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전서 옥천으로 이사와
주택 주변 텃밭과 감나무 가꿔온 한봉례씨
14일 오후 4시 옥각리 어느 주택에서 그를 만났다

14일 오후 4시 옥천읍 옥각리 한 주택에서 한봉례(80)씨를 만났다. 몸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에 주변 이웃들이 감을 따줬다며 자랑하는 그다. 감 표면에 상처가 많고 울퉁불퉁하지만 그에게는 마트에서 파는 감보다 더 맛있고 소중하다.

[옥천을 살리는 옥천푸드] 옥천읍 옥각리를 지나다 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나무에 감이 제법 튼실하게 매달려 있었다. 마당 한 편으로 눈을 돌리니 배추, 무, 대파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다. 낡아 보이는 주택을 주변으로 심어진 감나무와 잘 정돈된 텃밭의 주인은 한봉례(80, 옥천읍 옥각리)씨였다.

14일 오후 4시, 감 농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무작정 카메라를 챙겨 떠난 그날, 우연히 한봉례씨를 만났다. 한봉례씨는 자신이 '텃밭의 주인' 혹은 '감나무의 주인'이라는 호칭과 어울리지 않다고 말했다. 그저 한달에 10만원씩 내면서 주택에 살며 감나무와 텃밭을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옥천으로 이사 온지가 벌써 13년이 넘었죠. 옥각리 지금 집에서 산 지는 1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3년 전만 하더라도 직접 감도 따고, 텃밭에 깨·콩·팥은 물론 무 배추 등 많이 심었었는데 이제는 못해요. 흉선암에 걸려서 계속 항암 치료를 받았거든요. 항암은 끝났는데, 여기에 파킨슨병까지 와서 잘 움직이지를 못해요."

거동이 불편한 한봉례씨를 대신해 옥각리에 사는 지인이 텃밭을 관리한다. 땅을 놀리는 것을 볼 수가 없어 부탁했다. 텃밭에서 난 농산물도 기꺼이 양보한다. 농산물이 있어도 요리를 해먹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3년 전만 해도 직접 밭을 가꾸면서 수확의 기쁨을 느꼈던 그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저 감나무는 저래 봬도 150개에서 250개씩 감이 열려요. 제가 살기 전부터 있었으니까 한 30년 넘은 감나무가 아닐까 싶네요. 감 종류가 어떤 건지는 모르겠는데 단감인가. 무척 달죠. 몸이 불편해서 감을 직접 따지 못하니 인근에 사는 이웃들이 대신 따줘요. 제가 먹기도 하고, 이웃들보고 가져가라고도 하고. 그러고 지내요."

감나무 취재왔다는 기자에게 대뜸 '감 맛 좀 보라'며 감을 깎아 주셨다. 감에 꿀이 박혔다. 무척 달았다. 

본래 농사가 전업은 아니었다. 취미로 텃밭을 가꾸는 한가로운 소리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봉례씨에게 농사는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였다. 정말 '먹기 위해' 농사를 지었다. 알음알음 얻어온 씨앗들을 심어서 자란 농산물을 수확해 식(食)생활을 위해 썼다.

"아무래도 나가서 사는 것보다는 가꿔서 먹는 게 돈이 덜 드니까. 몸이 안 아플 때는 농사를 지어서 해결했죠. 지금은 일을 못하니까 기초생활수급 급여 나오는 걸로 다 충당하고 있어요. 사실 이제 건더기가 있는 걸 넘기기도 어려워서 밥을 잘 안 먹게 되네요."

전라북도 고창군이 고향이다. 20대에 남편과 결혼해 대전에 터를 잡고 장사를 했다. 그리고 28세에 남편을 잃었다. 슬하로 아들 1명이 있는데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옥천으로 넘어온 건 아들이 크고 난 뒤, 이주의 이유는 월세였다.

"아무래도 대전보다는 옥천이 집값이 쌀 것 같아서 넘어오게 됐죠. 이 집은 10년정도 살았는데 벌초를 해주는 조건으로 살고 있어요. 월 10만원 정도 서울에 사는 집주인에게 보내요. 사는 데 불편한 건 없어요. 요양보호사가 매일 방문하죠. 아! 난방비가 한달에 8만원 정도 나오는데, 그걸로는 기름 반통 정도밖에 못 사요. 겨울이 오면 그게 걱정이네요."

한봉례씨가 감나무 밑에서 사진을 찍었다. 10년 간 함께한 감나무다. 한봉례씨의 세월과 함께 나무도 늙어간다.

대전에서 옥천으로 넘어올 당시 한봉례씨의 나이는 67살 즈음 됐다. 처음 옥천에서 한 일은 이원면에서 묘목 접을 붙이는 일이었다.

"꽤 오래 했죠. 한 10년 정도는 한 거 같아요. 그 이후로는 관광호텔에서 침대 시트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을 했어요. 나이가 꽤 있는 편이었는데, 별수 있나요?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했죠. 그래도 몸이 안 아플때는 일이라도 했는데 적적해요."

적적한 순간에도 집 밖 마당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 10년 전 심은 무화과가 요 근래 열매를 맺은 것도 감사한 일 중 하나다.

"10년 전에 무화과 씨를 얻어다가 심었는데 글쎄 열매를 맺은 적이 없어요. 열매를 맺겠다 싶으면 어느새 죽고, 또 죽고 반복했는데 요새 열매 몇개가 나무에 매달렸어요. 정말 신기한 일이죠."

심은지 10년 만에 무화과 열매가 맺혔다. 알은 작을지 몰라도, 한봉례씨에게는 소소한 기쁨이다.

한봉례씨는 노후한 주택이, 텃밭이, 감나무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했다.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했다. 하지만 땅은 가꾸는 자의 몫이다. 10년 전 옥각리에 이사 왔을 때부터 그가 돌봤던 땅과 나무와 집. 한봉례씨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지만 곳곳에는 한봉례씨의 손길이 닿아있다. 그래서 한봉례씨의 것이 맞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텃밭 앞에서 한봉례씨가 웃고 있다. 싱그럽다.
몸을 움직이기 불편하지만, 생활 속 운동은 계속 된다. 치매예방에도 좋은 손뼉치기다. 
'짝' 한봉례씨의 손뼉 치기로 이번주 '옥천을 살리는 옥천푸드' 농가 인터뷰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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