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연극 ‘그저 작은 꽃이었습니다’ 문화회관서 상연
극단 청사 제작, 군서면 출신 김순구 열사 최초 조명작
문길곤 대표 “옥천의 투사 김순구 선생 기억해야”

독립운동가 김순구 선생(1867~1919, 군서면 하동리 출신)의 일생을 조명한 작품인 ‘그저 작은 꽃이었습니다’가 4일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상연됐다. 옥천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인 극단 청사가 김순구 선생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사진은 극중 횃불 만세운동을 연기하는 장면.
독립운동가 김순구 선생(1867~1919, 군서면 하동리 출신)의 일생을 조명한 작품인 ‘그저 작은 꽃이었습니다’가 4일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상연됐다. 옥천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인 극단 청사가 김순구 선생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사진은 극중 김순구 선생(가운데 흰색 도포)이 모진 고초를 겪고 관에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

캄캄한 밤, 민중들이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산을 오른다. 한손에 든 횃불은 유난히 뜨겁게 타오른다. 산꼭대기에 다다른 이들은 횃불을 높이 치켜든다. 이윽고 이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 “대한독립 만세!”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산 전체를 뒤흔들고 옥천시내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독립을 향한 민중의 열망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

1919년 4월 8일 군서면 하동리 서화산(만세봉)에서 독립운동가 김순구 선생을 중심으로로 진행된 횃불 만세운동의 모습이다. 극단 청사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독립운동 모습이 재연되자 관객석에서는 박수소리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한독립 만세’를 함께 외치는 이도 여럿이었다.

군서면 하동리 출신 독립운동가 김순구 선생(1867~1919)의 일생을 조명한 작품인 ‘그저 작은 꽃이었습니다’가 4일 오후1시30분, 오후7시 2회에 걸쳐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상연됐다. 옥천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인 극단 청사가 처음으로 김순구 선생의 삶을 극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연극 제목인 ‘그저 작은 꽃이었습니다’는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평범한 민중(작은 꽃)을 의미한다. 연극은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에 피범벅이 된 김순구 선생이 최후 진술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극중에서 김순구 선생은 최후진술에서 “내가 살면 반드시 왜놈들을 없애 독립을 이룰 것이고, 죽어서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저주할 것이다 대한독립 만세”라는 대사를 남긴다. 이후 연극은 선생의 유년시절, 을사조약 이후 일본의 조선 찬탈에 분노하며 민중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김순구 선생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선생은 1919년 충청 일원에서 연이어 일어난 3.1만세운동의 주동자이자 민중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특히 4월8일 군북면 하서리 만세봉 벌인 횃불독립운동은 강렬한 독립운동의 의지를 옥천 전역과 일제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국의 3.1운동을 보도한 매일신보에는 횃불 독립운동에 대해 ‘옥천, 산에 불 피우고’ 라는 활자가 인쇄되기도 했다.

횃불독립운동 이후 김순구 선생은 무사히 피신하지만 함께 독립운동을 한 주민 4명이 옥천경찰서로 끌려간다. 이들이 고초를 겪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은 주민들의 석방을 위해 자신이 주동자라며 경찰서에 자진 출두한다. 수감된 선생은 옥중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며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극중에서 김순구 선생은 “우리 민중은 지금은 비록 엎드려 있지만 반드시 일어나 일제를 응징할 것이다. 민중은 작은 꽃이지만 씨앗이 되어 다시 태어나 독립할 것이다” 라는 대사를 남기고 관 속으로 들어간다. 실제로 모진 고문을 겪은 김순구 선생이 기절하자, 일제는 선생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관 속에 넣고 한 자(약 30cm) 길이의 대못을 관에 박아 선생을 절명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에서는 선생이 들어간 관에 망치질을 하는 장면을 연출해 선생이 절명하는 순간을 표현했다. ‘쾅, 쾅’ 망치가 관을 두드릴 때마다 잔인하고 아픈 소리가 실내로 퍼져나갔다. 연극은 선생과 함께 횃불만세운동을 벌인 민중 25명의 이름을 한명씩 호명하며 마무리된다.

군서면에 위치한 충민사에서는 매년 김순구 열사와 항일투사 25인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날 공연장을 찾은 주민들 대부분은 김순구 선생이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했다. 공연 덕분에 우리지역의 주요 인물이 알려지게 된 셈이다. 박보용(48, 동이면 석탄리)씨는 “옥천에서 28년동안 살았는데 김순구 선생은 처음 알게 됐다. 옥천의 귀중한 인물을 알게 돼 좋고 연극도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부모님·아이와 함께 공연장에 온 이윤경(44, 옥천읍 문정리)씨는 “사실 아이도 저도 김순구 선생에 대해 잘 몰랐다. 우리지역 독립운동가에 대해 저도, 아이도 배우는게 좋을 거 같아 공연장에 왔다”고 말했다. 박득선(65, 군북면 국원리)씨는 “오늘의 연극과 같은 계기로 독립운동가분들이 다시 한 번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교육적인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극단 청사 문길곤 대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옥천의 역사인물을 찾았다. 그러다가 천안 독립운동관에 김순구 선생을 절명시킨 대못과, 수감 당시 옥중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쇠창살을 두드리던 숟가락이 전시된 걸 보고 김순구 선생님을 알게됐다”며 “횃불만세운동은 우리의 민족성을 알리기 위해 절절한 마음으로 행한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순구 선생을 포함한 25명의 횃불만세운동 독립투사를 모신 충민사에서 매년 제를 지내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며 “이번 연극을 계기로 옥천 주민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시고 김순구 선생을 옥천의 투사로 기억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