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영(전 홍익대 미대 교수, 현 프랑스 조형예술가협회 회원)

[특별기고]

심향 박승무, 한원 박석호, 하동철 선생 등 옥천 출신 유명 화가가 많이 있지만, 옥천에 미술관은 없습니다. 옥천 출신 작가들의 상설전시나 지역예술인들의 기획전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미술관의 부존재는 열악한 옥천 문화환경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원면 대동리 출신 월간 서울아트를 발행하고 김달진 미술자료관을 운영중인 김달진 선생을 필두로 지역 출신 예술인들이 옥천 미술관 건립을 위한 기고를 연재합니다.

정택영(전 홍익대 미대 교수, 현 프랑스 조형예술가협회 회원)
정택영(전 홍익대 미대 교수, 현 프랑스 조형예술가협회 회원)

‘실천되지 않는 사상은 사상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은 프랑스 문화의 행동주의자,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앙드레 말로였다. 이러한 행동주의자가 있었기에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전 세계로부터 연간 9천여 만 명의 관광객을 부르는 관광대국이 되었다. 어느 나라든 일단 관광을 하면 유명 유적지나 미술관, 박물관을 찾게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2천년대 초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해 어언 15년여를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프랑스와 특히 파리를 중심으로 한 미술,문화 시설과 정책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프랑스가 문화대국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많은 국가들이 프랑스 문화와 예술 분야의 현실을 벤치마킹 하기 위해 관계자들과 연구원들이 많이 찾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소년시절을 옥천에서 보냈던 필자의 기억 속에 남은 정경은 지명 그대로 ‘기름질 옥’, ‘내 천’이 그러하듯, 옥토에서 생산되는 풍요로운 곡물들과 사시사철 아름다운 산천의 모습으로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다. ‘60년대 당시만 해도 헐벗은 산하에 나무를 심는 사방공사가 한창이었고 농업 외의 산업이래 봐야 잠업과 소와 돼지, 닭을 주로 한 축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강력한 국가의 리더였던 박 대통령의 혜안과 결단에 의해 독일의 외자도입으로 ‘배창방직기계공장’을 옥천에 세워 기계공업의 시효가 되었고 고등학교 과정에서도 그 공장에 인력을 조달할 수 있도록 기계과가 개설되기도 했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단지도 공장도 없던,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 그것이 옥천이란 도시가 갖는 이미지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던 형편이었으므로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화두는 한갓 사치스런 언어였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제 한국도 경제적인 급성장을 이루게 되어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의 발전과 지방자치단체의 독립으로 지역발전의 균형을 이룬다는 기치 아래 괄목할 발전을 이루어 온 것이 사실이다. 각 군에서는 이미 여기저기 미술관들이 들어서고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관광객들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옥천의 문화와 예술 분야는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 인터넷서핑을 해보게 되었다.

현재 옥천에는 지역 전통문화의 보존,전승 사업과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개최하고 문화학교와 문화교실 운영 등 군민들의 문화향수를 충족시키기 위해 ‘66년에 개원한 옥천문화원이 유일한 문화기관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근자에 이르러 옥천군문화예술회관이 건립됨으로써 연극, 뮤지컬, 음악공연, 창극 등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 작품을 선보여 옥천지역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외에 농촌융복합산업(6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문화복합공간인 ‘농특산물판매장휴休’가 조성되었고 지역 문화 창작공간인 둠벙, 그리고 정지용 문학관과 교동생태습지, 지용문학공원 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수준과 문화 수준에 걸맞는 미술관이나 기타 문화활성화를 위한 복합문화 대안공간이 부재하다는 것으로 미루어 여타 다른 지역에 비추어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Centrepompidou, Paris 퐁피두 센터 (현대미술관), 파리<br>
Centrepompidou, Paris 퐁피두 센터 (현대미술관), 파리

다시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우 예를 들어 문화.예술 분야가 어떻게 발전되었는가를 살펴보자.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는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을 필두로 기차 역사를 개조해 개관한 오르세 미술관, 첨단공법으로 건축된 퐁피두센터 현대미술관 등 세계 굴지의 미술관이 즐비하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그들 국민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문화.예술의 힘을 자각했던 문학가 앙드레 말로의 탁월한 미래 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세계 최초 독립부서로 만든 문화성의 초대 장관을 맡아 기발한 정책들을 펼쳤다. 지방 곳곳에 ‘문화의 집’을 세워 문화 대중화의 거점 모델을 만들었고, 건축물 건립 비용의 1% 이상을 문화적 용도에 써야 한다고 규정한 ‘1%법’을 창안했다. 그가 초대 문화부장관에 임명된 후 10년간 「행동하는 문화정책」을 추구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문화 대중화와 문화 국익을 실현했다. 그는 ‘예술은 근대의 종교이며 미술관은 그 사원’이라고 말함으로써 미술관의 중요성과 그 역할을 일찍이 깨닫고 고속도로 건설에 앞서 문화예술공간을 먼저 입안하고 착수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마크롱 정부의 주요 공약으로 18세로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한 문화소비자 지원 정책인 Pass Culture 제도를 마련해 문화예술의 글로벌화 시대에 소비자 접근성이 약한 지역 공급자들을 지원해주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스페인의 경우, 조선 산업 쇠락으로 인한 도시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하여 큰 성공을 거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은 순수예술활동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빌바오의 고용 및 경제적 수익 창출에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는데 이는 순수예술을 지원함으로써 예술, IT, 디자인 산업 등의 고용창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Guggenheim Museum Bilbao빌바오 구겐하, 스페인

대체적으로, 지금까지의 문화·예술 정책은 산업정책보다 복지정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여작은 규모의 지역 수요 대응에 치중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전시공간 역시 단순 관람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온라인으로 소비되던 영역은 체험형 공간이 대세인 추세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문화의 사회성과 국제성을 고려하면 옥천이란 지역에 국가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고 문화예술산업의 특수성과 현재 청년실업 등 우리나라가 당면한 고용 상황 등을 고려하여 지역의 문화발전을 꾀할 수 있는 미술관 건립이 절실하다 아니할 수 없다.

차제에 문화예술을 아우르고 미래를 향한 미술관이 옥천에 건립되어 지역주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눈높이를 향상시켜주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삶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비전을 담은 예술의 전당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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