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허브

"어떻게든 취업해서 밥벌이 하면서 너의 필요성을 증명해야지."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가 조급해졌다.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데, 도대체 그 가치는 어디서 찾고 추구해 가야 하는 건지. 좋은 가치를 표방하는 기업에 입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안 보였다. 시선을 돌리는 질문을 툭툭 던져봐도 엄두가 나지 않는, 나는 30대 중반, 백수 2년 차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양가 조부모님 네 분이 모두 이북에서 피난 나와 서울에 자리를 잡은 까닭이다.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고향 북녘이 나의 삶터였을지도.) 명절 때도 서울을 벗어날 일이 없었으니 도시 아닌 지역의 삶을 가까이서 볼 기회는 거의 없었던 셈이다. 한국, 서울에서 살고 놀고 배우고 일하며 익숙해진 생활패턴과 사고방식이 현실적인 벽으로 다가온 건 최근이다. 진로를 재탐색하면서 제자리만 빙빙 돌 뿐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자극이 필요했다. 마침 친구의 추천으로 2주간 지역 이주를 경험하는 '별의별 이주00' 프로그램을 알았다. 도시를 벗어나면 어떤 새로움이 열리고 어떤 포기가 요구될지 직접 마주하지 않고는 모를 일. 그래서 옥천신문에 발을 들였다.

늦여름 2주간의 기자 체험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역과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집중해서 듣고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에너지를 꽤나 필요로 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과 이야기와 자연과 지역이 있는 그대로 내뿜는 생기가 내 안에 쏟아졌다. 에너지의 순환이 일어나며 눈이 번쩍 뜨였다.

청주, 홍성, 예산을 오가고 옥천군 내 군북, 군서, 안남, 청산면으로 향하는 길에서 매번 비슷하면서도 각각 다른 산세, 그 푸름을 바라보고 감탄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생'이 가지는 비슷함도 있었지만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이 살아있음을 직접 보고 느꼈다. 각 권역에서 지역자치 사업을 만들어가고 계신 분들, 홍성에서 만난 4개 지역의 별의별 이주00 운영자들, 예산에서 뵌 고 윤중호 시인의 옛 친구 조기호 선생님,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신 사장님들, 꿈꾸고 시도하는 학생들, 고향을 떠나와 옥천신문에서 지역언론의 역할을 의미있게 해나가는 기자님들.. 새로운 자극을 얻고 싶었던 내 기대가 넘치게 채워졌다. 틀을 벗어나려면 외국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관심 가지고 찾아보면 이미 다양한 모양으로 삶의 경로를 설정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걸 함께할 수 있는 지역의 움직임이 있었다. 살아있는 한국을 보았다.

옥천 군 내에서도 매주 72개 신문 지면에 다 담지 못할 만큼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뭔가 있어 보이는 저 멀리 구름같은 가치를 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일상의 작은 부분에 뿌리내린 문제들에 관심 가지고 귀기울이는 일도 그만큼, 어쩌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옥천신문에서 배웠다. 풀뿌리언론 옥천신문은 '공공성을 지키고 살맛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모토를 함께 실행하고 있었다. 내 삶터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 가지는 것의 가치를 지역 주민들과 나누며 서로 신뢰하고 있었다.

갑자기 귀촌을 결정한다고, 혹은 도시로 나가기를 선택한다고 없던 가치가 부여되는 건 아닐 게다. 자기 자리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으면서 자족하는 모든 삶이 귀하다. 다른 삶이 궁금할 땐 주의를 돌아보며 내 방식을 점검하고 바꿔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점점 더 다양한 삶을 포용하고 존중하는 진정성이 살아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나. 

마음으로 친근하게 생각되는 지역이 생겼다. 옥천에, 홍성에 방문하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내 삶의 경로는 미지수지만 이 과정 또한 내 삶이다. 나에게 부여하는 한 뼘의 여유를 가지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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