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숙 작가(옥천읍 문정리)

가을이 깊어 가는 한적한 오후 친구 J에게 전화가 왔다.

영화표 세 장이 생겼다고 오늘 밤 영화 보러 가는 게 어떠냐고 해서 흔쾌히 오케이를 하고 동네 작은 영화관은 한 번도  안 가봤다는 친구K도 함께 가자고 했다.

K는 외국영화는 자막을 읽다보면 뭐가 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해서 국산영화를 택하고 보니 육이오 전쟁 시 젊은 학도병들의 희생이 그려진 <장사리>를 보기로 했다.

상영 시간 십분 전 도착하니 K가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K는 세 사람 분의 팝콘과 콜라를 주문해놓고 들고 있었다.

잠시 후 J는 약속시간을 맞추느라 숨을 헉헉 거리며 들어왔다.

J의 아들이 선물한 티켓을 카운터에 건네자 상냥한 아가씨가 "어머, 이건 팝콘도 무료로 주문할 수 있는 표네요." 했다.

세 개의 봉지와 콜라를 들고 있던 K가 난감한 표정을 짓길래

고민할 거 없어, 이건 집에 가지고 가서 먹고 이 티켓으로 구입하자며 세 개의 팝콘을 봉지 하나에 쏟아 부었다.

잠시 후 티켓을 들고 있던 상냥한 아가씨가 "어머나, 어쩌지요. 이 티켓은 내일 날짜부터 해당되는 거네요."한다.

우리는 한꺼번에 담겨진 팝콘을 어이없이 쳐다보다 "그럼 표 다시 끊어주세요."하고 J가 카드를 건넸다.

이렇게 해서 셋은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영화가 상영하면서부터 J와 K는 깊은 한숨을 쉬며 보았다.

실화라는 사실에 너무도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저런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사는 거겠지. 하는 귓속말을 건네며 숨을 죽이며 보았다.

영화는 중반부로 치닫고 아무런 방패막이도 없이 날아오는 총알 사이로 어린 학생들이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그때, 진동으로 해놓은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세 번의 부재중 번호였다.

핸드폰 빛이 새나올까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전화를 감싸 안고 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고개를 숙인상태로 노안으로 보이지 않는 눈으로 더듬거리며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ㅡㄴ느규세요.(누구세요)

ㅡ스타렉스 차주이지요?

ㅡ네

ㅡ차가 못나가고 있으니 차 좀 빼주세요.

주차장에 제대로 되었는데 못나간다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ㅡ제대로 되었는데

ㅡ제대로 안되어서 못나갑니다.

ㅡ. . . 지금 영화관인데

ㅡ지금 병원에 가야하니 빼주세요.

머리를 깊게 숙이고 문자를 보내니 머리가 흔들렸다.

고개를 든 K는 왜그래? 하는데 영화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아냐, 했지만 그 후로도 전화는 진동으로 계속 울린다.

나,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거 같아, 차 좀 빼주고 올게,

고개를 한껏 숙이고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몇 년을 그 자리에 주차해놓아도 말썽 없던 차가 하필 이 시간에 이런단 말인가.

주차장에 가보니 탱크처럼 개조해놓은 차가 내 옆에 바짝 붙어있었다.

사연인즉은 그 옆에 있는 차 때문에 못 나가는데 그 차에는 연락처가 없고 내차에는 연락처가 있어 전화를 했다고 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고 차주는 휭하니 차를 몰고 가버렸고 나는 불편한 심정을 다스리며 다시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중요부분은 지나간 거 같았지만 어찌 되었든 마음은 편했다.

마지막 부분이라도 이제 영화에 집중하자 하며 영화를 보고 있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참말로 오늘 날 잡았네. 이건 또 누구여 하고는 신발 위에  전화를 올려놓고는 최대한 핸드폰의 빛이 보이지 않게 하고는 머리를 숙여 전화를 확인하니 또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세요? 더듬더듬 자판을 찾아 눌렀다.

여기 책장 배달업체인데 전화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하는 문자가 왔다.

주문하고 보름동안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던 차였는데 이 밤중에 전화가 온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이 밤중에 전화도 없이 오나요. 지금 대전 영화관에 있습니다. 그러니 경비실에 맡겨주세요."하는 문자를 보내느라 애를애를 쓰며 자판을 두드리는데는 십 분 가까이 된 것 같았다.

머리를 숙이고 문자를 보내니 땀은 쏟아지고 옆자리에 눈치는 보이고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바로 답이 왔는데 '기다릴 테니 영화 끝나고 연락주세요.'했다.

아니 진짜 돌아버리것네. 

J가 나를 보더니 왜 그랴. 영화는 안 보고. 한다.

일부러 나오라고 할까봐 동네 영화관이었지만 인근 도시를 지목해 이야기 했는데 성격 급한 나로서는 상대가 기다린다고 하니 불안해 미치고 팔딱 뛸 일이다.

영화가 머리 속에 들어올 리가 없다.

영화는 종결로 들어서고 학도병들의 죽음에 억울한 감정은 격해지고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데 이대로 앉아 영화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J의 귀에 대고 나, 밖에서 기다릴게 다 보고 나와, 하니

J도 K도 왜 그래? 하고 의아스럽게 쳐다본다.

다시 꺾일듯한 고개를 숙이고 영화관을 빠져 나왔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상냥한 아가씨가 나를 바라본다.

두 번까지는 못 봐준다는 표정이다.

나도 안다. 동네 영화관이니 한 번쯤은 중간에 들어갔다 나왔다 봐준거지.

밖으로 나와 전화를 했다.

아니, 이 밤중에 연락도 없이 배달을 하나요? 경비실에 맡기라고 했잖아요."하고 소리를 높이니

"네? 배달은 내일 갈건데 시간 맞추려고 전화 한건데요." 한다.

뜨아아~~

그럼 문자를 왜 그런식으로 보내요?

내가 경비실에 맡기라고 했으면 배달 온 게 아니라고 해야지요. 하니

그래서 기다린다고 했잖아요. 한다.

이런.~~~

아저씨, 배달 온 줄 알고 영화보다 나왔잖아요.

하니 '어서 들어가서 보세요.' 하고는 전화를 얼른 끊어버린다.

내가 잘못된 건가. 그들이 잘못된 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밤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가을밤을 깊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별은 마치 나에게

바보바보 바보야~~ 멜롱멜롱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영화관 화단에 앉아 이 약오른 상황에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영화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었다.

J와 K의 모습이 보이기에 다가가 "잘 봤어? 재미있었어?" 하니

아니, 지금도 머릿속에는 총소리만 들리고 옆자리에서는 뭐가 계속 부스럭거리고 왔다갔다 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한다.

이렇게 억울한 영화감상이 끝났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이 생각나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데 영화가  감동적이라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어이없어 잊지 못할 영화가 되었다.

지금도 J와 K는 그 영화 재밌었어? 하면

아니, 아직도 머릿속에서 총소리만 들리고 옆에서는 뭐가 왔다갔다 하고 없어지고...

하는 말을 변함없이 한 자도 틀리지 않게 하고 있다.

아~웃을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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