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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을 못 잊은 고향사람, 제주도 사진일기2도 출간
옥천을 못 잊은 고향사람, 제주도 사진일기2도 출간
  • 황민호
  • 승인 2019.10.29 07:0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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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제주의 풍광, 아픈 역사를 빼곡하게 담아내다
안남 서당골 출신, 안남초(31회)졸, 안내중 교사로도 재직한 강경식씨
2017년 청주 성화중 퇴직 후 2년 2개월 제주살이 사진책으로 펴내
90년대, 2000년대 전교조 활동가, 교생사 및 지역교육단체 활동도 
강경식 작가가 10월28일 오전에 옥천신문사를 찾아 직접 책을 건네줬다.
강경식 작가가 10월28일 오전에 옥천신문사를 찾아 직접 책을 건네줬다.

 오래된 옥천사람은 옥천신문 기사를 검색하면 그의 이력과 여적을 조각맞추듯 하며 삶을 더듬어 볼 수 있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 그는 개혁을 부르짖는 전교조 교사였다. 1992년 4월 안내중학교 재직시절, 교원정기인사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전보조치를 당했다며 ‘전보발령 취소 고충심사’를 냈으나 기각당했다. 핍박받던 시절이었다. 98년 5월30일 그는 군수후보초청토론회에서 참교육실천협의회 소속으로 패널로 참석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학교 안에서의 ‘민주주의 운동’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도 거침없이 참여했다. 한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던 당시 비극은 소리없이 찾아왔다. 99년 1월15일 밤 장야사거리에서 대형트레일러와 충돌한 사고였다. 중태였다. 병상일기를 꾸준히 썼다. 그러면서 지역사회 끈을 놓지 않았다. 2002년에는 옥천교육사회단체인 ‘교육을생각하는사람들’의 홍보분과위원장을 맡았고, 2008년에는 안남초 총동문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듬성듬성 시차를 두고 옥천신문에 등장한 그의 이름은 고향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2017년 청주 성화중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하고 나서 불현듯 제주도로 떠났다. 뭍에 살다보니 한없이 바다가 그리웠던 것인지 새로운 삶을 ‘리셋’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제주로 갔다. 2년2개월 동안 살면서 제주 곳곳을 샅샅히 다니면서 사진과 글로 담아냈다. 벌써 2집이다. 그가 다시 옥천을 찾았다. 마치 제주도가 화폭에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가진 ‘제주도 사진일기 2’를 들고 말이다. 이번 책에도 제주를 담아낸 기저에는 옥천이 반드시 있다. 오랜 운동의 동반자였던 서예가 김성장 선생이 책 제목을 써줬고 안남초 까마득한 후배인 오순임(배바우작은도서관 사무국장)이 표지 그림(성산포 오조포구)을 그려줬다. 오순임씨와는 일면식이 없었지만, 배바우신문을 받아보고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탁했다. 그렇게 옥천의 서체와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제주를 감싸 안았다. 

 안남면 서당골 출신으로 안남초 31회, 안내중 16회를 졸업한 그는 대전대성고등학교와 충남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그는 책 소개글에서 ‘안남초 운동장 가장자리에 나란히 줄서 있던 은행나무, 플러타너스가 그리워 가끔씩 학교운동장을 배회한다’고 썼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뿌리가 깊다. 

 교직이수를 해 교편을 잡은 그는 87년 옥천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88년부터 91년까지는 옥천중학교, 92년에 안내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등 5년 넘게 고향과의 연을 맺었다. 전교조 운동이 한창이었고 박해받던 시절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크게 당하면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는 지역과 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었다. 

 그 때의 동지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김성장, 조만희, 김상호, 노봉식 등’ 함께 했던 동료들은 다 은퇴를 했거나 퇴직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만감이 교차하지만, 그는 바지런하게 인생 2막을 일찌감치 준비했다. 퇴직하자마자 제주 성산포의 월세방으로 이사를 하고 애장품인 '캐논 5Dmark2'를 들고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어릴적 가보고 싶었던 마라도와 가파도에, 한라산과 많은 오름을 오르면서 슬프고 가슴 저린 제주도 역사를 다시 공부했다. 그냥 제주도 사진 몇 장을 추려 만든 사진집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연에 의지해 살아가는 제주도 사람들은 기후 변화에 민감하다. 그들은 오늘의 바람방향과 바닷물의 빛깔을 보고 내일과 모레를 준비한다. 어부는 음력으로 보름과 그믐달을 따져 배를 띄우고 그물을 내리며 농부는 24절기를 곁에 두고 씨앗을 뿌린다. 이렇게 제주도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한다” 그는 일기와 사진을 계절별로 묶고 다시 24절기를 정리해 해당되는 여행정보와 해설을 붙였다. 사진촬영 스케줄 지도를 만들고 각 소재마다 코드를 부여해 스케줄 지도만 보아도 쉽게 사진 촬영 소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사진에 일자 시간 분초까지 명시해 언제 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지 알 수 있게 해놓았다.  손수 제작한 부록 제주도 주요도로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여행객에게 충분한 도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도 쉽게 찍은 사진들이 아니다. “광치기 해변의 해돋이 촬영은 결코 쉬운게 아니다.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날씨와 기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음력을 이해해야 푸른이끼 돌계단이 드러난 해돋이 촬영이 가능하다. 우리가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던 조금과 사리, 만조와 간조, 보름과 그믐, 상현과 하현, 대조와 소조 등 용어에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해돋이 촬영에 도움이 된다”

 힐링하러 갔고 제주의 자연경관에 흠뻑 취해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안내중학교 은사였던 조항구 선생의 아들이 옆집으로 이사 오는 바람에 다시 옥천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중간 옥천 이야기도 나온다. '손주야! 이 이야기도 옥천에 살 때 이야기란다. 어떤 주말에는 아침을 일찍 먹고 자전거를 타고 아빠와 고모랑 셋이 동네서점으로 나선다. 나는 서점에서 열심히 동화책을 읽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는 네 아빠와 고모를 억지로 데리고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포장마차로 가 대신 어묵을 맛있게 먹이곤 했단다. 그렇게 눈과 배를 채운 네 아빠와 고모는 할아버지 손을 잡은 채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 지금 생각해보아도 마음 넓은 서점 주인 아저씨와 인정 많은 어묵할머니를 만난 것도 우리에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든 주사위 프로그램을 무료로 널리 보급하고자 옥천신문에 유료 광고를 냈다. 하지만, 돈을 납부하지 못해 늘 마음의 빚이었다. 그래서 2019년 3월부터 옥천신문과 옥천닷컴에 제주도 사진일기를 연재하며 그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있다. 금전적인 빚을 신문 지면을 통해 독자에게 갚아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면 열심히 제주일기를 쓰는 수 밖에’ 이런 끊이지 않은 고향 생각들이 제주도에 눌러 앉지 못하게 했다.  향수병에 걸려 옥천 언저리인 대전 도마동으로 다시 이사를 왔다. 조금 있으면 한남대 평생교육원에서 제주도 풍경사진찍기 강사로도 활약할 예정이다. 그는 지금 대전에 있지만, 어릴적 집 서당골로 다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주교종, 송윤섭 등 지역 후배들이 지역을 멋지게 잘 일구고 있다는 소식을 건네 듣고 있습니다. 저도 나중에 배바우작은도서관 등에 자원봉사도 하고 싶고, 제주에 이어 옥천사진일기를 써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아요.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요.”

 좋은땅출판사에서 10월11일 출간했다. 가격 1만7천원, 문의 010-5467-2714 강경식

제주도 사진일기2
제주도 사진일기2

 

강경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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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섭 2019-10-31 17:10:47
참 부럽습니다. 건강하시고 그 열정 더욱 빛나시길 바랍니다.

역시 2019-10-29 13:41:41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