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행정과 임채현 교수 인터뷰
학생 진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함께 고민하고 싶어
주거 조건 좋은 옥천, 이제 '안전도시'로서 브랜드 가치 올릴 단계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제가 걸어온 길이 일반적으로 교수가 되기 위해 밟는 코스는 아니에요. 가정형편상 공고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서 대학에 진학했고 자격증도 따고 나중에는 석·박사 과정도 밟았죠. 물론 어려운 건 많았어요. 그런데 그때그때 제가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그 배움으로 또 다른 기회를 얻고 연결고리를 따라가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등산할 때 보면 한 치 앞밖에 안 보여요. 그런데 그걸 견디고 봉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그다음 봉오리가 보여요. 이 능선을 타고 가는 게 좋은지 저 능선을 타고 가는 게 좋은지 알 수 있죠. 

학생들에게 약속해 줄 수 있는 건 제가 학생들을 지금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못해보고 성적으로만 판단되고 규정된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개개인의 가능성에 집중하고 작은 성취부터 느껴볼 수 있는 교육을 하고자 합니다. 이게 빠르게 보이는 길보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걸어온 제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이야기일 거 같아요." (임채현 교수)

충북도립대 소방행정과 임채현 교수

[도립대 사람들] 소방쪽으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97년 쯤 (주)신한중공업에서 일할 당시다. 처음에는 자격증 없이 기본적인 기계와 설비 등 설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감리를 하는 친구였어요. 그 당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공무원이나 관계자들의 뇌물수수 등 부실시공에 대한 말이 많았거든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설계도서대로 건물이 제대로 지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감리제도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저는 휴가를 내서 그 친구를 보러 갔는데 그 친구는 근무 중인데도 편하게 나와서 저를 만나더라고요. 당구도 치고 커피도 마시고 왔다 갔다 하고… '아, 좀 부러운데' 했어요(웃음). 나도 이쪽 일을 할 수 없을까 물어보니까 그 친구가 소방설비기사 자격증을 따보라고 하더라고요. 소방설비가 뭔지도 몰랐는데, 막연히 좋다는 이야기에 1년 정도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고 감리쪽 일을 시작했죠. 이제 일이 좀 재밌고 쉬워질까 했는데, 그게 또 그렇게 되진 않더라고요(웃음)."

그 시기는 안전의식이 경제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여러 차례 사고에도 불구하고 안전에 대한 위기의식이 여전히 부족했던 때였다. 특히 소방분야는 건축물 준공을 위한 필증에만 관심이 있지 실제로 건물이 안전한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안전을 홀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감리 일이란 대충, 편하게 일하려는 시공업체와 싸우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1999년 말, 한 지역에서 제일 큰 건물이 지어질 때 이곳 감리 일을 맡았다. 같은 해 경기도 화성에서 청소년수련원 씨랜드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자 감사원에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해당 지역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고 이제 막 준공됐던 이 건물도 감사 대상이 됐다. 

"지적사항이 나왔어요. 전 시공업체와 싸워가며 최선을 다해 소방설비 감리를 마쳤는데 법규만 가지고 점검하는 감사팀에게는 미비한 부분이 있었던 거예요. 보름을 매일같이 소명했던 거 같아요. 이건 이래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등 계속 설명했죠. 한번은 정말 답답해서 그때 시청에서 감사를 받았는데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5분만 주시면 시청 청사 건물에서 선생님이 지적한 만큼 나도 지적해올 수 있다. 각 상황에서 뭐가 최선이었는지 보지 않고 무조건 법대로 적용하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기준에 맞출 수 없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결국 감사원에서 하는 이야기는 '어쨌든 잘못됐다'였죠."

회의를 느껴 감리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울산시설공단에 기술차장으로 들어가 시설물관리를 총괄했다. 그러다 우연히 야간에 울산과학대학 겸임교수로 강의를 나가게 됐다. 공기업에서 일하는 건 여러모로 안정된 일이었지만 이렇다 할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차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기쁨을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그의 인생에도 필요할 때마다 한마디씩 중요한 조언해줬던 사람이 있었다. 학생을 가르치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거움으로 느껴졌다. 그 즈음 공부에 아쉬움이 남아 소방 관련 학과로 유명한 호서대 홈페이지를 찾아보다 박사과정을 모집하고 있다는 공지를 발견했다. 소방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만들어진 박사과정 교육이었다. 곧장 원서를 넣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국제대학교 소방방재학과를 거쳐 충북도립대 소방행정과에 임용됐다.

"이야기의 핵심은 '막연하게 적당한 목표를 세우거나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소방행정과에 입학한 친구들 90%가 소방공무원을 꿈꾸는데 사실 학생들이 소방공무원이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공무원이기 때문이거든요. 소방행정과 나오면 방재실이나 기업 화재조사관, 안전관리, 설계, 시공, 감리, 모델링 등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한데요. 공무원이 나쁘다는 게 아녜요. 각자 자기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교수직을 선택한 이유도 학생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니까, 함께 같이 노력해봤으면 좋겠어요."

올해 충북도립대 소방행정과 학생들이 옥천소방서를 견학하는 모습 

■ ‘안전도시 옥천’, 살기 좋은 도시 만드는 작업 함께 하겠다

임채현 교수는 지난 3월부터 옥천에 살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있는 아내는 자녀들 학기가 마치는 대로 옥천으로 이사 올 계획이다. 아들은 옥천고에, 딸은 옥천여중에 각각 입학할 예정이다.

"일하는 곳에 살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일과 삶이 연결되거든요. 내가 사는 곳이니 관심이 없을 수 없고, 그 지역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게 되는 거죠. 울산에 있을 때도 울산 석유화학단지 인근에 살면서 원전과도 상당히 가까운 곳에 살았어요. 지역주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이해할 수 있었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4~5년간 연구해 석유화학단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시에 전달하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옥천은 어떨까. 

"3월에 이사 오고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를 많이 돌아다녔어요(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요)(웃음). 얼마 전에는 한 코미디언이 와서 강연하는 걸 봤어요. 그 분이 강연장에 온 주민분들 인터뷰도 했는데 '옥천에서 뭐가 좋나요' 물어보니 주민분들 공통적으로 대답하는 게 '대전과 가깝고 교통편이 편하다', '물 맑고 공기가 좋다'더라고요. 인근에 대도시가 있고 환경이 건강한 건 옥천이 주거지역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가진 거라고 봐요. 교통편 좋다는 건 여기서 대전으로 가기도 좋지만 역으로 대전에서 옥천으로 오는 것도 좋다는 말이겠지요."

주거지역으로서 교통과 환경 조건을 갖췄다면 다음 열쇳말은 ‘안전’이다. 안전이 담보된 도시가 곧 살기 좋은 도시이고, 이는 곧 그가 옥천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말이다.

“호주 멜버른이 세계적으로 살기 좋은 1위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이유 중에서도 '안전' 때문이에요. 옥천이 위치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살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면 이제 ‘안전’이라는 가치를 만들어가는 데 장기적인 계획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대전은 물론 인근 지역에서도 주목할 만한 좋은 주거 지역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임 교수는 울산에서도 ‘안전도시’를 주제로 갖가지 연구를 추진했고 제주도에서도 국제도시사업을 함께 한 바 있다. 지역과 긴밀하게 협의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충분히 있다. 

“옥천이 단순히 물 맑고 공기 좋아서 노후에 올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 가족들이 다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안전한 도시가 되길 바라요. 도립대에서 일하며 이 작업을 장기적으로 한다면 그게 의미 있는 일이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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