정우와도 쉬는시간이며 방과후시간이며 남는 시간마다 틈나는 대로 어울려 놀았어요. 같이 하려고 보드게임도 많이 샀고 남자 선생님이다보니 축구나 야구나 운동도 많이 했죠. 누가 보면 '저 선생님 좀 한가한가보다'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웃음) 그 모든 시간이 학생들에게도 제게도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아이들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대화하려 하면 자주 울었던 친구가 이제는 수업시간에 장난도 쳐요. 수업 집중력도, 자신감도 좋아졌죠.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순수하고 착하고, 가능성 많은 학생들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공부만으로 학생을 평가하지 않고 기다리고 들어주면서, 이 학생이 성장하는 데 어떤 말이 필요할까, 그게 제가 1년 동안 한 일이에요."

18일 증약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촬영. 왼쪽부터 김정우·유현수·곽서언 학생, 이정일 교사.

■ 서언·현수·정우에게 "느려도 좋으니 꾸준하게"

(졸업을 앞두고 우리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서언이는 지난 일 년 동안 저와 약속을 가장 잘 지켜준 친구예요. 이기적으로 행동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주변 친구들을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거요. 

서언이 어머님과 상담한 적이 있어요. 어머님이 서언이 성격이 너무 착하다보니까 주변 친구들에게 혹여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어요. 걱정 마시라 대답해드렸어요. 원래 남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상대가 누구든지 이용하려고 할 테고, 서언이처럼 좋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고요. 지금처럼만 자라준다면 서언이 주변에는 서언이를 돕고 또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찰 거라고요. 서언이는 딱 지금처럼만 해줬으면 좋겠어요. 

현수에게는 '느리더라도 목적지까지 꾸준히 가는 게 빨리 가더라도 도착하지 못하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현수는 어떤 과제를 해결할 때 남들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학생인데 그런 상황을 굉장히 속상하게 여겼었거든요. 자기에게 필요한 시간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올 한 해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이 현수를 함께 웃고 기다려줬던 걸 기억하면서, 현수도 스스로를 믿고 충분히 해내고 더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해봤으면 좋겠어요. 자신도 모르는 새 한 걸음 한 걸음 더 빨라질 거라고요. 

정우에게 원하는 건 딱 한 가지. 누가 보고 있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을 잘 마치는 거예요. 정우가 숙제를 좀 잘 안 해오는데...(웃음, 이런 거 말해도 되는 거 맞지요?) 자신감도 많고 잘하는 것도 많지만 좋은 결과를 내기까지 혼자서도 열심히 해야 하고 좀 더 인내를 할 줄 알아야 해요. 정우 꿈이 떡볶이집 사장님이거든요. 저는 그 꿈이 좋아요. 다른 친구를 챙길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좋은 요리를 할 수 있고 또 제2의 백종원도 될 수 있지요. 그 결과를 내기까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인내하면서 잘 채워 넣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이정일 선생님께 "선생님 수업 정말 최고, 이제 수학도 영어도 좋아요"

(졸업하기 전 선생님한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선생님께 드리는 깜짝 편지에요!)

"선생님 수업이 제일 좋았어요. 특히 수학이요. 수학에서 모르는 부분 있으면 세세하게 알려주셨거든요. 매번요. 또, 평소에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세요. (오늘 수업에서는 아무도 안 웃었잖아요...?) 기자 선생님, 오늘 수업은 진지한 내용이어서 그랬어요. 평소에는 진짜 깔깔 웃어요!" (곽서언)

"선생님이 저희 부족한 점을 많이 채워주셨어요. 원래 수학 시간 정말 싫어했는데, 다 어려웠거든요. 지금은 안 그래요. 수학도 영어도 이제 제법 재밌어요. 영어는 단어 시험 보는 것도 재밌어요. 전 비전학교로 진학할 예정인데, 선생님이랑 영어공부 많이 할 수 있었던 게 정말 좋았어요. 마지막까지 수업 열심히 들을 거예요. 아, 그런데 선생님이랑 야구 좀 더 자주 했으면 좋겠어요." (유현수)

"저도 5학년 때까지만 해도 수학이 너무너무 싫어서 도망다녔는데, 이제는 수학시간이 좋아요.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가끔 장난도 치고 하셔서 재밌고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와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수학을 잘한다는 말은 아니구요. 수학도 재밌고 사회도 재밌고 수업시간이 재밌어졌다는 말이에요!" (김정우)

해바라기처럼 학생들이 자꾸자꾸 자라나는 게 보이는 교실, 증약초 6학년 교실이다.

이날 진지했던 수업은 '남북통일'에 대한 수업이었다.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통일이 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산가족 문제를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학생들
수업은 끝났다. 2교시를 마치고 간식인 우유를 가지러 갈 시간, 우유 가지러 갈 사람을 정하려고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현수가 졌다. 서언이는 엎드려 깔깔 웃고 현수는 절망하는 순간.
수업은 끝났다. 2교시를 마치고 간식인 우유를 가지러 갈 시간, 우유 가지러 갈 사람을 정하려고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현수가 졌다. 서언이는 엎드려 깔깔 웃고 현수는 절망하는 순간.
깔깔
서로 손 잡고 칭찬을 주고 받아보자는 시간. 쑥쓰럽다.
서로 손 잡고 칭찬을 주고 받아보자는 시간. 쑥쓰럽다. 2
유현수 학생
곽서언 학생
시종일관 웃는 모습이었던 서언 학생
웃어보라고 했지만 쉽게 볼 수 있는 웃음이 아니다
이때 정우 손가락이
웃고 말았다
김정우 학생. 뿌듯하다.
이정일 교사
오전 마지막 수업은 연 만들기 시간. 그런데 이상하게 현수가 자꾸 정우를 보며 그림을 그린다.  "뭘 그리는 거야? 복돼지야? 통일복돼지? 그런데 왜 정우를 보고 그리니...?" (이정일 교사)
하하
현수 학생이 연에 그린 통일 복돼지
2019년 증약초등학교 졸업기념 사진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