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 문향의 향연

초겨울 아무도 없는

빈 꽃밭에서

사십 육 년 내 생()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현 듯 목련꽃 봉오리를 보면

겨울 하늘 아래쯤으로

꽃이 흐드러지게 터져 올라

하얀 나비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흰옷을 입은 여인이

금방 튀어나와

차갑게 웃고는

겨울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나도 내가 반추한 우울이 되어

잿빛 하늘로 달아나고

생명들이 숨어버린 빈 땅 위에

시린 바람으로 덩그러니 남는다.

 

내가 드러내어 환하게 할 수 있을까

숨어 버리고 잊혀진 것들

나도 밝아지고 싶어

나도 함께 꽃피고 싶어.

 

낙엽으로 뒹굴며 보채는 것을

노을이 빙그레 웃으며 슬그머니 물러선다

아름다운 것은 다음, 다음에 올 거야

누가 말했을까?

-신동인, 그곳으로 가는 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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