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 문학의 향연

1

몇 해 전 유성 수필문학 세미나에서의 일이다.

나의 선망 대상이었고 상아탑이었던 그가 S교수님이 세미나실로 들어오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손을 부여잡고 아양을 떠는 고양이 모습을 했다.

나는 답답했다.

슬그머니 화가 나고 그에 대한 신뢰와 열망 등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S교수님이나 그나 내가 보기에는 양팔 저울로 겨냥을 해보아도 평행할 법한데. 그리고 그 모습을 이내 지우지 못하였다. 지우려 하면 더 먼저 그의 모습이 지름길로 와 있었다.

 

2

어머니께서 암 선고를 받으시고 현대의학이 보장한다는 최종 기한 6개월을 넘기신 지 두어 달 지나고 있었다. 삼남 일녀에 그 짝들까지 여덟 명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러워 하신다. 그러다가 때로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신다. 쓰다 달다 말 못하시고 그냥 볼을 타고 내리는 액체를 주체할 길 없어 하신다. 나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싫다.

이런 어머니 모습 못지않게

어머님 편안한 곳에 가시고 편하신 대로 하세요.” 라고 말하는 여덟 명이 싫다.

어머님 여기 계세요. 꼭 여기 계셔야 합니다.” 라는 말을 나는 더 좋아한다. 어머님은 어떤 말이 더 좋으실까? 어머님 좋아하시는 말만 하면 내가 싫어하는 저 눈물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어머님은 가끔 실수를 하신다.

속옷과 이부자리를 적시고 난 후 어머니의 표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철부지 두 살배기 아들 녀석의 얼굴과 똑같아진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대충 살을 문질러 드리고 엉덩이를 두드려 주면 또 금세 아이의 얼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 미소 앞에서 가슴이 무너진다. 눈을 지그시 감으신 그 미소 앞에서 어깨를 길게 늘어뜨린다.

나는 백 번도 이백 번도 더 어머니께 실례를 했어도 당당하고 큰 소리로 웃었는데 어머니 당신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실례를 왜 그리 멋쩍어하십니까?

이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는 어떻게 하라고요.

응아를 해 놓고 똥기차를 만들었다고 좋아하는 저 아이처럼 그렇게 좋아해 보세요. 손뼉도 치고 당당해하세요. 그러면 저의 가슴 무너지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3

우편물이 배달되어 있으면 나는 긴장한다.

등단 작가란에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으면 또 가슴이 막힌다.

작품집이 배달되어 와도 가슴이 막힌다. 원고지를 잡고 밤을 새워도 한 자도 건져낼 수 없는 나의 재주에 기가 막혀 자존심 상한 눈물이 쏟아진다.

나의 잉태는 커다란 애드벌룬이나, 출산한 작품은 바람 빠진 고무풍선이니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현상 앞에서 자주 무릎을 꿇는다.

어디 이 뿐인가?

나는 나를 그럴 듯 하게 위로도 할 줄 안다.

李箱(이상)’의 모더니즘 문학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아주 멀리하거나 정신병자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의 문학세계가 고급문화를 지향하는 깨어 있는 자에게는 연구의 가치가 꽤 있다는 걸 알려준다. 그러니 아마도 내가 쓰는 잡문이나 낙서 같은 것도 李箱의 문학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속 빈 희망을 가져 보기도 한다.

 

4

나는 1의 그를 지금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 더 깊게 허리를 숙였다. 내가 만약 그였으면 뒷짐을 지고 거드름을 피우며 악수를 청하여 지금의 나에게 적이 실망을 안겨 주었을 텐데.

역시 그는 잘 익은 쓸모있는 곡식이었다.

어머니1

그는 알맹이 빠진 껍질로 계시면서 그것에 불평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위로하려는 나를 책망하신다.

내가 이들처럼 비로소 사람으로 완성될 날은 언제쯤일까?

아직도 나는 낙서 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하다.

-김묘순, 수필집 햇살이 그려준 얼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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