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안내초등학교에서 전교생 모여 생·파·축 다모임
9·10·11월 친구들 생일 파티 '우리가 직접 기획했어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학생자치활동 중 하나인 안내초 '다모임'은 2016년 김보람 교사가 안내초에 처음 발령난 해(안내초가 행복씨앗학교 준비교로 지정된 해)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생도 선생님도 갸우뚱했다.

'우리 일년에 두 번 생일파티하던 거 말인데요, 이제 학생들이 직접 기획해보는 게 어떨까요?' 2016년 당시 안내초 교감이었던 김욱현 교감(현 청성초등학교 교장)이 다른 선생님들에게 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름하야 '생파축(생일파티축하)'. 학생들이 공모를 내서 직접 만든 생일파티 행사 이름이다. 생파축은 이제 일 년에 네 번, 분기별로 열리는 학교의 중요 행사가 됐다. '재미가득 이벤트부' 일곱 명 학생들은 다달이 분주하게 친구들 의견을 모으고 생일파티를 기획한다.
 
"'학생자치'라고는 하는데 처음에는 학생들이 뭘 할 수 있는지 처음에는 몰랐죠. 그러다 한 두 명씩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가령 '어떤 특별한 동아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수업을 직접 진행해보는 게 어떨까요?', '바자회를 열고 싶어요' 등등. 이야기 폭이 점점 넓어졌어요. 물론 다 할 수는 없어요. 아이들도 알아요. 시간이 지나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죠. 상상만 하는 게 아니라 현실과 상상의 괴리를 좁히면서 친구와 선생님과 계속 이야기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물어보죠. '그럼 언제 할까요?'" (2학년 담당 김보람 교사)

근본적으로 다모임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발언권'을 만들어준다. 작은학교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준다. 사실 작은학교는 학생 수가 적은 만큼 친구들 사이에서 평가가 '못났다'고 한 번 인식되면 관계개선이 쉽지 않다. 하지만 다모임처럼 공식적으로 누구든지 존중받는 게 마땅한 자리가 계속 만들어지면 재평가될 가능성도 많아진다. 실제로 다모임 덕분에 친구관계가 개선되고 자신감이 확 붙은 학생이 있다.

"내 말을 인정 받고 내 삶을 스스로 가꿔나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학교를 통해 배울 수 있어요. 충분히 가능하죠. 저희가 바라는 건 딱 하나, 자기가 꿈꾸는대로, 또 기대하는대로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학생들이 스스로 아는 거예요." (김보람 교사)

8일 안내초등학교에서 열린 다모임 '생파축(생일파티축하)'. 9월~11월 사이 생일을 맞이한 친구들을 위한 파티가 준비됐다. 왼쪽 앞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박영미(4학년), 남은율(4학년), 최예나(2학년), 육성재(4학년), 김재민(3학년), 이은율(1학년), 이도현(3학년), 이정근(5학년), 이예림(5학년) 학생.

[작은학교 안내초 이야기] 재윤이는 8일 평소보다 일찍 등교했다. 오늘은 '생파축' 행사가 있는날. '재미가득 이벤트부' 부장인 재윤이는 평소보다 조금 발걸음을 채근한다. 크게 부담 가질 정도는 아니다. '재미가득 이벤트부'는 아니지만 거의 전교생이 일찍 학교 다목적실로 모여 있을 테니까. 입 빵빵하게 풍선을 불고 기계를 이용해 헬륨도 넣고, 또 누구는 갖가지 장식을 벽에 붙인다. 풍선 짬매는(?) 솜씨가 이제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선배·친구·후배가 선배·친구·후배를 위해 준비한 특별 생일파티다.

(이)은율이, 예나, 재민이, 도현이, 영미, 성재, (남)은율이, 정근이, 예림이 등 전교생 중 9·10·11월이 생일인 친구는 모두 9명. 이번 생파축에서는 특별히 생일카드도 만들었다. 손바닥 두뺨 만한 카드에 롤링페이퍼처럼 친구들이 돌아가며 글을 쓰고 스티커도 붙였다. 그나저나 게임은 어떤 게 좋을까. 점심시간 친구들과 모여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술래잡기 어때?', '안돼. 다목적회관 좁잖아. 난장판이 될 거야', '그러겠네, 그러겠네'

게임은 '제시어 맞추기'와 '개미 술래잡기'다. 자리에 앉아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하하호호 시끌벅적 놀 수 있는 게임을 우리 친구들이 찾아냈다. 제시어 맞추기는 학생들이 대여섯줄로 앉아 제한시간동안 제시어 그림을 그리고 맨 뒷줄에 앉은 학생이 제시어를 맞추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갸우뚱 했던 1학년 학생들도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열심히 손을 놀린다. '코끼리'는 어떻게 그리겠는데, '흥부와놀부'는 어떻게 그린담? 문제 출제자들이 원성을 샀다. '사과'와 '삐에로'는 그려볼 만하지. 

제시어는 코끼리. 그런데 앞에서 친구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서 당황했다. '아니, 이게 코끼리란 말인가...'
'진심이야? 너네 무슨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어.' 코끼리를 옆에 다시 그렸다. 
'흥부와 놀부'를 어떻게 그릴까. '일단 사람 두 명을 그리자...'
제시어는 '삐에로'인데. 여기서 어떻게 더 그리지?
'제시어'는 삐에로인데 이 친구는 '아주머니'라고 답을 썼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님들, 웃음이 빵 터졌다.
"답은 '아주머니'에요!"

'개미 술래잡기'는 의자를 아무렇게나 펼쳐놓은 뒤 술래를 정해 술래가 의자에 앉지 못하도록 학생들이 주변 의자를 다 차지해 앉는 게임이다. 노래 한 곡이 끝날 때쯤까지 의자에 못 앉아 있는 사람이 탈락이다. 노래 선곡은 3학년 재민이가 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거미줄을 피해 날아, 꽃을 찾아 날아, 사마귀를 피해 날아, 꽃을 찾아 날아, 꽃들의 사랑을 전하는 나비. '나는 나비'"

미션! '빈 의자를 찾아 앉아라!'
'나와, 내 자리야!'
'꽈당!',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눈 깜짝할 사이에 생파축 날짜가 된 거 있죠. 그래도 모두 재밌게 시간을 보내줘서 고마워요. 이벤트부에 들어온 건 후회하지 않아요. '일일 방송부'는 저랑 잘 안 맞았고, '싱글벙글 행사부'는 제가 기획하기엔 너무 일이 커보였거든요. '재미가득 이벤트부'가 딱이었어요. 작은 이벤트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소소하게 나눌 수 있는 기쁨들이 참 좋아요." (황재윤,5학년) 

가장 고마운 게 누구냐는 질문에는 '사회자 친구들'이라고 대답했다. 5학년 정근이와 3학년 도현이가 1부 사회를 맡고 5학년 인정이와 예림이가 2부 사회를 맡았다. 다른 친구들 앞에 서서 즐겁게 기획을 진행해주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자발적으로 도와준 친구들이다. 

"사실 평소 친구들 생일을 다 챙겨줄 수 없었는데 학교에서 생일파티를 함께 할 수 있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그런데 막상 제가 사회를 보려고 하니까 머리에 버퍼링이 걸리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친구들이 기다려주고 웃어줘서 고마워요. 또 지난번 생파축 때보다 적극적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한 친구들이 많았어요. 정말정말 고마워요." (이예림,5학년)

버퍼링이 걸린 예림이. 오른쪽이 예림이고 왼쪽이 인정이다.

"사실 오늘 예림이도 생일 축하받아야 하는데, 축하 메시지 전할 때 뭔가 민망해서 말을 못했어요. 다음번엔 꼭 용기있게 말할게(라고 말하면서도 쑥쓰러워서 예림이를 못 쳐다봤다)! 오늘 생파축 친구들 모두 축하해요. 모두가 한마음으로 축하하고 모두가 즐기는 자리인 거 같아서 기뻐요. 다음번에도 기회가 되면 사회를 맡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황인정,5학년) 

'애들아, 3초야. 1,2,3 할 동안 고양이를 그리고 바로 뒷사람에게 넘겨야 해'. 동생들에게 게임 규칙을 설명해주는 인정이와 예림이. 

8일 안내초 다목적회관에서는 학생의·학생에 의한·학생을 위한 생일축하파티가 열렸다. 학생들이 원하고 이야기하고 실행하면 실제로 바뀔 수 있는 곳, 안내초 다모임의 현장이다.

안내초 학생들 한마음으로 즐긴 '생파축' 현장. (이)은율이, 예나, 재민이, 도현이, 영미, 성재, (남)은율이, 정근이, 예림이, 모두 생일 축하해요.

작은학교 안내초등학교

안내초등학교는 1921년 개교해 올해 학생이 36(남자 12명, 여자 24명)명, 선생님은 10명인 '작은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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