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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청정리 이갑순 어르신 (1936년~)
안남면 청정리 이갑순 어르신 (1936년~)
  • 옥천닷컴
  • 승인 2019.10.09 12: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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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돌이와 갑순이는 청정리에서 알콩달콩!

 

■ 때 이른 추석을 보내고 일찍 찾아올 단풍을 기다리고 있다. 
곱던 단풍이 바닥에 주저앉으면 처마 밑에는 메주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시골 살이 진풍경이다. 하나가 기울면 하나가 솟는 우리네 사는 이치랑 같다. 자연이란 녀석들이 때마다 보내는 신호는 틀림없다. 사람보다 더 영물이다. 이 나이 들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오래전 잊혀 졌지만 어머니를 다시 그리움으로 불러들이는 건 바로 주렁주렁 달린 메주다. 음식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는 장맛이 기가 막혔다. 정성만으로도 그 장맛을 낼 수 없다. 살림의 지혜도 필요하고 정성까지 더해져 빚어낸 맛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도 그 정성은 충분하다. 콩을 삶고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그는 모든 순간에는 물과 바람과 정성이 양념으로 들어간다. 술은 빚기 장은 담그기 메주는 띄우기라 부른다. 볏짚 깔고 짚으로 묶어 메주를 매다는 것은 발효시켜서 풍미를 더하는 방법이다. 
깊은 맛을 내는 방법을 어찌 아셨을까 우리 조상님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자연의 이치를 통해 배워 우리네 인생살이에 더 요긴하게 쓰셨다. 유난히 맛있었던 우리 집 장맛 친정어머니의 정성이며 솜씨였다. 마땅한 찬이 없어도 된장 찌개하나 나물 무침 하나도 그 장으로 무치고 볶아내니 그 깊은 맛을 흉내 낼 수 없다. 혼잎을 툭 뜯어 무쳐먹어도 입안 가득 퍼지는 구수한 맛은 여든이 넘은 지금도 고향의 맛처럼 기억된다.  
이번 여름엔 파마가 잘 나왔다. 단골집인 파파 미용실 뽀글뽀글 암팡지게 볶아놔서 겨울까지 잘 넘길 모양이다. 그 덕에 젊어 보인다고. 내 나이 여든 일곱이라면 다들 뒤로 넘어갈 모양새다. 젊어 보여 써 먹을 곳도 없지만 그래도 젊어 보인다면 기분이 좋다. 할매가 되도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 전쟁 중에 형제도 이웃도 눈앞에서 죽어가는 처참한 비극을 겪었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 게 돼 있는 법. 이렇게 매일 웃으면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 1936년생 쥐띠 경주이씨 30호 정도의 주민이 살던 옥천 군서면 동평리. 
내 어린 날의 기억  들이다. 한동네에 형제처럼 지내는 친구들이 십여 명 있었다. 어쩌다보니 같은 해에 다들 무리 져서 태어났다. 옥순 옥김이는 일가였고 창옥이랑 더불어 고무줄 하고 놀았던 친구들이다. 부모님은 보리농사 쌀농사 고추 농사로 식구들 먹고 남을 만큼 지으셔서 밥걱정은 안했다. 왜정 때 농사 지어놓으면 다 뺏어 가서 농에다가 감춰놓고 먹었지만 귀신같이 그것까지 샅샅이 뒤져서 가져갔다. 못된 놈들! 쇠숟가락은 물론이고 나무 숟가락까지도 다 뺏어갔으니 탈탈 털어가려고 작정을 했던 놈들이다. 내 어린 날의 기억 들이다. 

■ 21살에 24살 남편을 만나 갑돌이 갑순이가 되었다. 
안남면 청정리 2길 2-3번지 내가 60년 넘게 살고 있는 내 인생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친구다. 혼자 속울음 삼킬 때도 나를 지켜봤다. 6남매를 두었고 남편은 87살 난 학교 나오고 남편은 집에서 농사하며 소일한다. 6남매 키우고 살림 늘리느라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6남매는 다 착해서 동네 애들하고 싸움 한 번 안하고 차라리 맞는 일이 있어도 남의 집 애들을 때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맞고 오느냐 간간이 호통도 쳤지만 다들 착해서 손해 보면서 살던 아이들이다. 기특해도 부모 속은 열불이 나지만 그렇다고 때리고 오란 소리는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남편은 젊을 때는 농사지으면서 마을 활동을 많이 했다. 4H 운동,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그때 잘 사는 농촌 만들자며 만들어진 단체다. 남편은 회장을 맡기도 했고 농업 기술자로도 활동했다. 그 때는 시골가면 의례 네잎 클로버 돌비석이 마을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4H의 상징이었다. 

■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막내로 귀여움 받고 자라 천성이 웃는 얼굴이지만 어려울 땐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도 혼자 흥얼거리면서 시름을 또 잊곤 했다. 

■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
이 노래가 사랑타령이 아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가슴 도려내는 아픔을 겪으면서 여든이 넘었다. 굳이 곱씹지 않는 이유는 내 가슴만 도려냈을까 어느 누구도 가슴에 피멍이 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저 잘 견뎌내는 게 장사다. 하루하루 노력하면서 말이다. 나도 첫 아이부터 내리 아이들을 잃으면서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고 비손도 많이 했다. 

■ 영감이 곁에 있으니 든든하고 오랜 친구 같다.  
영감이 다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티격태격해도 내 편이다. 젊은 때야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많았지만 나는 영감 마음에 다 들었을까?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 거린다고 한다지 않나. 자기 허물 모르고 남 허물 들춘다는 얘기다. 노루를 피해가면 범을 만난다고 작은 고난 피하다 더 큰 고난을 만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시집가는 날도 장사 치루는 날도 체알(텐트)을 친다. 다 우리 인생길목의 좋은 날이다. 평생 살 것이 아니라면 죽는 것도 인생의 제일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시집가는 날처럼 체알을 치고 가족과 이웃의 배웅을 받는다. 

■ 빈 빗자루만 들어도 타작 밥 먹던 그 시절 일손 돕는 시늉만 해도 밥을 나눠 먹었던 인심 좋았던 그 때다. 
안남면은 깨끗하기로 소문난 동네다. 집집마다 제비 둥지도 눈에 들어오고 그 덕에 제비 똥은 여기저기 간간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그게 대수냐 싶다. 그 만큼 우리 동네가 깨끗하다는 말이다. 배바우는 도덕리 덕실마을 앞 냇가에 배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고 배바우라고 했단다. 연주리에서 가장 높은 산 둥실봉에 오르면 우리나라 생김새랑 꼭 닮은 지형이 보여서 사람들이 구경을 많이 온다. 시골이지만 촌 동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대문만 나서면 나이든 우리들한테 배울 거리 먹을거리 놀 거리 볼거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체알 치고 가는 날까지 활짝 웃으면서 매일을 보낼 것이다. 파파미용실의 단골손님으로 오래오래!  

작가 오승주
작가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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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2019-10-09 19:21:08
늘 웃는 얼굴~ 우리마을 이갑순 어머님♥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시고 잘 그리시구요. 그림책 동화책 읽는 것도 좋아하셔요^^