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군서초 컴퓨터실에서 만난 6학년 학생들
졸업 앞두고 ‘직접 여행 계획을 세웠어요’
"기자님 여름에 취재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겨울방학이 얼마 안 남았어요."
46명 학생이 있는 작은학교에서 11명 학생의 졸업. 굳이 이 숫자가 아니더라도 군서초 6학년 담당 이세중 교사는 어쩐지 마음이 아쉽다. 아이들이 학교를 완전히 떠나고 흔적만 남은 빈 교실에 어떻게 서 있을까?
"올해 만난 학생들은 정말 특별한 친구들이었거든요. 에너지도 넘치고 학생들마다 색깔이 다 달랐어요. 저마다 잘하는 걸 찾아줄 수 있을 거 같아서 체육대회며 컴퓨터대회며 도대회나 전국대회를 한 번씩 내보내봤어요. 다들 너무 잘해줬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가능성을 다 못 찾아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명한명 더 많이 봐주지 못한 게, 그 점이 미안해요."
주지 못해 미안한 게 있고, 반대로 많이 받아 고마운 것도 있다.
"굉장히 솔직한 아이들이었어요. 처음에는 부담되기도 했는데 학생들이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정말 스스럼없이 하더라고요. 언제부턴가는 저도 배우게 됐는데… 언젠가 아침에 효리를 만났어요. '효리야, 선생님이 효리를 참 사랑해.' 처음 말해줬는데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그렇죠. 학생들이 저를 닮아가는 게 아니라 제가 학생들을 닮아가요.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학생들의 가능성을 더 오래 봐주고 싶은데, 7학년이 있다면 더 함께 하고 싶을 정도예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냐 물었다. 이세중 교사는 '참 고맙고 사랑한다'고 답했다.
[우리반 짱!] 15일, 컴퓨터실에서는 '특별 PT 발표회'가 열렸다. 잘하면 본래 예정에 없던 졸업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군서초등학교 졸업여행은 격년에 한 번씩 간다. 작은학교 특성상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해 4-6학년이 한꺼번에 여행을 떠나는데, 그러다보니 3년 내내 졸업여행을 가는 모양새가 돼서 여행을 격년제로 가는 편을 택했다. 그런데 막상 졸업여행을 안 가는 차례가 되니 아쉬워졌다.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체험학습'이란 이름으로 졸업여행을 계획한 것. 수업까지 연계했다. 15일 3·4교시 동안 PPT를 만들고 5교시 발표회를 갖는다. 잘하면 내가 발표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볼거리 먹거리 모두 풍부한 여행지가 나왔다. 예하는 강릉 안반데기 은하수와 숯불 오리고기, 효리는 포항의 석양·불꽃놀이·순댓국, 지현이는 전주 한옥마을 투어와 특제 비빔밥·초코파이를 소개했다. 그런데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있어? 찬우 차례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동네 가을 여행지라고 했지만 사실 맛집과 먹거리를 소개할 이찬우입니다."
맛집과 먹거리는 동의어가 아니던가. 시작이 심상치 않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맛있는 음식 탑 쓰리를 준비해봤어요. 먼저 탑 쓰리는 이모네국수집입니다. 메뉴는 잔치국수 콩국수 막국수 비빔국수 열무국수가 있어요. 그 다음은 개천식당입니다. 여기는 만둣국과 떡만둣국 떡국 튀김만두 접시만두 물냉면 비빔냉면이 있고요. 탑 원은 오뚜기순대입니다. 여기는 모듬순대 막창순대 야채순대 순대국밥 돼지국밥 술국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돼지열병이 돌고 있어서, 역시 돼지는 안 되겠지요...? (아쉬움) 그럼 이제 맛집 소개가 있겠습니다. 대전중앙시장은 원미냉면에서는 짜장면이 참 맛있는데요…(이하 생략)"
찬우가 발표하는 동안 친구들은 깔깔 웃음이 터지고 이세중 선생님도 '어후. 맞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찬우 발표대로 졸업여행을 가면 엄청 많이 먹을 수 있겠네요. 고마워요. 정보를 많이 줬어요.' 선생님이 웃는다. 다음은 혜원이 차례. 혜원이는 제주도에 가고 싶다.
"제주도에서 제일 유명한 건 도르방 머시기인데('그러니까, 돌하르방을 말하는 거지?' 선생님이 정정해주자 혜원이가 깔깔 웃었다). 흙돼지도 맛있고요. 한라봉도 맛있어요. 또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제주도 관광지가 되게 예쁘데요. 저는 제주도에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이 있다고 사과머리를 한 윤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한라봉은 한아르버지(할아버지)가 키우는 건가요?"
"으아아아아아(야유)"
이것은 한라봉과 할아버지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가져온 윤수 나름의 유머인데, 친구들은 한 목소리로 야유를 던졌다. 이어 웃음도 터진다. 여행지도 아니고 여행을 꿈꾸는 발표 하나일 뿐인데 우리 학생들 뭐가 그렇게 즐거울까. 추억이 또 담뿍 쌓이는 군서초의 하루다.
■ 선생님이 6학년 11명 학생에게 전하는 '롤링페이퍼'
△임효리 효리는 심성이 곱고 에너지 절약에 앞서는 친구에요. 보고 있으면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은데… 전등 끄기를 정말 잘해요.
△유지현 본인도 꿈을 경찰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체육을 정말 잘해요.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고요. 또 배려심이 많은 편인데 화 내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이혜원 혜원이는 마음이 정말 따뜻하죠. 재치 있고, 재밌고, 유머러스해요(잠시만요, 선생님, 다 똑같은 말인데요). 또 정말 씩씩해요(웃음).
△서예하 발표력이 정말 뛰어나죠. 과제 수행력이 좋아서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해요. 만능 일꾼이랍니다.
△정예지 예지는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지만, 무엇보다 친구들을 잘 챙겨줘요. 희생정신이 뛰어나요.
△이다현 마음이 너무 순수해요. 정말 예의 발라서, 정말 다현이 입에서 나쁜 말이 나온 걸 본 적이 없다니까요.
△신윤수 창의력이 엄청 뛰어나죠. 문제 해결 능력이 좋은 건데, 만들기도 잘하고요. 또 먹는 것도 좋아하죠(웃음).
△서동윤 개그를 잘하고 리더십이 있어요. 인기도 좋은 편이랍니다(재밌어서요?). 잘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웃음).
△이찬우 듬직한 친구죠. 모난 데가 전혀 없어서 아이들과 사이가 제일 좋아요. 다만 휴대폰 사용은 좀 줄였으면 좋겠는데…(웃음). 왠만한 어른들보다 옥천 맛집도 잘 안 답니다.
△고윤재 깜찍하고 똑똑하고 창의력이 뛰어나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아이에요. 저를 웃게 해줄 수 있는 친구고, 반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랍니다.
△이경민 엄청 성실해요. 예의도 바르고 정리정돈도 잘 하죠. 다만 휴대폰 사용을 좀 줄였으면…(기시감, 웃음) 아까 말하는 걸 들으니 꿈이 '준프로게이머'라고 했는데, 이왕이면 프로를 꿈꿨으면 좋겠어요(그럼 지금보다 더 게임하는 시간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중학교 가서 했으면 좋겠군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